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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Dec 02. 2021

Undrafted.

Fill in the blank. _____ Joohan.


30세를 한 달여 앞둔 지금 내가 받은 가장 값진 수업을 소개하려 한다.


2017년 10월 30일

2019년 11월 4일


이 시기에 받은 2강의 수업들은 내가 그동안 배웠던 어떤 것들보다 가치 있고 훌륭한 수업이었다.



Undrafted.
[형용사] <미국> (스포츠 선수가) 공식적으로 선발 혹은 계약되지 않은.




7살에 농구공을 잡은 이후부터 나의 꿈은 줄곧 ‘프로 농구 선수였다. 내게 있어 프로 농구선수라는 단어는 단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을 뛰게 만들며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로 뚜렷하고 기분 좋은 목표였다.  계약을 맺어 억대 연봉을 받는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농구를 많은 관중들의 눈앞에서 선보일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하도록 만들었다.


선수시절 #1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노력했고 공부했으며 좋은 감독님과 코치님을 만나 농구 실력을 발전시켜 나갔고 좋은 동료를 만나 재밌게 농구하고 여러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둔 덕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Brigham Young University Hawaii에서 NCAA Basketball(미국 대학농구)에서 3년 동안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재학 중 만 25세가 되어 병역 미필자 신분으로 국내로 들어와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 길로 2017 KBL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선수로서 아니 꿈을 향해 많은 노력을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을 꿈꾸었지만 그것까지 바랄 겨를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단지 내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서 프로 레벨의 농구를 선보이는 것. 단 하나의 소원이었다.


하지만 그 해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분노하고 슬퍼하며 악에 받친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첫 수업에서 나는 세상을 원망하는 걸 배웠다. 나는 잘하는데 세상이 몰라준 거다. 더러운 현실.


언드래프트 된 후 3주 후에 곧바로 군에 입대했고 농구 선수인 나를 알고 계신 강원도 인제의 한 농구 팬이자 ㅇㅇ포병대대 대대장님께서 강원도 도민체전에 나갈 것을 권유하셨고 나는 이에 응하여 2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선수시절 #2




농구선수 이주한이 되고 싶었다.


전역 후 3개월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다시 한번 드래프트에 참가하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훈련했다. KBL이 원하는 선수가 무엇인지부터 공부하고 그에 맞는 훈련을 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휴식이라는 것을 내 계획에 넣지 않고 매일같이 나를 몰아붙이며 훈련했다.


 휴식이 없는 100일여간의 고된 훈련은 드래프트 당일 몸살로 이어졌다. 하지만 몸살기가 있던 것 치고는 몸이 굉장히 가벼웠고 괜찮은 트라이아웃 경기를 치렀다. 경기를 마치고 이상하게도 기분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는 드래프트 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에서 나온 즐거움이 아니라 ‘이 정도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미련이 없을 만큼 나 자신에게 거짓 않고 노력했다’와 같은 개운한 기분이었다. 이 날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정말 괜찮았다. 이번 수업에서는 나의 도전의 끝이 꼭 엄청난 결과로 마무리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과 모든 일엔 일어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도전의 끝이 엄청난 성공으로 마무리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이 수업을 듣기 전 도전이란 것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한 노력을 한 다음 어느 시점이 되면 설정한 목표를 이루었냐 못 이루었냐로 판단함으로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라고 정의한 채 살았었다.


하지만 현재는 ‘나 자신에게 떳떳한 노력을 쏟아부었다면 가시적인 결과에 상관없이 충분히 성공적이고 값진 도전될 수 있다’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왜냐하면 내가 기울인 집중력 있는 노력의 결과는 내가 원하는 형태와 시기에 나타나지 않을 뿐. 결국 내 인생에 물들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고 내 인생의 경로를 재정비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나는 공을 처음 잡은 7살부터 공을 놓은 27살까지 약 20년간 나를 수식하는 블랭크(형용사)는 ‘농구선수’라는 글자로 채워져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믿고 있었다.


농구선수 이주한.


이를 이루기 위해 20년간 한 곳의 목적지만 바라보고 미친 듯이 달려왔지만 2017, 2019년의 두 번의 드래프트를 브레이크 삼아 드디어 멈출 수 있었고 그때서야 주변을 둘러보고 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


문득 농구선수가 아니더라도 농구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농구를 직접 하는 것뿐만 아니라 농구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사랑했었다. 선수 시절 상대팀과 선수를 분석하는 일과 친구들에게 농구를 가르치는 것에도 보람을 느끼며 이후 좀 더 정확하게 가르치기 위해 리서치와 커리큘럼을 만들기도 했었다.


이후 나는         을 다양하게 채우고 경험하고자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국가대표 포워드 정효근 선수 트레이닝


코치 이주한.

국내 최고의 농구 아카데미 스킬 팩토리에 취업해서 2년간 코치로서 유소년부터 프로 레벨의 다양한 선수들을 트레이닝했고 이는 나의 향후 진로 선택에 있어 엄청난 경험이 되었다.








트레이너 이주한.

WKBL 우승 11회의 명문 구단인 아산 우리은행 여자 프로농구팀의 트레이너로 21-22 시즌 현재 선수 육성 및 전력분석 업무를 하고 있다. 훌륭한 지도자 곁에서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은 내일 내게 큰 공부가 된다.



나는 앞으로도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할 것이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을 생각이다. 도전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들이 양질의 수업이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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