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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훤림 Mar 15. 2024

딸은 의전원, 엄마는 박사: 극복 모녀의 도전 스토리

12. 현실 감각 그리고 주제 파악

   나는 길눈이 아주 어둡다. 그래서 세 번 이상 간 길이 아니면 길을 찾지 못할뿐더러 한, 두 번 정도 간 길은 아예 처음 가는 곳인지 안다. 그래서 내가 걷는 길이 늘 새롭고 흥미진진하다는 장점이 있다. 동행이 있다면 길 찾기에 있어서는 동행에게 의지하는 편이다. 부족한 것을 알면, 자신의 고집을 주장하지 않고 더 잘 아는 사람을 잘 따르면 될 일이다.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그런 판단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의견을 접거나 주장을 굽히는 일은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꼭 밀고 나가야만 승리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더 나은 의견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일 때 자신의 고집을 끝까지 주장하는 방식은 리스크가 크고 그 리스크를 결국 홀로 감당하게 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객관적인 사고를 반드시 요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에서는 또 다르다. 내 인생이고 내 책임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길을 잘 찾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헤맬 것을 감안하여 늘 일찍 출발한다. 성질이 급해서 기다리는 걸 못 견디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날 기다리면서 스트레스를 받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현실 감각이 없지만, 지나치게 자신에게 가혹하여 주제 파악 능력이 넘치는 편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때때로 순진한 바보 취급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게 조언하거나 나를 리드하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정확하게 주제 파악을 하는 것이고 협력적인 스타일이라서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인데, 황당하게도 날 바보취급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간다고 할 적에 겹쳐서 터진 집안 문제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그닥 여유롭지 않은 상태가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 심신이 약해져 있는 내게 딸은 학교라도 다니면서 좋아하는 공부를 해서 회복하길 바랐지만, 친정 식구들은 주제 파악도 못하고 현실 감각도 없다면서 나가서 생활비를 벌 궁리나 하지 무슨 공부를 한다고 하냐면서 한심해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대학을 안 나왔다고 그동안 무시했으면서 늦은 공부하는 걸 한심하게 여기는 것도 아이러니였고, 나가서 생활비를 버는 게 급선무면 아픈 아버지를 자신들이 맡을 테니 넌 네가 살 궁리를 하라고 하는 게 온당한 게 아닌가. 아버지가 무섭다거나 나쁜 사람이라면서 들여다보지도 않는 이들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내게 아버지 돌봄을 떠맡겨 놓아었다. 그러면서 돈 벌 궁리는 하지 않고 한심하게 공부나 한다고 함부로 말하다니! 애당초 일관성이라는 게 없이 자신들이 편리한 방식으로 이리저리 꿰어 맞추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게다가 그 모든 말들이 나를 걱정해서 하는 잔소리였을 뿐이라고 했다.


   결국 나중에는 내 형편을 걱정한 게 아니라 내가 공부한다고 부모님 돈을 축낼까봐 그랬다는 것이 밝혀졌다. 8년이 넘도록 홀로 아버지를 부양하느라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동생이 내내 죽을 둥 살 둥 살아도 보태기는커녕 모여서 험담하기를 일삼으니  말이다. 나는 공부하고, 돈 벌고, 아이들 키우고, 아버지 부양하느라 하얗게 늙었다. 이래서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인가 보다.  

   

   생각해보면 현실 감각이 없는 몽상가인 까닭에 나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갔다. 정확하게 계산하고 현실에 맞추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효도나 양육 같은 것은 계산해서 될 일이 절대 아니다. 사회운동이나 봉사 같은 것은 더욱 그렇다. 그렇게 계산 속 없는 사람들, 마음이 이끄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덜그럭 소리가 나면서도 굴러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어느 정도 다들 몽상가이다. 그러니 나아질 것이라 믿고 어려운 현실을 버티고 살아내는 것이고, 자신의 아이들이 훌륭한 어른으로 자랄 것으로 믿고 열심히 양육하지 않는가? 아무 근거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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