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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훤림 Mar 18. 2024

딸은 의전원, 엄마는 박사: 극복 모녀의 도전 스토리

15.  버티는 힘

  박사 과정 첫해를 무사히 보내고 기말 과제들을 하느라 한 2주쯤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때였다. 과제들을 어찌어찌 제출하고 나니 묵은 집안일들이 눈에 거슬렸다. 건강 체질이 아닌 까닭에 나는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살림은 대충 살기로 결심했었다. 체력 안배 때문이었다. 특히 청소는 해도 해도 반복이라서 굴러다니는 먼지에 인내심을 조금만 갖는다면 얼마든지 거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울 김장은 살림의 종류가 다른 일이다. 김장은 솔직히 쌀과 동급에 올릴 수 있을 만한 식량의 개념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박사 과정에 들어오기 전에는 늘 세 가지 종류의 김치를 냉장고에 상비하던 사람이라서 12월 하순이면 시기상 이미 늦은 김장을 얼른 담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책상 앞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 허리가 약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휴식도 없이 김장을 담갔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쉽지 않은 고된 일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사고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는 김치통을 옮기다가 악-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몸이 휴식할 때를 강제로 선언한 것이었다. 나는 그 후로 한 3주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TV와 스마트폰을 벗하며 우울한 겨울을 시작해야 했다.


  그게 단지 시작이었던 이유는 허리가 나을 만했을 때, 코로나19에 걸렸기 때문이다. 집안에만 있었어도 아들이 코로나19를 옮겨다 선물한 까닭에 우리는 하루 차이로 환자가 되었다. 열과 몸살에 더해 천둥 같은 기침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엄마라는 것이었다. 

  아들이야 아프면 그만인데, 환자인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그냥 아플 수만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휘청거리면서 밥을 해서 아들을 먹여야 했던 것이었다. 아파도 일어나서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해야만 했다. 도저히 못하겠어서 배달 음식을 시켜도 용기를 닦아야 하고, 기침 때문에 혹은 약을 먹어야 하기에 늘어난 개수대의 컵을 씻어야만 했다. 거의 한 달을 환자로 지내면서 미칠 지경인 상태였지만, 온라인 회의를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으면 방긋거리고 웃으며 회의를 했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버텼다. 아마 아이들이 없었다면, 못한다고 손들고 벌써 그만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줌마’라는 단어가 더럽혀지고 희화화된 세상이지만, 아줌마의 힘이 강한 것은 부끄러움도 역경도 사랑하는 아이들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나의 버티는 힘이 되어주었다. 

    

  살다 보면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 온다. 그럴 때면 무기력증이 바이러스처럼 나를 잠식해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온갖 정성을 들여 썼던 논문이 한 학술지에서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을 때, 나는 그런 좌절감을 강하게 느꼈었다. 심사자가 쓴 심사내용을 읽는데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반박할 수도 없는 맞는 말들이었고,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열다섯 시간씩 시체처럼 누워 지내며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쳤지만, 금방 나아지지는 않았다. 


  첫 논문이 심사를 통과하여 이미 게재가 되었고 그 논문은 두 번째였는데도 첫 논문보다 더 정성스럽게 오랫동안 공을 들인 까닭에 마음에서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초보 연구자로서 당시는 내 논문이 내가 낳은 아이 같았다. 논문을 쓰고 심사받는 일을 다시는 시도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그 논문은 가슴에 묻고 나는 상한 자존심을 다독이며 또 다른 논문을 쓰게 되었다. 


  불량품 판정을 받은 논문으로 상했던 자존심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내 삶을 직관하고 있는 진짜 내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보기에 엄마는 늘 아슬아슬했던 것 같다. 며칠씩 밤을 새우고, 회의니 일이니 바쁘게 살다가 체력을 다 쓰고 집에 와서 뻗어버리는 엄마를 보다가 한 번은 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무 힘들면 그만 해도 돼. 아무도 엄마에게 학위를 가져오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어. 포기가 어떨 때는 합리적인 선택일 때도 있어.”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 딸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데, 죽기 살기로 의전원에 가겠다고 대학 생활의 즐거움 따위는 포기하고 연구에 매달리고 있었으면서,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일단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면 포기해도 된다는 말을 서로에게 입버릇처럼 했다. 그러나 그 말은 스스로에게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자꾸 질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아이들이 포기해도 된다고 말할 때면, 나는 다시 벌떡 일어나 최선을 다 해보고 포기하는 거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러면 또 어느 정도는 더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목표를 이루는 일은 용감하게 도전하는 것과 힘을 내어 열심히 해내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생각대로 잘되지 않는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버티어내는 힘도 중요한 것 같다. 자존심이 상하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장애물이 나타나도 꾸역꾸역 버텨내는 일은 성취라는 열매를 얻기 위한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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