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있는 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다. 정확히는 사무실에서 일하다 잡초를 뽑으러 가기도 하고 퇴근전 물을 주고 업무를 마감하기도 한다. 전시를 만드는 큐레이터 직함으로 일하지만 요즘은 작가들보다 정원사들과 대화하는 게 더 즐겁기도 하다.
데스크일을 처리하기만도 정신없던 시간들이 있었다. 미술관을 개관하고 첫 전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시장안에 뭘 넣어야 할지, 어떻게 사람들과 만나야 할지 생각하고 틀을 짜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늘 분주했다. 매일 미술관 안에서 아등바등하는 직원들이 아침에 출근할 때면 정원 풀숲에서 스윽 일어나 인사를 해주시던 관장님은 종일 정원일로 바쁘셨다.
작은 체구로 흙 위에 쭈그려 앉아 계절마다 스케줄이 바쁘다며 일하시는 모습을 볼때마다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거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몇 번 길고 긴 수도꼭지를 끌고 다니며 미술관 정원 곳곳에 물도 주고 흙도 옮겨드리고 같이 잡초도 뽑았다. 쭈그려 앉기가 잘 안되는 나는 허리가 너무 아팠고 시간이 늘 모자란 나는 3시간 넘게 걸리는 물주기에 1시간이면 바로 바톤터치였다. 몇 번을 하다가 이 노동을 왜 하시지, 어떻게 매일 계속 하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일이 궁금해졌다.
정확히는 ‘어떻게’라기보다 ‘왜’에 대해서 였다. 인간이 정원일을 왜 하지. 시간이 금쪽같은 현대사회에 무진장 시간을 쏟고 강도높은 육체노동이 주가 되는 이 일은 도대체 그 안에 뭐가 있길래 즐겁다며 스스로 손을 못 놓고 빠져들고 있는 것일까.
그림을 그리시는 관장님은 십오년 넘게 정원일을 하고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그녀의밭일에서 나왔다고 말씀하시며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자연이라는 대공식으로 결론짓기에 나는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정원에 관한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2015년경이였던 것 같다. 이때 가드닝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하며 서점에는 정원을 어떻게 가꿀지, 생활실용서 섹션에 원예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왜’에 관한 책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만난 책이 [정원을 말하다]였다. 부제가 ‘인간의 조건에 대한 탐구’인 것을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이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확신이 섰다. 정원에 관한 전시를 만들어야겠다. 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