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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Mar 03. 2021

손을 떠난 공들이 머무는 곳



  내 손을 떠난 공들은 어디에 머무는 걸까? 네 손을 떠난 공들은 어디에 머무는 걸까? 내 공도 사라졌다. 네 공도 사라졌다. 그 많던 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공이 굴러간다. 굴러가는 것들은 모두 바퀴가 달려있다. 계절에도 바퀴가 달려있다. 가을에도 바뀌가 달려있어 겨울을 향해 달린다. 겨울은 내리는 시간이다. 시간은 눈으로 바뀐다. 낙엽이 내리고 눈이 날린다. 마음은 두겹이 되고 나무에 종소리를 매단다. 종소리는 그리움을 실어 나른다. 그리움에 매달린 풍경소리는 은은하다. 어린 시절 향이다. 라벤더 향을 닮았다.  


  운동장 한편에 플라타너스가 서있다. 둥치가 한아름이다. 그늘이 넓다. 안으려 해도 안아지지 않는다. 내 품을 떠난 지 오래다. 잎사귀를 매달던 초록은 없다. 동그란 열매가 달려 있다. 탁구공 만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열매가 흔들린다. 흔들릴 때마다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 끝에 매달린 내가 보인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공들이 떨어진다.


  어린 내가 서있다. 추억이 바스락바스락 걸어온다. 초등학교 5학년이 뛰어 오고 있다. 체육 시간이다.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교에서 특활반 모집을 했다. 우린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골랐다. 난 배드민턴반이 하고 싶었다. 배드민턴 반으로 갔다.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다. 선생님은 정원이 넘었다며  내 앞에서 선을 그었다. 거기서 잘린 나는 갈팡질팡했다. 특별히 갈만 곳이 없었다. '어디로 가지?' 한참을 망설인 끝에 사람이 제일 적은 곳으로 갔다. 탁구반이었다. 그때만 해도 탁구가 뭔지 몰랐다. 그렇게 탁구와 나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면 체육관이 나온다 우리 학교는 기계 체조가 유명하다. 체육관은 항상 기계체조 선수 차지였다. 평행봉, 안마, 링 등 그들을 위한 체육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던 선수들이었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 온 대단한 친구들이었다. 모든 것이 그 선수들 위주로 돌아갔다. 체육관도 시설도. 


  탁구반에 들어간 나는 그때부터 탁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라켓을 쥐는 법부터 조금씩 배웠다. 기계체조보다는 쉬웠다. 그 친구들은 시합 때가 되면 공부도 하지 않고 체육관에서 살았다. 맨날 손에 하얀 가루를 묻혀가며 돌고 뛰고 재주를 넘었다. '저걸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그 친구들을 보며 안심을 하곤 했다. 체육관 구석에 탁구대가 설치됐다. 그때부턴 수업만 끝나면 탁구장에서 살았다. 특활반 수업만 가지곤 성에 차지 않았다. 탁구대는 늘 설치되어 있었고 난 시간이 많았다. 탁구반 선생님은 의욕이 넘쳤다. 기계체조처럼 선수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학교 지원은 없었다. 기계체조 선수를 위한 지원만 있었다. 탁구반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모아 연습을 시켰다. 나도 거기에 포함됐다. 체육관 한쪽 구석이 우리 자리다. 라켓 쥐는 법부터 배웠다. 그다음에 자세를 배웠다. 재미없었다. 공을 치러 왔는데 공치는 건 가르치지 않고 맨날 자세만 가리켰다. 우리는 몇 달 동안 벽만 째려보고 있었다. 라켓 들고 벽 바라보며 자세를 잡고 손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그 자세를 찾아보니 '쉐이트 포핸드 롱'자세라고 한다. 무슨 자세인지도 모른 채 공도 없는 탁구를 쳤다. 수업 시간엔 공부하고 그 이후 시간에 탁구를 연습했다. 기계체조 선수들은 시합을 위한 거라서 수업을 빼먹는 게 허락이 됐다. 그런데 우리 탁구반은 그럴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러니 수업 끝난 다음에 조금씩 연습을 하곤 했다. 


