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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Mar 04. 2021

바퀴를 멀리 보내는 방법

 


  자전거에 엉덩이 올리기가 힘들다. 나는 초등학생이고 자전거는 아빠 자전거다. 내 발은 작고 바퀴는 크다. 내 키보다 훨씬 큰 자전거에 올라타기란 정말 어렵다. 초등학생이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큰 자전거다. 바퀴는 두 개다. 뒷바퀴는 내 짝꿍 같다. 어떻게 보면 앞바퀴가 커 보이고 어떻게 보면 뒷바퀴가 커 보인다. 친구랑 책상 때문에 싸우곤 한다. 책상은 하나고 의자는 두 개다. 어떤 날은 내 자리가 넓고 어떤 날은 짝꿍 자리가 넓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티격태격한다. 내 친구는 세발자전거를 마스터한 후 두 발 자전거로 갈아탔다. 난 세발자전거를 타 본 적 없다. 엄마가 사주지 않았다. 사달라고 보채지 않았다. 세발자전거 말고도 놀 거리는 많았다. 구슬치기. 사방치기, 고무줄놀이에 하루는 금방 간다. 그런 것에 지쳐갈 즈음 난 아버지 자전거에 눈독을 들였다. 자전거는 마당 한편에 서있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세탁소 일만으로도 바쁘다. 


  아버지 자전거는 논밭에 갈 때 사용한다. 밭은 걸어갈만한 거리에 있고 논은 멀다. 두 곳 다 조그만 냇가를 건넌다. 징검다리를 서너 개 건너야 갈 수 있다. 이 풍경에 걸맞은 노래가 있다.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풀잎 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고요.~~ 언제쯤 그 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거렸죠' 그 시절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면 징검다리를 건널 때마다 흥얼거렸을 것이다. 아쉽게 그 시절엔 그런 노래가 없었다.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노래다. 우리는 냇가 옆에서 강아지 풀을 뜯어 물에 띄우며 놀기도 했다. 봉숭아도 따서 돌멩이에 짓이겨 손톱에 묶어놓기도 하고 냇가에 배로 흘려보내기도 했다. 징검다리 건널 때 무르팍까지 바지를 걷으며 짧은 키를 원망하기도 했다. 어렸으니 다리가 짧은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징검다리 건너갈 때만 되면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징검다리 건널 땐 여름 장마철이 정말 무섭다. 냇물이 불어나면 징검다리도 잠기고 물살에 내 몸이 휩쓸려 가는 것 같다. 그럴 땐 기찻길 선로 위로 걸어간다.  불어난 시냇물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흐른다. 침목을 밟을 때마다 발이 후들후들 떨린다. 서너 칸 건너가다 말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순간, 숨이 턱 막힌다. 그러곤 다시는 내려다보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다시 또 선로를 걷는다. 그럴 땐 무슨 정신으로 걷는지 모른다. 오로지 발을 헛디디면 안 된다는 생각만 한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저 아래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폭된다. 그야말로 죽을 둥 살 둥 안간힘을 다해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한다. 간신히 건너가고 나면 등짝이 식은땀으로 흥건하다. 그곳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놀이에 흠뻑 빠진다. 기찻길 옆엔 아카시아가 많다. 달짝지근한 아카시아 꽃을 따먹기도 하고 잎사귀로 가위바위보 놀이도 한다. 가끔 술주전자를 들고 따라갈 때도 있다. 출렁거린다는 핑계로 엄마 몰래 홀짝홀짝 마신다. 술이 취할 정도로 마시진 않는다. 아주 조금 맛만 본다.  


  바퀴를 너무 멀리 보냈다. 다시 데리러 간다. 내가 마당을 지나가면 자전거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 어느 날 아버지한테 자전거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우리 집 담장 뒤에는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다. 가끔 게 구멍으로 학교를 가다가 선생님한테 들켜 벌 선적도 있다. 죄라면 학교가 우리 집 담벼락에 있는 게 죄다. 자전거를 끌고 운동장으로 간다. 운동장을 몇 바퀴 돈다. 운동신경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아버지가 몇 번 잡아주다가 손을 놓아도 혼자서도 잘 타게 되었다. 자신감이 붙자 운동장에서만 타려니 재미가 없다.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자전거를 탄다. 큰 동그라미도 금방 제패했다. 이젠 운동장이 시시해 보인다. 


  사람이든 자전거든 큰 곳에서 놀아야 한다. 아버지 몰래 자전거를 끌고 동네 골목으로 나간다. 몇 번 타보니 다닐만하다. 큰길로 진출했다. 큰길은 버스도 많고 차들이 많다. 아버지는 도로는 차가 많으니 절대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청개구리가 된다. 큰길로 나갈 때는 되도록이면 저녁에 나간다. 낮보다는 저녁엔 버스가 적다. 그때만 해도 버스가 많이 안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부는 당부일 뿐 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변함없이 자전거에 몸을 싣고 큰 도로로 나갔다. 시골길이라 2차선이다. 오고 가는 차들 옆에서 자전거를 탄다. 


  도로 옆으로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대부분 유리창으로 된 상점들이다. 신발가게, 이발소, 미장원, 옷가게 만화가게 등이다. 자동차가 올 때는 그래도 탈만 하다. 도로에서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는데 저쪽에서 트럭이 나타난다. 커다란 트럭은 내 눈을 놀란 토끼눈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겁에 질린 나는 신발가게로 돌진한다. 자전거가 유리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문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나도 자전거도 쓰러졌다. 조심조심 타서 그랬는지 다행히 유리창은 하나만 깨졌다. 다행히 자전거도 나도 다친 데는 없었다. 신발가게 아줌마가 나보다 더 놀랬다. 이웃사람들이 몰려왔다. 어디 다친데 없냐고 여기저기 만져보고 난리다. 아버지는 신발가에 유리창 값을 물어줬다. 그러고 나서 한참은 자전거를 못 탔다. 한번 사고를 내고 나니 겁이 났다. 후유증이 컸다. 한동안 자전거와 담쌓고 살았다. 


