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 3차 실패, 그 이후
세 번째 이식도 실패로 돌아가자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감이 오지 않았다. 또다시 한 자리 수의 피검 수치 결과를 받아 들고 나서 의사에게 들은 말은 ‘또 다른 검사’의 필요성이었다. 난자 채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5일 배양을 해서, 배아 유전자 검사(pgs검사)를 실시한 후 통과한 배아만을 이식하는 과정. 자궁의 착상 시기를 알아볼 수 있는 era검사. 설명을 듣는 순간 멍해졌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졌다. 나는 충분히 지난 1년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는데, 아무 결과가 없으니 허탈했다. 주변에 난임 생활을 겪은 지인들도 시험관 시술을 두 번 정도 하고 나서 다 임신 소식을 들려줬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이제 나의 실패 소식을 다른 이에게 털어놓기도 부담스러워졌다.
다행히 이 날은 남편이 함께 병원에 온 날이라 멍해진 나를 옆에서 많이 위로해줬다. 커피와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 먹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그 자리에서 남편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전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실패가 반복된 곳에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아 졌고, 담당 의사의 검사 권유도 부담스러워졌다. 동결된 배아도 남아있지 않으니 한결 편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바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진료 기록을 다 떼 달라고 요청했다. 새로운 병원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난임 생활이 길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들은 병원에 대한 정보와 검색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곳을 정했고, 남편과 함께 당장 가기로 결정했다. 다니던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챙겨 들고 새 병원에 무작정 갔다. 그런데 초진은 예약이 이미 다 끝난 상황이라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 바탕의 탐색을 끝내고, 난 내가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나아짐은 일시적인 것이었을 뿐, 하루가 지나가 갑자기 우울감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남편에게 날카롭게 굴었다.
병원을 곧장 옮겨, 바로 신선 2차 과정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동결 이식 후에 프로게스테론 배 주사를 맞으면서 생긴 멍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다시 난포 키우는 주사를 맞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거기다 며칠 후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연말의 감상에 젖어 ‘올해는 임신을 할 줄 알았는데, 한 해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남편과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기를 여러 번. 남편도 힘들었는지 ‘딱 내년 6월까지만 하고 그만하자’고 이야기했다. 그건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남편과 내가 정해둔 기한이었는데 그땐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은 것이었고, 지금은 6개월이 남은 것이니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또 서러웠다.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생리 시작하면 이틀째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전에 새로 다닐 병원을 정해야 되는 건 아닌가 조급한 마음은 여전했다.
이런 내 마음에 정지 버튼을 눌러준 건 엄마였다. 여태까지 난임 병원 다니는 스케줄을 옆에서 쭉 지켜봤고, 피검사할 때도 같이 마음 졸인 엄마. 엄마가 좀 쉬면서 한약 한 재 해 먹고, 병원에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내가 지친 기색이 엄마 눈에도 보였을까. 그 말을 들으니 뭔가 방향이 잡히는 것 같았다. 한약을 먹으면서 자연임신 시도를 2개월만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병원에 가자. 지금 이 상태로 병원에 다시 다니게 되면 새로운 곳으로 가더라도 스트레스로 인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해의 마지막 날 엄마와 함께 한약을 짓기 위해 한의원에 갔다.
사실 한약은 10대 때 이후로 한 번도 먹지 않았다. 한약보다는 영양제를 주로 챙겨 먹는 편이었고, 가끔 기운이 없을 때 홍삼 원액만 먹었었다. 한약은 쓰기도 쓰고 가려야 할 음식도 많으니 먹기 꺼려진 게 사실이었다. 난임 병원에 다닐 땐 각종 주사제에 복용하는 약도 여러 개니 한약을 병행하는 걸 추천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한약 먹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었는데 난임 병원에서 쓰던 약들은 아무래도 호르몬을 억제하거나 과도하게 유발하는 것들이었다면 한약은 내 몸에 영양분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동안 여러 번의 난임 시술로 상한 나의 몸을 회복시켜주는 의미로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난 일 년간 난임 병원에서 여러 방법을 써봤는데도 임신이 안 되었으니, 이번엔 좀 다른 방법을 써보고 싶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난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의원에 갔더니 상담하시는 분께서 가장 먼저 나의 난임 시술 과정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언제부터 병원에 다녔는지 시술은 몇 차례 받았는지, 난자 채취했을 때 채취된 난자 개수와 수정란 개수, 배양 일수 등을 구체적으로 물어보셨다. 체열 검사를 통해 내 몸의 열 분포 또한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원장님과 면담했는데 상담내용, 체열 검사, 진맥을 바탕으로 내 몸의 전반적인 상태에 대해 말해주셨다.
“우선 자궁이나 난소에 기능적 이상은 없는 것 같네요. 그런데 쉴 틈 없이 난임 시술을 받아와서 그런지 몸 상체 쪽으로 열기가 다 올라가 있어서 이 몸 상태로 임신하기 힘듭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중간중간 쉬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주사약을 많이 쓰지 않은 것 같다고 하니 “중간에 한두 달 쉰 것은 쉬었다고 볼 수 없어요. 시술 실패 후 생리를 세 번 해야 즉 3개월 정도는 쉬어야 몸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이맘때쯤 한의원에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초에 임신해서 그 해에 출산을 하고 싶어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좋은 몸으로 임신하는 게 더 중요해요. 그러니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마세요.”라 답해주셨다.
뭔가 원장님 말만 들었는데도 충분히 치유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 몸을 ‘수단’으로 생각해온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몸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었는데 임신이 안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한약을 먹으면서 자연 임신을 시도하는 동안 좋은 소식이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아니라 해도 내 몸을 위한 시간을 가진 것이니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