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이러한 주제를 숙제로 받고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가장 잘한 일이 과연 뭘까하며 지금까지 살았던 25년의 인생을 곱씹어봤다. 안 되는 성악 전공을 일찌감치 때려치운 거도 잘한 것 같고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클럽 순회를 다녔던 것도 잘한 일이다. 우연히 간 파티에서 만난 누군가와 가슴 뛰는 사랑을 해본 것도 잘한 일 같고 60%가 넘은 주식의 수익률을 갖게 된 것도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가장' 잘한 일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그렇다 하기에 조금 주저된다.
대신 대답을 외면적인 것에서 내면적인 것으로 바꾸어 보았다. 내가 언제 가장 행복하고 자존감이 올랐는지 생각해보니 답은 금방 나왔다. 나는 글을 쓰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글을 쓰는 과정과 그 힘겨운 과정에서 나온 나의 글이 좋았고 또한 그러한 기록들이 쌓이는 것을 보았을 때 더없이 뿌듯했다.
글쓰기는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주었다. 1년 전 그때 나는 락다운이라는 시기를 혼자 견뎌야 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하루빨리 배출시켜내지 않으면 금방이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오롯이 감정들을 마주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한 시도는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블로그에 제 감정을 막 적어대는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날 것의 감정들을 혼자만 열람 가능한 일기보다 남들 다보는 블로그에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싶었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이로 인해 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변화를 가져야 할지 등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확실해졌다. 별거인 줄 알았던 불안함, 외로움, 무기력한 감정들을 똑바로 마주해보니 별거가 아니었다. 칠흑과 같은 동굴 속에서 더 이상 발걸음을 내딛지 못할 때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실낱같은 불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글쓰기는 평화와 위로를 주었다. 적막감이 흐르는 방안에 노트북 두들기는 소리만 들리는, 그 어떤 것의 방해도 용납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저 뒤편으로 치워버리고 흘러가는 것에 내 몸을 크게 던지고 그저 편안히 흐름에게 나를 맡길 뿐이었다. 신나는 음악소리가 크게 퍼지고 흥에 취해 춤을 추는 즐거움 가득한 시간보다 어쩌면 더 달콤한 그런 시간이었다. 세상이 주는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으며 심지어 모든 것이 내 멋대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주기도 했다. 독일어로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고치는 것에 한계를 느꼈던 무기력한 나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글쓰기는 삶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그저 주어진 하루치 공부 할당량만 채우면 마무리되는 삶이 아니었다.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일상과 풍경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마음에 여유를 갖고 세상의 것들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사소한 것들에서 오는 깨달음이 썩 좋았다. 그것들을 흰 종이에다가 옮겨 적는 것 또한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슬아 작가님 강의에서 듣고 고개를 연거푸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한 문장이 생각난다. "말로 하면 금방 없어지는 단어들은 글로서 제자리를 잡게 된다."
잠시나마 삶의 도피처를 마련해주고 삶을 풍요롭게 해 준 글쓰기를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어찌 주저할 수 있을까.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준 글쓰기와는 앞으로도 그 무엇보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