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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Nov 06. 2022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스스로를 가짜 삶에 밀어 넣어야 하는 우리에게

1900년대 중반 미국은 아주 부유하고, 강한 국가가 되었다. 누구나 그곳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곳, 그게 미국이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성공신화로 덮여 있는 공간, 그러나 그런 꿈이 가득했던 미국도 모두의 꿈을 이뤄주는 곳은 아니었다.


요즘 우리는 능력주의의 신화가 만들어 낸 숨 막히는 사회를 느끼고 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분명히 긍정적인 이야기이고 우리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노력하고 노력해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깨우고,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그 말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달달한 이야기이면서 반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노력하지 않은 자'라는 낙인을 씌우고, 실패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돌리게 되는 씁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성공신화인 미국, 능력과 노력, 결과와 과정이 동일시되는 현상이 개인에게 주는 커다란 부담과 압박을 포착한 연극이 바로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물론 1950년대에 쓰인 책이지만 미국의 자본주의, 미국의 능력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지금의 우리에게도 이 책은 전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 윌리는 도시에 살지만 중산층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부유하지 않은 세일즈맨이다. 이제는 나이도 많아 예전만큼 세일즈가 잘 되지도 않는다. 그는 사람들을 끄는 매력으로 승부하는 세일즈가 멋있어 한평생 세일즈를 해왔지만 사실 그에게 남은 것은 할부금을 거의 갚은 집 외에는 별 게 없다. 그래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노력했던 그는 가진 것 없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다.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그의 노력은 없었던 것이 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보지 않기 시작한다. 부풀리고, 과장하고, 성공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의 삶은 가짜가 되어간다.


윌리가 부정하는 현실은 그의 아들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첫째인 비프는 사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배도 타보고, 농장에서도 일하면서 몸을 쓰는 일을 전전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착해서 하지 못했다. 그런 비프의 삶도 윌리는 거짓으로 포장한다. 잘하고 있는 것처럼, 그냥 힘쓰는 일이 아니라 세일즈를 한 것처럼 포장한다. 비프도 그 거짓에 빠져 살아가지만 결국 어느 순간 모든 허상이 와르르 무너진다. 둘째 아들인 해피도, 윌리의 아내인 린다도 현실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끝까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가족들 사이에서 가장 큰 부담을 느끼던 비프만이 거짓에서 나오려 한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그렇게 가짜 삶에서 살던 윌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삶을 추구하던 세일즈맨, 윌리의 장례식에는 누구도 오지 않는다.


윌리는 분명 잘못된 삶을 살았다. 자신의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고 거짓을, 거짓 위에 또 거짓을 덮었다. 하지만 그런 삶이 윌리뿐일까. 정도야 다르겠지만 우리도 때로는 자신을 억지로 포장하고, 부풀리고, 과장한다. 내가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 스스로가 만들어 낸 잘 되고 있다는 환상에 갇혀 있다가 정작 실제로 벽을 마주하게 되면 그 허상이 산산조각 나기도 한다. 이 극은 분명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상품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품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사회라는 시장 안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평가받는다. 외모도, 능력도, 배경도 모두 나라는 상품이 가진 하나의 상품성이다. 그러니 우리는 좋은 상품이 되려면 부풀려야 한다. 내가 가진 걸 더 크게 보여주고, 더 좋은 것처럼 포장해서 누군가 나를 선택하고, 나를 사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때때로 거짓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조금 부풀려지더라도 내가 좋은 상품으로 평가받아서 좋은 대학, 좋은 회사,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면 괜찮다. 일단 성공한 상품이 되면 더 큰 과실이 우리 앞에 주어진다.


하지만 분명히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부풀려도 그렇게 성공할 수 없고, 노력해도 닿지 못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은 성공에 닿지 못한 사람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닿지 못하면 닿지 못하는 대로, '그들처럼'이 아니더라도 나대로 살아갈 수 있으면 되는데 이 시스템에서는 그럴 수 없다. 내 옆에는 항상 새로운 상품이, 잘 나가는 상품이 진열된다. 나는 비교당하고, 뒤로 밀리고, 창고 안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더 부풀려야 한다. 언젠가 그 허상이 한꺼번에 무너지더라도 하루하루 나라는 상품의 유통기한을 연장해야 한다. 그게 자본주의가 어쩔 수 없이 보여주는 단점이고, 능력주의 가진 한계다.


그럼에도 이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히 다른 어떤 시스템보다 자본주의는 성공적이고 효율적이고,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다만 '세일즈맨의 죽음'이 보여주는 사실은 그게 티끌 하나 없는 선은 아니라는 점이다. 거기엔 분명히 어떤 단점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만들어 낸 이 시스템이 가진 단점을 보완하면서 오래오래 고장 나지 않게 사용하는 일이다. 우리 자신까지 상품화해버리지 않게, 능력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게, 결과가 과정을 설명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는 것, 그게 이 극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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