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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Aug 08. 2023

살고 싶다고 말해

미련없는 척 하지마!

어느새 7시가 넘었다. 

조문하러 와서 반가운 이들을 만난다. 조금 전까지 상주를 껴안고 슬픔을 나누었는데, 곧이어 등장하는 친지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삶과 죽음의 공존, 아니, 죽음보다 센 삶을 목도한다. 

갈 길이 멀지만 사촌들 간의 정이 깊어 누구도 쉬이 일어나질 않는다. 사촌 오빠는 큰 손으로 내 손을 지긋이 잡아준다. 오빠의 손길에서 큰아버지와 아빠의 기운, 가문의 품을 느낀다. 불안과 초조, 걱정이 오빠 손아귀에서 힘을 잃는다. 

나와, 나를 따라다니는 부모와 자녀들의 안부를 서로 나눈다. 이제 중년이 다 된 언니 오빠들, 퇴직을 앞둔 기대와 걱정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그 가운데는 박봉에 비싼 임대료를 물고 도시 생활하는 자녀들 걱정이 포함돼 있다. 

밖이 훤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다. 내일이면 발인이라 오늘이 마지막 조문 일이다. 퇴근하고 오는 지인들로 식장이 붐빈다. 그제야 우리는 자리를 비켜드리자며 일어섰다. 거제로 진주로, 부산으로. 각자 목적지로 향한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붉은 노을이 뒤따라온다. 슬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탄성이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힐끗 쳐다볼 뿐 말이 없다. 이 사람과 살면서 아쉬운 것 중의 하나다. 좀처럼 감탄할 줄 모르니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다. 눈으로만 보기 아까워 사진을 찍었다. 글벗 단톡방에 올리고 다시 보니, 조금 전보다 더 짙고 풍성한 색이 펼쳐진다. 상상 속의 용이 뿜어내는 불꽃 같다. 빛의 산란과 대기층과의 연관성은 모르겠다. 불덩어리 같던 태양은 고개를 넘어갔고 낮에 본 파란 하늘은 다른 성분이 되어있다. 보라도 분홍도 아닌 색이 붉음과 붉음 한가운데 금빛을 감싸고 있다. 그 아래 검은 산맥은 뒷배경이 되어 주연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오로라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사람들처럼 지구와 태양이 펼치는 선물에 감탄한다. '아, 이 시각에 노을이 있었구나.' 조망 없는 키 낮은 주택으로 이사 와 노을을 잊고 살았다. 

"죽고 나면 이런 광경 못 보겠네, 아쉽겠다."

죽음 앞에 미련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 만큼 살았고, 삶이 재미날 수도 있단 걸 알고 열심히도 해봤다. 아이들도 다 컸다. 남편은 생계형이라 삶에도 가정에도 익숙해 나 없이도 잘 살 사람이고, 그 외 산 사람은 다 살기 마련이다. 내가 괜찮으니 나는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본 노을은 건방진 나를 설득하는 듯하다. 말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깨우치듯 펼쳐서 보여주신다. 죽어도 미련 없다는 말은 죽음만큼 상념이 깊지 않았다는 뜻이고 지독하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나였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죽음이 다가온 적이 있었다.

마흔이 되기 전이었다. 생리가 길어졌다. 비교적 정확한 패턴에 이상이 온 것이다. 곧 괜찮아지겠지, 하며 늑장 부린 게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앉았다 일어서려는 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비로소 큰일이 났음을 직감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병원에 갔다. 

사진상의 시커먼 덩어리가 내 눈에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그걸 자궁암이라고 했다. 그다음부터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몰라, 아니, 아무 생각도 못 하고 걸었다. 한참을 걷다, 죽는 순간 마지막 빛을 발하는 백열등처럼 남편 생각이 났다. 

"여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말문 터진 아이처럼 울음이 새어 나왔다. 어느 빌딩 안으로 숨어 들어가 "암이래"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쏟았다. 앞뒤 분간이 서지 않았고 뒷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병원에 가보자. 00 병원. 내가 그쪽으로 바로 갈게." 

그때 남편은 경남 고성에 출장 중이었다. 갈피 못 잡고 있던 내게 다음 액션을 알려준다. 지하철을 타고 바로 이동했다. 늦은 오후라 진료 볼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확신이 없어도 가야 했다. 가야 할 곳이 정해지자 자동으로 발걸음이 띄어졌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하고 2층 진료실 앞에 가 기다리자 어느새 남편이 올라온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시간과 거리가 아니다. 단속도 속도 제한도 다 무시하고 날아왔다. 

교수형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듯, 내일은 없을 듯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래도 저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 생각이 난다. 아직 조금 더 크는 거 봤으면 좋겠는데, 아직 어린데, 죽음이란 저것들 자라는 걸 더는 못 본다는 말이구나. 애들 결혼식도, 아이 낳고 키우는 것도 못 본다는 말이구나.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고생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가는구나. 그래도 내 삶엔 집착이 없구나, 의외네.

"암은 아니고요, 물혹이 굉장히 커졌고 많아요. 일주일 약 먹고 다시 한번 봅시다."

암이라는 말보다 더 무너지는 말이다. 암이 아니란 말에 온몸에 힘이 풀렸다. 암이 아니라니? 이런 걸 오진할 수 있나? 그게 의사인가? 이렇게 위협하고 협박해서 돈을 벌고자 했던 걸까? 

안심과 허탈함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은 최고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한다. 나만큼이나 놀랐을 사람이다. 나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함이지만, 음식 들어갈 마음자리가 없었다. 

"여보,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나랑 당신은 하나도 생각 안 나고 애들만 생각난다. 내 삶은 하나도 억울하지 않고 애들 못 본다는 것만 아쉬운 생각이 든다?"

꼴까닥 세 시간을 살아서 죽음 체험을 했다. 거르고 걸러 금을 채취하는 사람들처럼 죽음 앞에 미련 남는 건 아이들뿐이었다.

가끔 그날을 되새겨본다. 똑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지금은 어떤 게 미련일지 그때처럼 직면하고자 한다. 십 년이 흘렀고 아이들은 다 컸다. 이미 몸도 마음도 나보다 더 커 이젠 나 없이도 잘 살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 미련 없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지금 죽어도 나와 내 주변인들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아닐 것이라고 노을빛이 말한다. 태연한 척, 의연한 척하는 나에게 살고 싶다고 말하라는 듯하다. 그게 바로 집착의 반증이라고 자연이 말해준다. 별것 아닌 일에도 감탄하고 감동하기 좋아하면서 이걸 두고 어떻게 미련 없이 갈 것이라는 듯, 이래도 괜찮겠냐는 듯 화려한 빛을 펼쳐 보인다. 그래, 황홀한 빛 앞에 나는 가면과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는다. 오래오래 이것을 누리고 싶다.  

부산에 들어설 즈음 눈앞에 둥그런 달이 나타난다. 저게 달이 맞나? 싶을 만큼 이전에 본 적 없는 크고 둥근 달이다. 달이 내게 온 건지, 내가 달에 가까워진 건지 헷갈린다. 노을을 두고 달려왔더니 노을보다 더한 달이 종용한다. 얼렁뚱땅 모른 척 넘어가려 했더니, 작은 나를 작다고 말하라고 둥싯 달이 목을 조르는 듯하다. 자기 비하가 곧 자만임을 인정한다. 허무하게 떠난 고인의 삶을 생각한다. 살아 있음이 감사함을, 지극히 미련 둬야 하는 게임임을 인정한다. 언제 가도 아쉽지 않도록 더 진하게 누려야 함을 다시 새긴다. 가면을 벗고 삶에 치근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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