  네모난 탁자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탁구공 소리는 정말 듣기 좋다. 핑, 퐁, 핑, 퐁 랠리가 이어질 때마다 신났다. 물론 탁구를 치는 시간도 많았지만 물 주전자에 물 뜨러 가는 시간도 많았다. 대걸레로 걸레질을 할 때도 많았다. 그런 것들을 감수해도 신나고 즐거운 일이었다. 가끔 티브이에서 유명한 선수들이 나와서 시합하는 걸 보기도 했다. 그때 유명했던 선수는 이에리사 선수였다. 그 선수처럼 되는 걸 꿈꾸기도 했다. 시골에서 살았지만 꿈은 벌써 해외로 나가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훨훨 하늘을 날고 있었다. 선생님은 자주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곤 했다. 그때만 해도 난 커서 탁구선수가 될 줄 알았다. 졸업할 때까지 정말 열심히 했다.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적은 꽤 좋은 편이었다. 선생님은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치했다. 여자 1등과 남자 1등을 같이 앉혔다. 어떤 경우에는 여자 꼴찌와 남자 1등을 같이 앉힌 적도 있다. 그래야 공부를 열심히 한다며 상황에 따라 수시로 자리를 바꿨다. 그때 내 짝꿍 했던 남자애가 있었다. 공부 잘하던 친구였다. 지금은 의사가 됐다. 그 친구네 집은 우리 집에 비하면 부자였다. 우리 집은 육성회비를 늦게 낼 정도였다. 선생님은 육성회비 안 가져온 사람 이름을 칠판에 적어놓곤 했다. 창피했다. 가끔 그 친구가 우리 집 걱정을 해주곤 했는데 그것마저 창피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를 위한다고 해준 말이었는데 난 그게 창피해 늘 도망 다녔다. 2년 동안 탁구반을 했다. 기본기 정도는 배운 셈이다. 


  중학교에 진학했다. 거기는 탁구반 자체가 없었다. 거기도 기계체조반만 육성했다. 우리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이 갈 중학교는 내가 간 그 중학교 말고 다른 중학교는 없다. 다른 데 갈 데가 없다. 선택지가 아예 없다. 다른 곳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했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그 중학교로 갔다. 중학교를 가면서 난 탁구와 멀어졌다. 중학교에도 특활반이 있기는 했으나 탁구반은 아예 없었다. 특활반 자체에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중학교 땐 무슨 특활반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탁구와 멀어졌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고 했지만 그 날개를 난 본 적이 없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다. 직장에서 동호회 모집을 했다. 탁구반이 있다. 얼른 가입했다. 강당에 탁구대가 설치됐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잠깐씩 탁구를 치곤 했다. 난 초등학교 때 이후로 탁구를 쳐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때 배운 게 있어서 남자 직원들과 쳐도 실력이 뒤처지지 않는다. 여직원들 중에는 나만큼 잘 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탁구 치러 온 사람들만 봤을 경우의 수다. 


  동호회가 활성화되자 주변에 있는 회사들과 시합을 하기도 했다. 직장 동호회라는 게 그렇다.  잘 나가다가 어느 순간 기세가 꺾인다. 탁구 동호회도 그렇게 됐다. 탁구, 볼링, 축구 등 여러 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탁구는 두 사람이 친다. 혼자선 불가능하다.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거기서 공은 너와 나의 전달매체다. 내가 친 공은 너에게로 네가 친 공은 나에게로 넘어온다. 그 공은 꿈이 되기도 한다. 도착하기 전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너도 나도 그런 공이 될 때가 있다. 박민규 소설 '핑퐁'으로 잠시 들어가 본다. '그 순간만큼은, 세계가 정지해 있었다. 핑, 퐁, 핑, 퐁, 세계가 다시 움직인 것은 우리의 랠리가 시작되면서였다.' 그는 세상을 향해 '다들 잘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나에게도 물어본다. '나는 잘 살고 있나?' 잘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말하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 지금도 초등학교에 가면 플라타너스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어린 시절에도 안기지 않았던 플라타너스, 지금도 품어지지 않는다. 품으려고 한 것 자체가 모순이다. 누군가를 품는다는 것은 오롯이 그를 이해해야만 한다. 난 플라타너스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안기지 않을 수밖에 없다. 플라타너스도 컸다. 나도 컸다. 그때 가지고 놀던 그 공들은 지금쯤 어느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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