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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Jun 30. 2023

베르나르 베르베르, '심판'

꿈을 좇는 삶, 옳은 삶에 대해

꿈을 좇아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라, 당신이 하고 싶은 삶을 살아라.


누군가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우리는 현실과 타협하는 삶보다 꿈과 이상을 좇아 살아가는 삶을 더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두가 꿈을 향해 가라고 말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꿈을 잊고, 꿈을 현실에 맞추고, 지금의 현실이 사실 내 꿈이었다고 포장하기도 한다.


꿈을 좇는 삶이 모두가 바라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이 따르지 않는 삶이라면 과연 그것이 옳은 삶이라고,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선이 되려면 뭔가 더 필요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심판은 우리가 죽은 뒤에 우리의 삶을 논하는 천상의 법장이라는 소재를 빌어 좋은 삶, 삶에서의 '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심판의 대상, 얼마 전 사망한 피고인 아나톨 피숑은 이승에서 좋은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 믿었다. 아내를 사랑하기로 한 약속을 지킨 좋은 남편이었고, 자식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간섭하지 않은 좋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존경받는 판사로서 많은 재판을 성실하게 수행한 재판관이었다. 물론, 이 평가는 모두 아나톨이 스스로 한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아나톨의 평가에 대해 천상의 법조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아나톨은 자신의 천생연분을 놓치고 그리 어울리지도 않는 아내와 만났고, 자유롭게 지내게 한 아이들은 약에 손을 대고 나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죄는 아나톨이 스스로에게 진 죄, '자신의 꿈을 좇지 않은 죄'였다. 아나톨은 연기에 재능이 있었고 최고의 배우가 될 운명이었지만 연기로 성공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기를 포기하고 법조인이 되었다. 천생연분을 놓치고, 재능을 낭비한 죄, 결국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가지 않은 죄'로 아나톨은 비난받는다.


작가는 천상의 사람들이 아나톨에게 하는 비난을 통해 당신에게 묻는다. '꿈을 좇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는 누군가의 삶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천상의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아나톨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천생연분인 아내를 놓쳤을지는 몰라도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헌신했다. 가족에 헌신했고, 무엇보다 연기를 포기했지만 보통의 삶을 성실히 살아서 재판관이 되었다. 그리고 재판관이 되기로 결심한 것에도 그의 어머니의 죽음과 얽힌 이유가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런 아나톨을 비난할 수 있을까? 꿈을 좇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최선을 다해 살아간 삶, 우리는 그 삶이 꿈을 좇는 삶보다 선하지 않다고, 옳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작가는 대립하는 천상과 지상의 가치관을 통해 올바른 '삶'이라는 건 쉽게 규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처한 조건을 생각한다면 꿈을 좇는 삶이 언제나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도 그 삶이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천상의 사람들이 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수많은 삶에 대한 조언과 강연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꿈을 좇는 삶을 '선'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마 천상의 사람들이 삶이 다시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삶을 반추하며 죄의 무게를 평가하고, 아나톨처럼 자신의 꿈을 좇지 않은 사람들은 '생의 형'을 준다. 다시 태어나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삶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삶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꿈을 좇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꿈과 이상을 좇다가 이번 생이 실패하더라도 다음 생을 다시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있지 않은가? 그런 보장이 있다면 한 번의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마음이 가는 곳,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나 꿈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을 답습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생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한 번뿐인 인생이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라고 말하지만, 사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우리는 리스크를 지며 살아가지 못한다. 한 번의 실패가 한 번뿐인 인생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실패를 줄이는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현실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인생을 여러 번 살 수는 없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다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삶, 천상의 사람들이 '선'이라고 이야기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삶은 한 번뿐이지만 한 번의 실패로 삶이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선택의 순간에 내가 꿈을 좇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넘어질지라도 금방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우리도 천상의 사람들처럼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 현실적인 조건 하에서도 좋은 삶이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몇 번쯤 넘어져도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회, 사회가 정해놓은 노선을 잠시 이탈하더라도 언제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회, 실패를 용인하고 재도전의 기회가 넘치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삶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우리도 천상의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아쉽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그 반대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번의 실패가 주는 무게는 점점 더 켜져만 간다. 사회의 수많은 통과 의례, 입시, 취업, 결혼, 자녀 등은 여전히 엄격하다. 사회가 규정해 놓은 수준과 시기를 벗어나면 실패가 되고 한 번 실패하게 되면 다시 따라잡는 것은 더욱 어렵다. 스스로 그 길에서 이탈하게 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런 우리 사회에 이 책이 다시 한번 묻는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옳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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