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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나비 Sep 28. 2022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이 없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네!     


조성모가 리메이크한 < 가시나무새 >라는 가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가사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상처, 관계의 실패, 인생의 크고 작은 고통에서 온 기억의 파편들로 가시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한다. 마치 어린 왕자 행성에 피어있는 가시가 돋친 장미처럼 예쁘고 연약한 자신의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가시가 진정한 관계 맺기를 방해한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가시 돋친 말, 가시 돋친 행동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경험의 집합체이다. 문제는 그 경험이 모두 나의 성장에 유익하지는 못하다. 오히려 자신과 타인을 있는 대로 바라볼 수 없게 ‘렌즈가 심하게 왜곡된 안경’을 쓰게 한다. 순진무구한 아이는 세상을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하지만 잘못된 애착 관계, 예기치 않은 트라우마, 건강하지 못한 가정환경, 교우관계 등으로 인해 색이 바뀌고 뒤틀린다. 왜곡된 렌즈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를 병들게 한다.      


중국의 심리학자 황시투안은 < 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있다 > 라는 책에서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 실패 뒤에는 해결되지 못한 트라우마, 열등감, 건강하지 못한 방어기제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혹시 반복적으로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든지, 괴로워하면서도 무례한 사람에게 바운더리 설정을 잘하지 못한다든지, 모두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든지,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도 모르게 의심하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모든 패턴이 다 내가 관계를 바라보는 비틀린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렇다는 점을 명심하자.      


안경을 벗고 타인과의 ‘의미 있는 관계’를 위해서는 우선 자신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마음속 코끼리와 화해 해야 한다. 마음속 코끼리란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조너선 헤이트가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여러 가지 트라우마로부터 자아를 지키기 위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사고작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보호하여 생존시키려는 일종의 무의식적 방어기제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마음이 자아, 초자아, 이드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며 마음을 통일하고 조절하려는 자아, 도덕적 양심의 형성이나 이상과 관련이 있는 초자아, 원초적 본능과 관련 있는 이드.  프로이트는 자아를 초자아와 이드라는 두 마리 말을 몰고 가는 기수에 비유하여 마음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헤이트는 < 명품을 코에 두른 코끼리>에서 자아가 타고 있는 것이 좀 더 다루기 힘든 코끼리라고 주장한다. 말과 달리 코끼리는 기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기수의 목표는 코끼리의 의도를 잘 이해하여 다시는 잘못된 방식으로 나를 끌고 가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코끼리를 감동하게 해 교육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잘 이해되지 않는 감정의 뿌리엔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 억울함이 억압되어 있다. 트라우마, 수치심, 건강하지 못한 애착 관계, 여러 가지 관계에서 온 상처들. 코끼리는 이런 억울함이 주는 상처에서 날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어기제들을 사용하게 되고 이것을 결국 관계를 맺는 방식을 왜곡시키고 망친다. 그러니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한 첫걸음은 나의 억울함이 무엇인지 밖으로 꺼내놓고 치유하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나의 코끼리에게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며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는지 인지시키고 그로 인해 타인과 관계 맺을 때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이해시켜야 한다.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성공적인 인생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는 인간이 죽을 때 모든 것이 사라져도 남는 단 한 가지는 진실한 관계에서 싹튼 ‘사랑’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세상에서 아주 큰 업적을 이룬 사람보다 부모에게 버려진 손주를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웠던 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람이 더 귀하다. 왜냐하면 업적은 누군가를 살리지 못하지만 사랑은 다른 생명을 살 수 있게 하는 힘을 주고 그 힘이 또 다른 지친 생명을 살린다. 결국 인류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러지는 순환 열차인데 이 열차의 동력은 누가 뭐래도 사랑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 관계를 맺는 것은 필수이고 서로 오해 없이 이해하기 위해선 나를 비우고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누구도 타인을 완벽히 오해 없이 이해하기 힘들다. 필연적으로 나란 필터를 통과해야 하는데 우리가 할 작업은 최대한 필터를 왜곡 없이 원래의 색채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도 나를 왜곡 없이 보지 못하도록 ‘언어의 기술’을 익혀 나란 사람을 왜곡 없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관계는 노력이고 연습이다. 언어이고 관심이다.   나와의 관계, 부모자식관계. 부부 연인관계, 친구 관계, 직장 상사, 동료관계. 사회와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이 모든 관계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왜곡 없이 확장해 나가며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한 인간의 인생은 외롭지 않고 풍성해진다. (관계의 수보다는 질이 중요하다.) 이 모든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면 우리는 살기 위해 관계를 동냥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 주도적으로 관계에 물을 주고 키워나갈 수 있게 된다. 사실 절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나도 이러저러한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 코끼리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데만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러니 나 아닌 타인의 코끼리를 이해하는 데는 아마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며 내 나름의 방식대로 사랑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관찰하고 그동안 무심코 했던 상처를 주는 말. 타인의 방어기제 스위치를 작동시키는 언어를 삭제시키고 타인의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코드를 배우고 뇌에 입력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나의 관계의 숲에 들어와 자라고 있는 큰 나무를 돌보고 자라기 시작하는 작은 묘목들도 배려하며 숲을 돌보기 시작했다. 모두 외롭고 사랑받길 원하지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고립되는 섬들 사이에 뱃길을 터야 한다.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다치지 않도록 방파제를 만들고 쉬어갈 수 있는 의자도 준비해야 한다. 나의 연약한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제멋대로 자라난 가시들을 제거해야 한다. 자존감으로 무장된 단단한 마음을 기르면 가시는 필요 없다는 사실 반드시 기억하자. 언젠가 우리들의 마음에 작은 새들이 날아와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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