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깃발을 잃어버린 청년 세대에 대하여
사망자 수는 한신대지진보다 훨씬 적지만, 이 사건은 일본인의 정신을 근본부터 크게 뒤흔들었다. 일본인은 지진이나 태풍처럼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대재앙과 함께 살아온 민족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연이 빚어내는 폭력성은 무의식적으로 정신 안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사람들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늘 대재해의 도래를 준비하고 있으며, 그 피해가 아무리 막대하고 부조리해도 이를 악물고 이겨내는 법을 배워왔다. '제행무상'이라는 말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어휘 중 하나다. (중략) 그런데 지하철 사린 사건은 일본인이 ㅡ적어도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한에서는 ㅡ 지금껏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재해였다. 그것은 종교단체가 교의의 연장선상에서 일으킨 특수한 독가스 병기를 쓴 계획적 범죄였으며, 사실상 일본인이 일본인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일본이 '세상에서 유례없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라는 공유관념의 붕괴였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잔치가 끝난 후'의 께느른한 고요함이었다. 일찍이 높이 세웠던 이상은 빛을 잃었고, 날카롭게 외쳐댔던 말은 힘을 잃었으며, 도전적이던 카운터컬쳐도 첨예함을 잃었다. (중략) '좋은 것은 이전 세대에게 엉망으로 침해당했다'는 막연한 실망감에 휩싸였다.
세상사는 카탈로그처럼 진전되어 갔다. (중략) 그러한 경쟁이 야기하는 것은 대부분의 국면에서 드러나는 한없는 폐색감이며, 목적 상실에서 비롯한 욕구불만이다.
강력한 아우라를 가진 누군가가 시스템 밖에서 나타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불러들여, '개별적 차이니 뭐니 그런 성가신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리로 와 시키는 대로만 해라'고 말을 건넸을 때 그들은 저항할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답은 확실하다. 사회 자체가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가시적인 목적의 상실이다. '사회화'가 더는 자명한 선이 아니게 된 시점에서 그들은 '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중략) 그들이 제기한 의문은 대부분은 정당했다. '전후 오십 년간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끊임없이 물질적인 풍부함을 추구한 결과 우리는 지금 어디에 도달했는가? 우리 사회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곳은 과연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