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혁 Nov 28. 2022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전염되는 실명이 나타난 사회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가

인간의 마음이라는 건 선한가, 혹은 악한가? 모두가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과연 지금과 같은 평화로운 사회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평화는 지금처럼 풍족한 상태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주제 사라마구는 아주 단순한, 그러나 강력한 가정을 통해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어느 날 우리 사회에 갑자기 전염병이 발생한다. 그 전염병은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아주 쉽게 전염되고, 증상이 나타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증상이 바로 '실명', 눈이 멀게 된다는 점에 있다. 눈이 멀어버리는 전염병이 돌고 있는 사회, 그 사회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어디까지 끌어내리고 무너뜨릴 수 있을까?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의심이 드는 순간 정부는 증상이 나타난 사람들을 격리하기 시작한다. 시민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그들을 격리하고 천천히 치료법을 알아볼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강한 전염성, 그리고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실명이라는 병은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감염자들을 모아 놓은 곳에 충분한 식료품을 공급하기도 어렵고, 그 시설을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도 없다. 누군가가 들어가야 할 텐데 실명될 게 뻔한 상황에서는 아무도 도울 수가 없다. 그리고 실명이라는 병은 몸은 멀쩡해도 사람들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격리시설에서의 참혹한 날들이 이어진다.


눈이 먼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난다는 건 더 힘든 상황이 닥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장실도 제대로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볼일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심지어 내가 어디서 볼일을 보더라도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화장실에 가고, 깨끗하게 볼일을 봐야 한다는 기본적인 규칙을 무색하게 만든다. 시설은 점점 더러워진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모두가 실명으로 고통받는 시설 안에서도 악당들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오히려 규칙과 규율이 사라져 버린 그곳에서는 눈이 멀었더라도 힘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더 지독하게 사람들을 괴롭힌다. 처음에는 식료품을 모두 빼앗은 뒤 값진 물건을 가져와야만 음식을 줬다. 사실 귀중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물건을 뺏기는 건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만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여자를 요구했다. 격리 병원 각 방을 돌아가며 여자들을 자신들의 욕구를 해소하는 데 이용했다. 다른 방에 있는 남자들은 자신들의 방에 있던 여자들이 끌려갈 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들은 그 일로 서로 상처만 준다. 그렇게 참혹한 시간들이 흘러간다.


변화를 만든 건 이 소설의 유일한 희망이자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 중의 하나인 주인공의 아내다. 아내는 눈이 먼 주인공 의사를 따라 눈이 먼 척을 하며 시설에 들어왔지만 사실 눈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이 끝나는 시점까지도 눈이 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는 시설이 지옥이 되어가는 모든 상황을 눈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자신도 그 지옥에서 고통받는다. 혼자서는 힘이 없었기에 깡패들이 여자들을 겁탈할 때 그녀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통스럽던 중에 결국 그녀는 자신의 도덕적 선을 넘어 깡패 두목을 죽이게 된다. 두목이 죽어도 악당은 계속 있기 마련이고 혼란스러워진 시설은 결국 불이 나며 무너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아내와 주인공의 일행 몇 명은 살아남아서 시설을 나온다. 그들이 시설을 나와서 알게 된 건 시설만 그렇게 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도시는 결국 전염병을 막지 못했다. 이미 바깥은 폐허가 되었고 전기, 수도 등 모든 시설은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눈이 먼 채로 음식만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 일행은 그런 지옥과도 같은 세상에서 아내의 눈 하나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남는다.



이 책은 지금껏 읽은 어떤 이야기보다도 더 암울하고, 더 불편하다. 세상의 종말, 극단적인 환경, 전쟁과도 같은 상황을 그려낸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이 책처럼 단순한 하나의 가정, '전염되는 실명'만으로 그 이상의 암울함을 자아낸 책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책 보다 더 큰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안에서 그려지는 수많은 악행들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만약, 정말 만약 이 전염되는 실명이 우리 사회에 퍼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서 먹을 것도 찾기 어렵고 세상은 오물로 가득 차있는 이 상황에서 저 깡패들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아마 이 책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솔직한 마음에서 저런 사람들이 있을 확률보다 없을 확률이 훨씬 작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가 무너졌을 때, 우리가 믿고 지키던 규칙과 규율이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사람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질문의 답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책과 같이 그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은연중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큰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렇게 사회가 무너지고 규칙이 무너졌을 때, 아무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을 때 인간은 자신의 사악한 면을 마음껏 드러낼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 확실하다. 적어도 그럴 확률이 아닐 확률보다는 더 크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희망은 우리 마음속에 그런 약하고, 악한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누구는 조금 더 강하고, 누구는 약하다. 짐승이었다면 그 강함과 약함이 그들의 삶을 지옥고 천국으로 나눠놓았겠지만 우리는 인간이라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강자가 약자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규칙을 만들었다. 사회를 만들었고, 서로 도왔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하고 평화로운 사회는 자연스럽게 있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것이다. 약자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사회를 만들었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분명히 눈먼 자들의 도시는 지옥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눈이 먼다면 우리의 도시도 지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눈이 머는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는 숱한 어려움을 만났다. 자연재해, 전쟁, 전염병과 같은 수많은 어려움에도 우리는 서로를 지탱해주는 사회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건 눈먼 자들의 도시가 보여주는 절망과 함께 우리의 도시가 만들어 내고 있는 희망, 그 두 가지 모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