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충의 ‘멍’을 쫒는 모험
2022년 초부터 나는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증상의 빈도와 강도가 점차 올라가서,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하여 전문가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 증상이라 함은 바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책맞게 눈물 콧물을 흘리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문득 복받쳐서 울음이 터져 나오는데, 좀처럼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아 난감해진다. 심할 때는 나라 잃은 백성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게 되기도 한다.
멍 때리다
네 번째쯤 상담소를 찾았을 때, 심리상담가는 나에게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생각을 안 하는 상태가 뭐죠?"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거죠. 불멍도 있고, 물멍도 있잖아요. 혹은 TV 프로그램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도 있죠."
의식과 내면세계가 있는 존재가 생각을 안 하는 상태가 있던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런 순간이 있던가? 없는 것 같다. 쓸모없는 생각일지라도 끊임없이 무언가가 떠오른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면 불의 색, 형태에 대해 생각하고. 또 불 향을 따라 과거의 추억을 상기하고. 그때 주변 사람이라던가, 그 시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식이다. 그러다가 아련하거나, 부끄럽거나, 후회하거나 하는 식으로 과거를 재해석하고 반성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이어진다. TV나 영화를 보면 감정이 쉽게 이입되어 마음이 요동친다. 휴식이라기 보다 허구 캐릭터의 희로애락에 에너지를 함께 쓰며 스토리의 잔상에 생각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되어 줄곧 피곤하다.
"모두가 그렇지 않나요? 저처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많죠. 무의식에 나를 맡기세요."
깨어 있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임에도 무의식에 나를 맡긴다는 게 뭐지?
나는 라면을 팔팔 끓인 뜨거운 냄비를 식탁으로 옮길 때, 이걸 발 위에 쏟으면 몇 도 화상을 입을까 상상을 하고, 반려견 루이 등에 쏟으면 안 될 텐데 하고 걱정을 한다. 계단을 오를 때는 뒤로 넘어지는 상상을 하고, 그럴 때 덜 다치려면 손을 짚어야 할까 어느쪽으로 굴러야 할까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수업 준비를 할 때는 수업하는 장소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강의하는 내 모습을 시뮬레이션하고, 학생들의 반응을 또 수 가지 경우로 상상한다. 머릿속 상상과 시뮬레이션은 즐겁고 신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더 힘들고 고단 해지는 방향을 쫒는다. 그래서 지쳐버린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기
심리 상담가의 처방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열어 놓고, 생각을 닫는 것이었다. 음식을 먹을 땐 맛을 느끼고, 계단을 오를 땐 발바닥의 감각을 느끼는 것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아무튼,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 생각도 안 하려는 것, 즉 ‘멍 때리기’를 노력한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고 모순이 따로 없다. 하지만 나처럼 생각을 비우는 게 힘든 사람은 시스템과 환경을 통해 ‘멍’을 쫒을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스멀스멀 생각이 밀려들고 후회와 자책, 걱정과 불안에 잠식당해 금세 나의 마음은 또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법을 골똘히 생각한 끝에 나름대로 약간의 시스템을 세팅해보았다.
생각에 습격당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랄까.
첫 번째, 인센스 페이퍼를 태우면서 의식의 스위치를 끈다.
인센스 페이퍼, 즉 향이 나는 종이는 초나 스틱보다 태우는 시간이 짧아 무아지경이 어려운 초보자에게 더없이 좋다. 인센스 페이퍼를 창틀에 올리고 태우며 향을 맡는다. 나의 반려견 루이를 따라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쿰쿰하고 묵직하고 절간 향기를 맡는다. 여기서 자칫 ‘지난겨울 놀러 갔던 낙산사’로 생각이 자라나면 안 된다. 그러면 ‘낙산사에 함께 갔던 친구들 근황’ 따위로 생각이 뻗쳐나가 멍을 놓치게 될 것이다.
루이처럼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가는 연기를 보며 두리번거려본다. 연기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샘플 의상을 보고, '아, 저거 처리해야 하는데..' 하는 업무 생각이 또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 그러면 생각을 몰아내기 위해 얼른 주문을 왼다. 뜻 모를 외국어가 더 효과적이다. ‘옴마니 반메 홈-’, '자이구루 데바 옴-', '하쿠나 마타타'.
두 번째, 산책할 때는 햇빛 쬐며 걷는 것만 한다.
반려견 덕분에 매일 강제 산책을 하고 있는데, 대개는 그 시간에도 어떤 지식정보를 쌓기 위해 오디오 북이나 팟 캐스트를 듣곤 했다. 그러다 핸드폰을 꺼내 관련 내용을 검색하거나 메모하곤 했는데, 이제는 가급적 핸드폰을 두고 나서려고 한다.
그리고 그냥 걷는다. 햇빛을 만져보고, 앞서 걷는 반려견 루이가 냄새 맡는 들풀을 나도 만져본다. 매일 달라지는 공기의 온도와 바람의 소리를 경험한다. 빠르게 걷고 느리게 걸으며 오직 걷는 것에 집중한다.
여전히 장시간 '순수한 멍 때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의 멍을 쫒는 노력이 가져온 삶의 변화는 느끼고 있다. 외부 변화와 자극에 반응하고 흔들릴지라도 곧 내가 만든 파도의 리듬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몰아치는 감정에 빠져들려다가 감정에서 떨어져 지그시 상황을 관망할 수 있다. 감정과 생각은 내가 아니다.
이만하면 좋은 변화다. 덜 괴로우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