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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 May 08. 2024

독립출판물 한 무더기 개봉기

출판 에세이

인디펍 서포터즈 활동으로 독립출판물을 한 번에 네 권이나 제공받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언박싱 포스트를 쓴다!

택배 상자를 개봉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포장이 조금 특별하다길래 뭔가 싶었는데 박스에 종이테이프가 붙여져 있다.


테이프를 뜯고 택배 상자를 여니 책이 아니라 거래명세서가 먼저 보인다. 명세서의 거친 재질로 보 재생지를 사용한 것 같다. 거래명세서에는 서포터즈로 받은 네 권의 책 정보가 인쇄되어 있다.



박스를 여니 보이는 벌집 모양의 포장지도 환경 보호의 목적으로 제작된 것 같다.


독특한 포장 방식이 독립출판물을 더 특별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아마 대중서에 동일한 포장 방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포장지를 걷으니 내가 선택한 네 권의 책이 둥지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되도록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장르가 겹치지 않도록 네 권을 주문했다. 다음은 주문한 책들의 간단한 소개다. 하나같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독립출판은 이런 색다른 개성을 써내고 또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01. 수면의 고양이


제일 먼저 보이는 수면의 고양이는 이근영 작가의 연작 소설이다.

포토그래퍼인 저자는 2012년 반려견에 관한 포토 에세이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아주 귀여운 설정을 지녔다. 바로 고양이가 수면의 전문가라는 것. 그래서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주인공이 고양이를 만나 꿈의 도서관을 운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연작 소설이기 때문에 여러 명의 주인공과 에피소드가 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어진다.


소설은 꿈과 고양이, 그리고 도서관이라는 매력적인 소재와 함께 그 몽환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들인다. 나는 나를 빤히 보는 듯한 표지 속 고양이의 눈길에 매료되어, 홀리듯 이 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02. 오 마이 갓김치! K콘텐츠 번역가의 생존 가이드


두 번째 책은 『오 마이 갓김치! K콘텐츠 번역가의 생존 가이드』, 재스민 리 (Jasmine Lee) 번역가의 에세이다.



이 에세이는 특이하게도, 외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K-콘텐츠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대해 말한다. 세월이 지났다 해도 뭔가 생경한 일이다. 과연 K-콘텐츠 번역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벌어먹고 사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구입하게 되었다.


5월 첫째 주 기준으로 알라딘에 도서가 업데이트가 되지 않서 독립출판 온라인서점인 인디펍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03. ULC D: 도시경관 출판하기


세 번째 책은 『ULC D: 도시경관 출판하기』, ULC press에서 출간하는 매거진이다.

ULC는 Urban Landscape Catalog의 줄임말이다.


ULC press 홈페이지에 따르면 "도시 공간, 지역 사회, 조경 관련 산업의 종사자와 연계 학문의 연구자 그리고 도시민을 대상으로 도시 경관의 기능, 특징, 디자인 등 다양한 면모들을 관찰하고 재구성한 매거진"이라고 한다.



『ULC D: 도시경관 출판하기』는 그중에서도 이때까지의 출판물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살펴보는 특별 편이다.

ULC 매거진을 접해본 경험 없지만 매거진으로서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편이라고 하여 구매했다. 무엇보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매거진의 출판 과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해서, 나처럼 출판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하겠다.


사실 이런 독특한 출판물을 접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 독립출판물의 진정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ULC press 매거진의 다른 편들은 인디펍과 알라딘, yes24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04. 새벽


마지막 책은 파도시집선 14호 새벽이다. 출판사 '파도'는 파도시집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장기적 프로젝트로 등단하지 않아도, 취미로 쓴 글이어도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매분기마다 제시되는 주제에 맞추어 누구나 그에 맞는 시를 투고 하고 책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출판사 파도는 글 주제를 일정 주기로 바꾸어 가며,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있는 시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새벽』은 제목처럼 새벽을 소재로 투고받은 시들을 엮었다. 독립출판물인 만큼 아마추어 작가들만의 낯선 감성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저러나 시집의 표지가 정말 예쁘다. 새벽을 떠올리게 하는 어렴풋한 색감이 인상적이고, 후가공으로 시인들의 이름에는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는 디보싱 형압을 가했다. 나는 이 간단한 디자인이 자극하는 소장욕구에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 읽기를 앞두고 가장 기대하고 있는 점은, 바로 책과 관련해 참고할 정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했듯이, 출판사는 통상 한 권의 책을 팔기 위해 저자 인터뷰부터 각종 쪽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통해 독자를 오솔길 속으로 안내하곤 한다. 나 역시 이런 방식이 독서의 깊이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해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독립출판물은 오히려 독자를 텍스트 속에 풀어놓음으로써 기대감을 고양시킨다. 우리는 독립출판물에서 브랜드는커녕 소개글조차 없는 독립출판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출판사들은 오직 한 권의 책만을 발행하기 위해 단발성으로 조직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문성이 입증되지 않은 아마추어 작가들의 예측할 수 없는 텍스트와 정교하지 않은 감성에서 비롯해,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우리는 어떤 부분을 선택하여 읽을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영감의 대지, 개척되지 않은 책들은 불모지가 자신 속에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는 것만큼이나 나를 무척이나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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