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퍼 이가현 제주여행 사진집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지만 가장 바라는 일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기에는 인생에 장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 또한 현실에 굴복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과 하루에 8시간 이상을 같이 붙어있고 하기 싫고 지겨운 일을 해야합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죠.
2020년 9월. 야심 차게 이직한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았기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끝이 안 보이는 취업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어째 올해는 회사와 인연이 없는 건지 오랫동안 준비하던 회사에도 결국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참 되는 게 없죠?
딱히 할 일도 없고 시간은 넘칠 때... 봉투에 잘 모아둔 현금들을 보며 제가 좋아하는 곳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하고 싶은 거 하는 여행입니다.
저는 평소에 야외 활동을 좋아하지만 사진을 시작한 이후로 학생 때부터 정해진 장소에서만 촬영하는 것 위주로 해왔기 때문인지 밖으로 카메라를 들고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습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무겁다는 이유로, 또는 다른 이유로 계속 미뤄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매거진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여러 장소를 찾아가고 평소에 찍을 기회가 없었던 넓은 인테리어나 풍경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저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제주도로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유독 더 꼼꼼하게 짐을 싸야 했습니다.
카메라 가방에 무거운 카메라를 챙기고 숙소에서 바로 사진 편집을 할 수 있게 노트북과 메모리카드 리더기를 챙기고 배터리 충전기와 외장하드... 안 그래도 5박6일 일정으로 다른 짐도 많은데 팔과 어깨가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가봐서 그런지 분명 캐리어를 맡겼는데도 어깨는 무겁고 공항에서 하는 검사도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카메라와 함께 제주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도에서 뚜벅이로. 무거운 가방과 하루에 2-3군데는 꼭 가야 한다는 강박, 해지기 전까지만 활동할 수 있다는 제한까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일정을 짜야 했습니다.
<1일>
처음으로 선택한 장소는 '월정리 해수욕장'입니다.
제주도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는 맑은 날씨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혹시 또 언제 비가 올지 몰라서 첫날은 '바다 투어'로 정했습니다. 그래봤자 두 군데 밖에 못 갔지만요.
숙소 근처에서 102번 버스를 타고 월정리로 향했습니다. 제주 버스를 탈 때는 주로 바닷가가 보이기 때문에 방향을 잘 생각하고 앉아야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해도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방향도 제주 특유의 풍경은 느껴집니다.
혼자 다녀도 그렇게 외롭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노래를 듣고, 또 혼자 여행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월정리는 제가 하루에 두 번도 갈 만큼 제일 좋아하는 바다입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바닷가까지 가는 길조차 제주스럽습니다.
길 따라 놓여있는 돌담들과 색색의 건물들, 낮은 주택들. 빨리 바다를 보고 싶은 부푼 마음과 제주스러운 길이 만들어주는 설렘은 언제 느껴도 기분 좋은, 다시 느끼고 싶은 기분입니다.
월정리는 특히나 소품샵도 많고 식당, 카페, 숙소 등 구경할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혼자 여행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바다 색깔도 예쁘고 넓은 바다 주변에 있는 건물들 덕에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월요일 오후 3시 반. 이렇게 사람 없고 한적한 월정리는 처음이라 조금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없고 여유로운 바닷가여서 시작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강아지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더 평화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때 실감이 낫죠. 아 나 제주에 왔구나.
그리고 해안 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고 너무 길어서 항상 걸어보고 싶다고만 생각했었다가 이번에 직접 걸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월정리는 특히나 풍력발전기가 보이는 바닷가라서 더 매력 있습니다.
그렇게 40분을 걸었을까요. 고양이도 만나고 예쁜 의자도 만나고. 진짜 좋아하는 월정리 바닷가를 잔뜩 느끼고 바다 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혼자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걸었습니다.
월정리를 뒤로하고 '함덕 서우봉' 으로 이동했습니다.
17:48. 일몰 시간이 일러진 가을. 서둘러 버스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함덕 해수욕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서우봉에 올라가야 해서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꼈습니다.
함덕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본 풍경은 서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에겐 정말 추운 날이었는데 열정엔 추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우봉 둘레길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위로 보이는 정자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정상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올라가는 길 내내 보이는 바닷가와 노을을 보면서 영혼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바다에 비치는 해가 너무 황홀했습니다.
처음엔 노을을 보는데 왜 함덕으로 가지? 함덕은 동쪽인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무조건 추천합니다.
둘레길을 걸어보려 했지만 꽤나 코스가 길어 보이고 내리막길이 심해 보여서 가다가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해가 더 내려가자 하늘과 바다는 금세 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그 풍경을 보는 제 자신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쁜 걸 보면 행복하니까요.
마침 서핑하던 사람들과 겹친 풍경을 찍고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에 더 행복해졌습니다.
그렇게 첫날의 해는 졌습니다. 어둑어둑한 하늘이지만 알록달록한 바다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렇게 제 여행의 첫날이 끝났습니다.
버스에서 열심히 졸고 동문시장 근처 청년몰에서 저녁도 먹고 시장에서 귤도 사서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여행할 땐 해지면 숙소로 들어가세요. 사람 없는 거리는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혼밥할 식당은 미리미리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열심히 사진만 쫓다 보니 7시에 첫 끼를 먹었네요.
제주 여행의 첫날 글과 사진 편하게 읽으셨나요?
총 5박 6일 일정의 여행입니다.
많은 사진과 더 여유롭고 흥미로운 제주도 뚜벅이 여행기가 남아있습니다.
조만간 <2일> 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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