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힘든 그대의 내면에서 벌어질 의문들, 첫번째 글
스물여덟 살로서 보낸 올해도 참 의미 있는 해였다. 올해 초 다소 길었던 학생 시절을 청산했고, 곧이어 신입 약사로 취직해 처음으로 돈을 벌어 보았다. 약국이라는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 배우고 깨달을 것들이 많아 정신없이 흘러갔다. 새로운 인생의 장을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더 늦기 전에 ‘총 다섯 번의 시험을 치른 수험생 시절’ 이야기를 여러 편에 이어 정리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멋모르는 학생 시절의 일화라고 진부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아이라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뭔지 모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어른이 되어 갈수록 더 잊기 쉬운 중요한 것들이 많다.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내 인생을 개척하려고 노력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성취하고 싶은 무언가를 가진 분들, 그리고 미래의 내게도 힘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스물네 살의 나는 ‘피트 시험’이라는 약대 입학시험의 첫 도전에 실패하고 재시에 도전하는 수험생이었다. 그저 평범한 전국 만오천여 명의 수험생 중 한 명일 뿐이었지만, 시험 도전을 다시 결심하기까지 머릿속은 복잡했다. 복잡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피트 재시 도전이 망설여지는 이유 3가지>
1. 수험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기약이 없다. 더욱이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은 시험 날 하루 운이 크게 좌우한다. 소중한 내 젊은 시절 몇 년의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할지 모른다.
2. 사실 몇 년을 쏟아 붓더라도 결국 합격을 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3. 이렇게 공부해서 합격한다고 해도 그게 나의 길인지, 그만큼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재수가 필수라고 여겨지는 시험이기는 했지만, 도전하기도 전에 자신감이 바닥인데는 나만의 징크스가 원인이 되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성적은 좋아’라는 자부심으로 자존심을 채우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수능시험, 수능재수시험, 첫 번째 피트 시험 이렇게 세 번의 시험장에 가서는, 이상하게도 평소 실력 발휘를 할 수 없었다. 첫 수능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시험 전날에는 괴물에게 맞아 죽는 악몽을 꾸게 하였고, 시험장을 들어서면 나를 심하게 불안하게 만들었다. 시험을 치는 도중에는 문제를 차분히 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되는 자신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평소 모의고사 성적보다 훨씬 낮았다. ‘나는 큰 시험에는 맞지 않는 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신을 스스로 옥죄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도피하고만 싶었던 나는 충동적으로 독일 유학도 알아봤는데, 사전 정보 없이 단지 비용이 저렴하다는 인터넷 검색 결과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단칼에 거절하셨고, 사실상 피트 재수 이외에 선택의 자유가 없어 보였기에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피트 재시를 도전하며 다짐한 세 가지 원칙>
1. 기약 없이 공부할 수는 없다. 1년만 더 목숨 걸고 해 보자.
2. 최선을 다 하고 나서도 합격을 하지 못하면 받아들이자.
3. 시험을 쳐 보지도 않고 합격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심리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기 합리화다. 일단 내 앞에 주어진 일에 끝을 보자!
어떤 일을 ‘목숨 걸고 하자’는 말은 어쩌면 반감이 생기기 쉬운 말이다. 물론 독하게 마음먹은 것을 표현한 말이지 실제로 목숨 걸 정도로 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목숨은 고작 시험 하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내 인생 전부를 걸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절박함이 필요했다. 내 주변의 많은 소위 '공부의 신’들은 이런 비장한 각오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공부해 쌓아나가는 시간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실패의 연쇄 반응을 끊어야 하는 나에게는 이때껏 해보지 못한 단단한 각오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먹은 그 순간, ‘올해는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자신감이 생겼다.
최선을 다 하고도 합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선을 다하면 무조건 합격’, 또는 ‘내 인생에 불합격은 있을 수 없다’라는 절대적인 낙관이 오히려 내게 독이 되었다. 무조건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강박 탓에 항상 실전에서 시험지에 기가 눌리고 나 자신이 을이 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고, 시험장에서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다 풀겠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공부해서 합격한다고 해도 그게 과연 나의 길이 맞는지, 그만큼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심리는, 결국 두려움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차렸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나무에 높이 열려서 따 먹지 못하는 포도를 올려다보며 ‘저건 신포도일 거야’라고 합리화하는 여우와 다를 바 없었다. 실패할까 봐 두려움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직 젊은 내가 ‘내 인생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다.
한때는 어서 세상으로 나가서 내 이름을 세상에 알릴 만한 대단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특별한 존재인 나를 빨리 알아달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착실하게 쌓은 시간만큼 가장 필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의 생각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표하는 많은 것들이 예상보다 늦어졌다. 그제야 왜 내가 조급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었고, 결국 세상의 속도에 꼭 맞출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멀쩡하게 잘 살아 있었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았으며, 상황을 바꿀 기회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지금 당장 무엇을 해내고 타이틀을 얻어야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의 앞에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잘해내는 사람이야말로 그 순간 전 세계에서 1등으로 멋진 사람임은 분명하다.
잠시 잊어버리고 조급해했던 것 같다. 빨리 돈도 벌고, 약사로서의 역할도 잘 해 내고 싶고, 직장이라는 곳에서 빨리 잘 적응하고 싶었다. ‘지금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다시 떠올릴 때다. 미래에 간절히 원하는 것이 생기게 된다면, 나는 틀림없이 다시 그때의 열정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기에, 이때의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