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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싱인더레인 Apr 11. 2022

Episode29.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난임 생활을 하면서 내 시간이 그냥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뭔가 열심히 병원도 다니고, 평소에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움직임 하나까지 신경 쓰느라 분주한 느낌인데 막상 결과가 비임신으로 돌아오면 여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분이 든다. 난임 휴직 중이고 아무도 나에게 바쁘게, 열심히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데도 그냥 가는 내 시간이 아까워 우울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내가 쓴 처방이 있었는데 바로 ‘배우는 것’이었다.      


직장에 다닐 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도 사라지곤 했다.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싶다는 욕심을 늘 갖고 있었는데 인문학이라는 것이 범위가 넓다 보니 막상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책으로 맛만 보고 또 싹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번에 기회가 생겼으니 진득하게 인문학에 대해 배워보자 싶었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긴 했지만, 책만으로는 집중적으로 공부할 동기가 부족할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하는 인문학 강의를 신청했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원격 강의로 이루어졌는데, 병원을 자주 가는 나로서는 그게 더 좋은 기회처럼 느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총 12주의 기간 동안 6권의 책과 그 책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다루는 강의였다.     


강의에서 다루는 책은 평소 제목은 들어봤지만, 읽어보지 않았던 책들이었다. 강의를 들으며 그 책들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던 이야기를 접했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중국 역사, 불교와 카스트 제도, 중세 유럽의 단면, 산업혁명의 뒷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역사’에 대해서는 늘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그 방대한 양에 눌려서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과 엮어서 책을 읽으면서 그와 관련된 역사적 내용을 들으니 좀 더 재밌게 느껴졌다. 또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굳이 큰 역사적 흐름을 세세히 알 필요는 없겠다. 내가 흥미 있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넓혀가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의 것들을 도서관에서 많이 빌려보았다. ‘예술’ 분야 중에서도 여러 그림을 소개해주는 책을 좋아한다. 국내 미술관에서도 좋은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해외에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 많은데, 지금 당장 보러 갈 수 없는 아쉬움을 책을 보면서 달래는 것이다. 그림이 담긴 책들을 읽다 보면 우연히 내가 모르던 화가인데 그림이 아주 마음에 들어 그 화가에 대해서 자세히 찾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발견한 화가가 ‘칼 라르손’과 ‘그웬 존’, ‘라울 뒤피’이다. 그림에서 화가의 마음을 읽어내기도 한다. 물론 다 내 상상이긴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을 그릴 당시 화가의 감정은 어땠을까, 누구한테 이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그림에 푹 빠지게 된다.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에 누워있는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를 그린 그림 <요람>을 보면서는 그 엄마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될 거라 상상하기도 했다. ‘클림트’의 아기를 안은 엄마의 모습을 그린 그림 <여자의 일생>에선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사랑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물론 그 옆에 나이 들고 축 처진 어깨, 고개를 푹 떨군 여성의 모습에선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때론 글로 표현된 것보다 그림에서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곤 한다. 특히 ‘아기와 엄마’의 관계를 다룬 주제가 그랬다. 글을 읽다 보면 아직 내가 엄마인 상황이 아니니 울적할 때도 있었는데, 그림을 보면서는 오히려 위로받았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그림에 쓰인 표현 기법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책을 통해 조금씩 미술사, 화가의 일생과 그가 즐겨 쓰던 표현들을 알게 되면서 ‘그림’이라는 장르를 내 안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길어진 난임 생활로 우울해질 때 밝은 색채로 이루어진 그림을 보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책을 통해 배운 ‘예술’도 내 삶을 다채롭게 해 줄 도구가 된 것이다.      


엄마랑 한 달간 재봉틀 수업을 듣기도 했다. 엄마가 예전부터 배우고 싶다던 재봉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늘 미뤘다. 휴직을 하고도 난임 병원을 다니니 시간이 있으면서도 없는 상황이라 뭔가를 어디에 가서 배우기가 부담스러워 시도하지 못했었는데 큰마음먹고 등록했다. 모든 것을 시작할 때 그렇겠지만 재봉틀을 배우기 위해선 초기 자금이 좀 많이 필요했다.      


우선 재봉틀을 배우는 목적이 앞으로도 쭉 집에서 수선을 할 것이기에 재봉틀을 구입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20만 원 정도 하는 보급형 재봉틀을 구입했다. 그러고 나서 엄마와 동네 근처에 있는 재봉틀 배우는 곳에 가서 수강 신청을 했다. 재료비도 이것저것 사니 30만 원 가까이 들었다. 초기 자금을 제법 투자했으니 더 열심히 배우게 되었다. 엄마랑 일주일에 한 번 가서 두 시간씩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배웠는데, 그 결과물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첫 시간은 재봉틀 사용 방법부터 밑실, 윗실 감기, 부자재 활용법 등을 배우고, 그 이후로는 끈 끼우기, 똑딱이 단추, 지퍼, 손잡이 달기 등을 하나하나 배웠다. 그 과정을 통해 완성한 작품은 5가지! 쿠션 커버, 에코백, 파우치 2종, 지갑이 생겼다. 배우고 나니 엄마랑 대화할 거리도 생기고 나만의 소품도 생기니 뿌듯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휴직을 하는 바람에 엄마한테 효도 아닌 효도를 하게 된 것 같아 좋았다. 


뭔가 전문가처럼 제대로, 많이 알아야 한다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예 시작조차 하고 싶지 않아 진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힘을 풀고 내가 흥미 있는 부분부터 조금씩 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난임 휴직이라는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아닌 기쁨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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