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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싱인더레인 Jan 07. 2022

Episode21. 이식 이후 매일의 일상

긴 기다림의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


이식하는 날짜가 잡혔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이식 후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것인가’ 그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우선 이식을 하고 나면 몸을 움직이는 것을 최대한 조심해야 하기에 집에서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을 많이 하거나 나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여행 에세이 읽기, 보석 십자수하기, 명화 컬러링 하기, 보고 싶었던 영화, 드라마 몰아보기, 잡동사니 정리하기’였다.     


 우선 ‘여행 에세이 읽기’는 어디를 가는 게 힘든 상황이니,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대리 만족을 하겠다는 취지로 시도하게 되었다. 여행 에세이 책 안에는 정말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들도 많이 들어가 있는데, 그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떠나게 될 그 여행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여행을 다녀온 곳을 보게 되면 예전에 내가 남겨두었던 여행의 기록들을 뒤져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평소엔 떠나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들까 봐 감춰두었던 것들을 펼쳐보다 보면 어느샌가 시간이 훌쩍 지나간 느낌이 들어 기다림의 시간을 단축시키기에 좋았다.      


‘보석 십자수 하기’도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에 최고의 방법 중 하나였다. 조그맣고 반짝거리는 알갱이들을 하나하나 집어서 도안에 붙이다 보면 이걸 빨리 완성시키고 싶은 욕심이 들어 계속 ‘조금만 더!’를 외치며 몰입하게 되었다. 특히 임테기를 써보고 싶다거나, 피검을 코앞에 두고 더 이상 기다릴 힘조차 없어지는 느낌이 들 때쯤 보석 십자수를 하니 정말 시간도 빨리 가고 심지어 신나기까지 했다.   

    

‘명화 컬러링 하기’도 비슷한 느낌이다. 물통에 물을 뜨고, 책상에 신문지를 깔고, 색색깔의 물감들과 붓을 올려놓고 나면 작업 시작. 도안에 표시된 숫자들을 눈이 빠져라 찾아서 색을 칠하다 보면 조금씩 명화의 윤곽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걸 좀 더 칠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해져서 계속하게 된다. 남편과 비슷한 크기의 도안을 사서 함께 색을 칠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좋다. 보석 십자수는 그래도 알갱이의 크기와 모양이 동일해서 딱 맞게 붙여주기만 하면 되는 반면에 명화 그리기의 경우는 물감이 경계선을 튀어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서 칠해줘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집중력을 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단 둘 다 단점은 길게 하고 싶어도 어느 순간 목의 뻐근함과 눈의 뻑뻑함이 찾아와서 틈틈이 쉬어줘야 한다. 오래 앉아 있으면 자궁 혈액순환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30분 정도 하다가 쉬어주고 다시 했다.     


‘보고 싶었던 영화, 드라마 연달아 보기’는 편안히 누울 수 있는 침대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간식만 있다면 최고의 시간 보내기 방법이다. 평소에 드라마, 영화를 볼 시간을 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이때 아니면 언제 또 해보겠는가.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임신 기간은 양심의 가책 없이 드라마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임신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뭐 어떤가. 임신에 이르기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왔던가. 이 정도는 나도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드라마 이어 보기. 옛날 드라마에서부터 최신 드라마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본다. 단, 너무 슬픈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기간이라 1분 울만한 내용을 10분 울까 봐 걱정되어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 잔인하고 폭력적인 것도 제외. 혹시나 뱃속에 있을지도 모를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안 되니까.     


집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는 것'도 기다림의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부엌 찬장 안, 책상, 화장대 서랍 안은 평소엔 닫혀 있는 상태라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정말 많은 것들이 섞여 있어 막상 필요할 때 찾기가 힘들다. 이식 후 기다리는 기간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정리하지 않았던 정리를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물론! 절대 무리하면 안 되고, 무거운 건 들면 안 된다. 그래서! 하루 한 공간씩만 정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정리하다 보면 걱정으로 엉클어져 있던 내 마음이 함께 정돈되는 느낌이다. 정리를 하고 난 뒤 얻는 뿌듯함은 덤이다.      


이식하고 나선 하루에 두 끼는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짜서 먹는다. 주로 ‘소고기 구이, 전골, 샤브샤브, 덮밥 아니면 추어탕, 곰국’ 같은 것들이다. 거기에 채소와 과일로 섬유질과 비타민 영양소들을 챙긴다. 되도록 밀가루나 차가운 음식들은 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참을수록 더 떠오른다. 그럴 땐! 그냥 한 끼 정도는 먹어준다. 라면이 먹고 싶으면, 거기에 파, 양파, 버섯, 계란을 듬뿍 넣고 마치 계란 버섯국처럼 해서 먹는다. 쿠키나 빵이 먹고 싶으면, 디카페인 커피를 내려서 딱 두 세입 정도만 맛있게 먹는다. 처음엔 아예 안 먹을까도 했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론 억지로 참아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조금씩 먹는 방법을 택했다.     


자기 전엔 명상을 한다. 약의 영향 때문인지 이식 후엔 새벽에 한 번은 꼭 깨서 화장실을 간다. 그러면 또 잠이 한동안 오지 않는다. 그때 별의별 생각을 할 걸 잘 알기에 자기 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갖는다. 낮엔 긍정적이다가도 새벽엔 센치해지는 어쩔 수 없는 기복. 꿈이라도 꾸는 날엔 이게 무슨 의미인지 곱씹어보기도 한다. 태몽 비슷한 꿈이라도 꿨으면 좋겠는데 웬걸 아는 사람 총집합한 어수선한 꿈을 꾸고 나면 더 피곤한 상태로 아침을 맞기도 한다. 그럴 때도 편안한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호흡에 집중하며 정신을 깨운다. 새로운 아침이 밝았고, 걱정에만 휩싸여 있을 수 없기에. 새로운 숨을 한껏 들이킨다.     


이식 후 기다림의 시간은 여러 번 겪어보는 일인데도 지루하고, 힘들다. 그러다 점점 ‘이 시간들도 내 인생의 일부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하나하나 즐거운 요소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뱃속에 있는 배아가 이왕이면 편안하고 포근한 엄마의 품에서 잘 적응하고 자리 잡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이 시간. 그 끝에 만날 아이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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