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힘든 그대의 내면에서 벌어질 의문들, 두번째 글
“세상은 내 편이 아니구나”라고 느껴본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지하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던 시절 마음이 매우 힘들었기에 알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나는 세상이 내 편이고 내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던 자의식 강한 학생이었다. 다른 콤플렉스들도 있었지만 ‘공부’라는 영역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었고, 열심히 공부한 만큼 세상이 나를 외면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첫 번째 큰 시험이었던 수능 시험을 실패하게 되자 너무나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이때 ‘세상이 내 편이 아닐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단순히 시험 하나 실패하고서 그런 생각까지 한다는 것이 지금 어른의 시선으로는 좀 우습지만, 당시에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운의 흐름을 탄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바로 ‘실패자’가 될 수 있다는 자체로 놀란 내 마음은 결국 제대로 진정되지 못했다. 다음 해 시험에서도 어김없이 시험이 다가올수록 점점 두려움과 긴장이 계속되었다. 세상이 더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고,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지만 고칠 수 없었으며, 반항할 수 없는 손에 이끌려 내리막길을 걷는 것만 같았다. 나보다 평소에 성적이 안 좋았던 친구, 나보다도 열심히 공부 안 했던 친구들도 합격하는데, 나만 운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형체조차 뚜렷하지 않은 세상의 멱살을 잡고 따지고만 싶었다.
하지만 인생을 건다는 각오로 시험을 시작한 이상, 나는 세상을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사실 '믿어보기로 했다'는 표현보다,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세상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선이 악을 이긴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와 같은 아이 시절부터 믿었던 명제가 사실임을 믿어야 했다. 하지만 경험상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시험에 합격’과 같은 단순한 인과관계의 법칙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노력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재정립했다.
스스로 생각해 본 노력의 인과관계는 이렇다. 공부를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는 결국 오늘 한 노력이 무조건 내 미래의 승률을 높일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즉, 운을 노력으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어야 한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지만, 내 노력이 내 미래에 반드시 관여한다는 믿음은 그 어떤 것을 이뤄내는 데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난 순간 각자의 사주와 운세를 가지고 있을지도, 그래서 하필이면 내 시험 운이 좋지 않은 날이 시험 날로 당첨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에 그날의 시험운에 따라 실패할 확률이 51%라고 정해져 있다고 해도, 100일 동안 매일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확률을 단 0.01%씩이라도 매일 높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공부하면 그렇지 못한 날과 아주 조금이라도 차이를 내지 않을까. 결국엔 시험날 성공 확률을 50%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덕분에, 매일 충실하게 공부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세상을 믿어 보기로 했으면, 허무주의에 다시 빠지는 것을 막고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계속 열어 두기 위한 방법도 필요하다. 그 방법은 각자 다를 것인데,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좋아하다 못해 ‘경이롭다’라고 느끼는 것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세상을 믿어 보자는 결심에 도움을 준 것이 있는데, 바로 쇼팽과 모차르트 등의 클래식 음악이다. 공부가 안되거나 우울할 때 음악을 들으면 답답한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르륵 풀어졌다. 자기 전에도 자주 들으며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했는데, 어느 날 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으면서 특히 감동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 곡을 평생 원할 때마다 들을 수 있는 자체만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었다. 나에겐 그런 아름다운 음악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곡을 연주해 주는 멋진 음악가들이 있는 한 세상은 믿을 만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해 주는 많은 소중한 사람들과 존재들이 있다. 나를 응원하는 가족, 친척이 있으면 가장 힘이 되고 좋겠지만, 혹여나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자. 솔직히 나는 우리 집 앞을 변함없이 듬직하게 지키고 있는 산을 매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심리적 도움을 받았다. 또 인터넷에는 좋은 에너지를 내뿜는 멋진 사람들의 글이나 영상도 많기에, 주기적으로 찾아보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세상의 아름다운 존재들을 의도적이라도 볼 수 있도록 노력해 보면 어떨까.
피트 재수를 하던 2015년 일기장 제일 앞 페이지에 「맹자」에 나오는 문구를 써 놓았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하실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마디를 고통스럽게 하며, 하고자 하는 일에 참을성을 길러 주어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을 믿고 내 편이라 생각하고,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기. 많이 들어서 새롭지 못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기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이다. 내가 내 인생에 의미와 이야기를 부여하는 만큼 마치 이야기와 같은 멋진 현실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믿자. 마음을 열고, 더 나아가서는 세상을 위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보자.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 세상’만큼 든든한 존재가 없다. 최선을 다한 뒤, 내 편인 세상에 딱 그만큼의 선물을 당당히 요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