  시골이라 엄마 따라 밭에 갈 일이 많다. 밭에는 오이, 고추, 감자, 고구마 등 여러 가지를 심었다. 엄마는 가끔 밭으로 심부름을 보낸다. 심부름 가는 건 정말 싫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다. 그럴 땐 할 수 없이 자전거를 탄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밭으로 가는 길은 트럭이 다니는 도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랜만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밭으로 간다. 구불구불 둑길을 간다. 어찌나 구불구불한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둑길에서 중심을 잃고 밭으로 넘어지기 일쑤다. 그래도 위험하진 않다.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 물론 옷은 엉망진창이 되지만 그 정돈 아무것도 아니다. 유리창을 깰 일도 없고 돈 물어줄 일도 없다. 밭에 가서 깻잎을 따오거나 가지, 오이 등을 딴다. 밭과 논은 크지 않다. 그것은 우리 땅도 아니다. 중종 땅이다. 땽을 부쳐먹은 대가로 일 년에 한 번 시제를 지낸다. 시사 때만 되면 우리 집은 먹을 것으로 넘쳐난다. 평소에 먹을 수 없었던 것들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작은집이라 제사도 없다. 지금이야 커서 제사가 싫지만 그 시절엔 제사 없는 게 싫었다. 먹을 게 없어서. 


  시사는 일 년에 딱 한 번이다. 그 전날은 집안 어르신들이 우리 집에 다 모인다. 방마다 손님들로 차고 넘친다. 엄마는 음식 장만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음식 장만할 땐 동네 아줌마들이 대거 출동한다. 유리창 값 물어준 신발가게 아줌마도 온다. 떡, 과일, 나물, 전등 엄청나다. 이날만큼은 왔다 갔다 얻어먹는 재미가 있다. 밖에서는 동네 아줌마들이 전을 부친다. 방 안에서는 할아버지들이 밤을 치거나 문어를 다듬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문어다. 집안 할아버지 한분은 문어 다리를 칼로 오려 왕관을 만든다. 섬세한 작업이다. 어디서 그런 신기한 기술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문어다리가 어떻게 왕관으로 변하지?' 옆에서 지켜보는데도 정말 신비롭다. 내 눈에 그 할아버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신령님이자 도사님이다. 머털도사처럼 수염도 길다. 나는 그 옆에서 문어 조각을 얻어먹기도 했다. 씹는 맛이 일품이다. 문어는 그때 처음 먹어봤다. 그 옆에서는 다식 만들기가 한창이다. 콩가루, 흑임자, 푸른 콩, 송홧가루 등으로 반죽을 만든다. 다식 판에는 동물과 꽃 모양이 새겨져 있다. 반죽을 다식판에다 넣고 꾹꾹 누르면 된다. 시제 음식 중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다식이다. 음식 중에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음식이었다. 


  시제 지내는 날은 온 식구들이 산으로 간다. 아버지는 음식들을 자전거에 싣고 몇 번씩이나 산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동수단이라곤 자전거밖에 없다. 아버지 친구분들도 합세한다. 시골이라 자가용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집집마다 자전거는 있었다. 지금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듯 집집마다 자전거가 있었다. 산 주변에 사는 아이들도 구경 온다. 시제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은 줄줄이 사탕처럼 줄줄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러면 아이들에겐 까만 봉지가 하나씩 선물로 주어진다. 봉지 안에는 떡과 먹을 것들이 들어있다. 봉지를 받아 든 아이들은 봉지를 흔들며 산을 내려간다. 명절이나 돼야 떡도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 떡도 귀한 것이었다.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조청이다. 서로 먼저 초정을 찜하려고 다들 눈독 들인다. 오빠들과 동생들도 서로 먼저 조청을 차지하려고 안달을 하곤 했다. 한입 입에 넣으면 그 달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쫀득쫀득하면서도 입안에 쩍 달라붙는 맛이란 정말 기가 막힌 맛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가 된 듯하다. '이런 맛 처음이야, 그렇지' 우린 서로 입맛을 쩝쩝 다시곤 했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조청 종지를 쪽쪽 빨아먹는다. 그 이후엔 조청을 먹어본 적이 없다. 그 이후론 먹을 기회가 없었다. 일부러 사 먹게 되지도 않는 그런 것이었다. 


  시제가 끝나면 우리는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 어른들이야 물건 챙기라 바빴지만 우린 노느라 바빴다. 두 발로 두 바퀴로 열심히 놀러 다녔다. 어디든 가라고 발이 있고 바퀴가 있다. 시절을 건너면 또 다른 시절이 와 있다. 세발 달린 바퀴에서부터 두발 달린 바퀴까지 세상은 돌고 돈다. 오늘은 정말 바퀴를 멀리 보냈다.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그곳엔 항상 둥그런 바퀴들이 굴러다닌다. 바퀴가 아니어도 좋다. 둥글둥글 굴러가는 세상의 바퀴면 더 좋다. 여기까지 굴러온 바퀴면 족하다. 또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바퀴여도 좋다. 바퀴는 천천히 굴러가도 좋고 빠르게 굴러가도 좋다. 자기의 속도대로 굴리면 된다.  바퀴는 어제로 가고 내일로 간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바퀴다. 세상은 바퀴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구르는 것들은 다 좋다. 바퀴를 굴리는 사람은 나다. 그러므로 나는 소중하다. 하나만 조심하면 된다. 구르다가 남의 상점 유리창은 깨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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