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서 산다는 것
딸램: 엄마는 꿈이 뭐였어?
엄마: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딸램: 헐~ 현모양처?
엄마: 엄마 어렸을 적에는 여자로서 최고로 성공한 인물로 신사임당을 꼽았거든. 율곡 같은 훌륭한 자식을 키운 신사임당이나 헬렌 켈러를 성공적으로 교육한 설리번 선생 같은 조력자로서의 여성 이미지를 중요시하던 때였으니까. 당시에는 다른 성공 모델이 별로 없었어.
딸램: 우리가 율곡만큼 훌륭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자식을 열심히 키운 거 하나는 인정할게.
엄마: 고맙네. 신사임당이 되려고 유기농으로 골라 먹이고, 목에 피나도록 책 읽히면서 노력은 했는데… 그때는 몰랐어. 완전히 속았더라고.
딸램: 뭘 모르고 속은 건데?
엄마: 신사임당은 집안에 노비가 170여 명이나 있었대.
딸램: 엄청 부자였구나?
엄마: 밥 짓고, 청소하는 일은 노비들이 했고, 자기는 우아하게 그림 그리면서 돈으로 싸 발라서 아들을 키울 수 있었던 거야. 난 그것도 모르고 노비 몇 사람분의 역할부터 신사임당 역할까지 해내려고 하느라 거의 죽을뻔했단 말이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딸램: 결국 내가 율곡처럼 못 크고 이 정도밖에 안 된 건 다 가정환경 때문이었군. 애초에 불가능했네.
엄마: 헐~
엄마: 여자 외과의사가 남자 의사에 비해 수술 후 사망이나 부작용 발생률이 훨씬 적대.
딸램: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엄마: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술 시 주의력, 협력적 태도, 환자 중심적인 결정 면에서 여자 의사들의 판단이 환자의 수술 후 상태에 유의미하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네.
딸램: 지난번에는 여자 운전자들이 큰 사고를 덜 일으킨다고 하지 않았어?
엄마: 그런 연구 결과도 있었지. 그것도 협력적 태도와 상관이 있지 않을까?
딸램: 왜 이런 건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는 거야?
엄마: 알려지면 큰일 나니까. 여자들이 더 훌륭하다는 사실은 인류가 오랫동안 지켜온 비밀이거든.
딸램: 이렇게 발표가 되는데, 비밀은 무슨!
엄마: 다들 알면서도 이슈가 될까 봐 쉬쉬하는 거잖아.
딸램: 여자들이 수학 못 한다는 얘기는 맨날 떠들어대면서?
엄마: 그 얘기라도 하면서 위안을 삼는 거지. 안 그러면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할까 봐. 여자들이 차별받았던 것처럼 남자들이 그렇게 되면 안 되니까 겁먹은 거야.
딸램: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 이런 비밀은 쉬쉬하자?
엄마: 큭큭. 여하튼 사회가 복잡해지고 공동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경쟁보다 협력에 익숙한 여자들이 탁월성을 보이는 영역이 넓어지는 것 같아.
딸램: 그런데 공감, 배려, 협력으로 얻은 성과는 경쟁에서 얻은 것처럼 돈으로는 환산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엄마: 공감하고 배려하고 협력하는 마음으로라면 돈 더 달라고 하기는 어렵겠지.
딸램: 불합리해. 받아들일 수 없어!
엄마: 역시 넌 확실히 여성치고는 공감, 배려, 협력이 좀…!
딸램: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