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나름 부유한 집안 출신인 16살 홀든에게 세상은 싫은 것투성이다. 명문이라고 불리는 사립학교에 다니지만 학교가 싫고, 지저분하고 따분한 학교 친구들도 싫다. 훈계하는 선생님들도, 자동차가 긁힐까 봐 걱정이나 하고 기름 1갤런에 자기 차가 얼마나 먼 거기를 갈 수 있는지를 자랑하는 어른들도 싫다. 세상 모든 것이 싫고, 모든 것에 반항하는 듯한 홀든은 지독한 사춘기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홀든이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하고 네 번째 퇴학을 당한 뒤 학교를 떠나 며칠간 겪는 이야기가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기숙사를 떠난 홀든의 모험 아닌 모험은 순탄하지 않다. 날은 춥고 갈 곳은 없다. 어느 호텔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창을 열면 보이는 것은 기괴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이다. 호텔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가보기도 하고 거기서 술도 먹고 춤도 춰보지만 결국 남는 것은 허한 감정뿐이다. 16살이 아닌 척하면서 여자들과 이야기도 나눠보지만 금세 들통나기도 하고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다. 그러다 방으로 다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는 여자를 보내준다는 엘리베이터보이의 제안에 충동적으로 후회할 선택도 한다. 결국 아무 일도 없었지만 돈도 뺏기고 후회와 회의감만 남는다. 책이 일인칭 시점인 만큼 홀든의 심정이 자주, 또 자세하게 드러나는데 모든 일에 시니컬하면서도 회의감이 드는 순간마다 홀든은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도, 학교를 떠나서도 홀든이 느끼는 감정은 결국 외로움이다.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홀든이 유일하게 허무나 회의감을 느끼지 않은 일은 어린 동생인 피비를 만나러 간 순간이다. 피비는 초등학생 정도 되는 홀든의 여동생이다. 홀든에게 피비는 뭐든지 똑 부러지게 잘하는 동생이고 똑똑하고, 예리한 아이다. 홀든은 피비가 하는 것이라면 뭐든 기분 좋게 바라본다. 무엇보다도 피비는 어른 같지 않다. 아이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고 홀든이 좋아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중간중간 언듯 드러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던 홀든도 어떤 것들은 좋아한다. 스스로 잘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연못에 살고 있는 오리들이라든지 말, 어렸을 때 병으로 죽은 동생 앨리, 그리고 피비를 좋아한다. 피비를 보러 몰래 집으로 갔을 때 홀든에게 피비는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그럼 뭘 좋아하는지 한 가지만 말해 봐.
처음 듣는 질문에 홀든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방황하는 홀든을 가르치려고만 하고 훈계하고, 그냥 그런 사춘기를 겪는 것처럼 취급하던 많은 어른들이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 '좋아하는 것이 뭔지'하는 질문을 해 준 건 피비다. 홀든은 기숙사를 나가서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여자를 부르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잘잘못 여부를 떠나서 홀든은 16살 아이다. 겉모습은 어른처럼 보이고 하는 행동도 그리 아이답지는 않더라도 그 안에는 아이가 있다.
홀든이 겪고 있던 건 사실 사춘기의 외로움이고 그저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저항감이다. 네가 겪는 혼란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충분히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된다고, 정말 위험한 일이 있다면 어른들이 뒤에서 지켜줄 테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도 된다는 말, 그게 홀든이 듣고 싶었던 말이다. 홀든은 자기가 보고 있는 어른들처럼 되는 게 싫었다. 친구인 샐리와 만났을 때 멀리 도망가자는 홀든의 말에 샐리가 우선 대학에 가고 일도 하고 나서 그렇게 하자고 했을 때 홀든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할 거라고 말했어. 내가 대학을 가고 난 후에는 말이야. 내 말 똑똑히 들어봐. 그땐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우린 여행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겠지. 알고 지내던 사람들한테 전화로 작별 인사를 하고, 호텔에 들어가면 그림엽서를 보내야 할 거야. 난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택시나 메디슨 가의 버스를 타고 출근하겠지. 신문을 읽거나, 온종일 브리지나 하겠지. 그게 아니면, 극장에 가서 시시하기 짝이 없는 단편 영화나, 예고편, 영화 뉴스 같은 걸 보게 될 거야. (...)
마치 지금 우리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홀든이 거부한 건 닳아버린 어른이다. 홀든이 되고 싶은 어른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러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제목인 '호밀밭의 파수꾼'은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홀든이 했던 답이다. 언덕 위의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을 때 그 아이들이 혹시나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파수꾼, 홀든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지켜주지만 아이들의 세계를 방해하지도, 훈계하지도 않는 어른, 시시한 일상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포장하지 않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는 게 홀든의 꿈이고 사실 방황하던 홀든도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이 책은 1951년에 출간됐는데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물론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 청소년의 비행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불온서적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기 있는 책이다. 이 책이 그 당시의 미국에, 그리고 지금의 우리 모두에게도 인기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홀든이었다. 스스로 궁금한 것도 많고 혼란스러운 것도 많고 세상 모든 게 왜 그런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시기가 있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카드값, 기름값을 걱정하고 시시한 영화를 보고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식당에 가서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밥을 먹고, 출근해서 퇴근만을 기다리고, 주말에는 쓰러져 있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리저리 치이고, 닳고, 깎였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여전히 홀든이 있다. 그래서 홀든에 공감하고, 홀든의 꿈에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이 가득한 우리 사회는 우리 모두의 마음 한편에 홀든을 남긴다.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넉넉한 집안도, 똑똑한 선생님도, 명문 사립학교도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