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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K Mar 12. 2024

낯섦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시간을 설렘으로 바꾸어 준 이야기들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 이런 이륙에는 심리적인 쾌감도 있다.
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화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은 우리 자신의 삶에서 이와 유사한 결정적인 변화를 상상하며,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中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에 올랐던 해는 2016년,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도쿄 하치오지에 살고 계신 이모 댁에서 여름방학을 지내러 가는 길이었어요.


한창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고 있던 터라 히라가나는 읽고 쓸 수 있었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숫자 세기가 가능했던 데다 공항으로 이모가 마중을 나와 주시기로 하셨어서 큰 걱정은 없이 떠났는데,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입국심사를 기다리던 중에 어떤 곤란을 겪었어요. 어떤 문제였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혼자 낯선 곳에 서 있는 어린 마음에는 엄하게 느껴지던 그 순간이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공항 직원 분이 도와주려고 하셨지만 저는 일어를 못 하고, 서로 영어도 어려워 쩔쩔매던 그때 뒤에 줄을 서 계시던 한인 부부의 도움으로 잘 넘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는 고등학생이 된 첫해에 또 혼자 밤 비행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필리핀으로.


비행기를 탈 때면 항상 단 것과 책을 가지고 가는 습관이 있어 이번에는 웰치스 젤리와 파란색 표지의 어린 왕자를 펼쳐두고 있었어요. 괜히 옆 자리에 앉았던 금발이 예쁜 언니에게 젤리를 건넸습니다. 한국에서라면 전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망설이는 시간보다 말의 행동이 빨랐어요.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트고, 어린 왕자 책에 관한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별과 달빛 사이를 가르며 날아가는 시간에 어린 왕자에 관한 이야기라니! 큰 기쁨이 된 기억입니다.


필리핀에서 돌아오던 길, 공항 데스크에서 현지인 직원 분과 나누었던 대화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요.


한 달을 필리핀에서 머물면서 여기저기서 따갈로그어를 모아 배웠는데, 그 직원 분이 영어로 "위탁수하물 안에 보조배터리를 비롯한 위험 물질이 있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괜히 "Wala(없다)"라는 따갈로그어로 답한 것에서 시작했죠. 그 한 단어에 호쾌하게 웃어 주시고는 창가와 복도 좌석 중 어디가 좋냐는 질문을 한국어로 건네셨어요. 그리고 따갈로그어를 어디서 배웠는지, 어디 어디를 여행했는지와 같은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Salamat po"라는 말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돌아섰습니다. 답례라도 되듯 서로의 말을 돌려준 경험이 아직도 마음을 환하게 밝혀요.


그다음 해에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혼자 올랐어요. 교환학생을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텍사스를 경유해 제가 거주하게 된 곳으로 들어가는 비행 일정이었는데, 연결 항공편을 이용하더라도 입국 심사를 위해 첫 번째 목적지에서 위탁 수하물을 모두 찾아 다시 체크인해야 하는 미국 비행의 특성 때문에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UM(Unaccompanied Minors, 보호자 비동반 소아)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출발 공항의 보호자에게서 아이를 인수받아 사전에 지정된 도착 지점의 보호자의 신원을 확인한 후 아이를 인계해 주기까지 모든 여정을 담당 직원이 에스코트해 주고, 출입국수속, 탑승수속, 세관을 포함한 절차를 도와주는 서비스예요.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모두 보안검색대도 우선적으로 통과할 수 있었고, 출국수속을 마친 뒤에 탑승장으로 나오면 게이트 앞 데스크에서 잘 보이는 자리에 앉혀주셨다가 가장 먼저 비행기에 탑승시켜 주세요. 조기 탑승한 후에는 담당 승무원과 인사를 나누고 착석합니다.


잔뜩 긴장한 탓인지 그날따라 기승을 부리던 편두통에 타이레놀 여섯 알을 삼키고 이륙하자마자 기내식도 거절하고 잠만 청했어요. 이런 상태도 보고가 되는지 탑승할 때 인사를 나누었던 사무장님이 자리로 오셔서 물이나 먹을 게 필요하지는 않은지 살펴 주시고, 따로 간식도 챙겨주셨어요.


UM 아동들의 대기 장소

첫 번째 목적지인 텍사스에 도착은 했는데, 여덟 시간을 공항에 갇히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첫 항공편이 한 시간 정도 지연됐었는데, 다음 항공편까지 레이오버가 길지 않아 비행기를 놓치게 되었어요. 안 그래도 긴장한 상태에서 예상 밖의 사고가 일어나니 패닉 상태였는데, 이때 저를 인솔해 주시던 직원 분이 "Why do you look so sad? It's gonna be okay. Don't worry, be happy :)"라는 말로 저를 웃게 해 주려고 하시던 모습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기내식도 안 먹었는데, 대기 시간 동안 따로 식사를 하지도 못해서 당이 마구 떨어지더라고요. 다음 비행기에 올라서 마이쮸를 하나 까서 입에 넣는데, 옆 자리에 앉아 계신 남자분이 처음 보는 간식에 호기심이 동하셨는지, 마이쮸를 뚫어져라 관찰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또 하나를 권했어요. 역시 한국에서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죠. 마이쮸를 나눠 먹으며 서로 어디서 오는 길인지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이 분은 볼리비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셨어요. 볼리비아 초청으로 연구 겸 다녀오신 거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애벌레가 무슨 맛인지 아냐고 하시더니 당신이 애벌레를 드시는 영상을 보여주시면서 돼지비계 맛이라는 맛 묘사도 해 주셨고, 대화는 흐르다 나중에는 그 댁 고양이 사진도 보고, 아내분 성함도 알게 되었네요. 나중에 내려서 알고 보니 제가 지내던 주의 주립대학교 농업대학 교수님이셨어요.


탑승은 가장 먼저 하지만 내릴 때는 가장 마지막이라,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갤리에서 승무원 분들과 잠시 대기했는데, 미국으로 여행하는 목적이 뭐냐고 물으셔서 교환학생을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너무 멋지다고, 좋은 경험이 되면 좋다고 응원해 주셨던 것이 따뜻해서 기억에 남았고, 비행기부터 도착지 보호자인 호스트맘이 계신 곳까지 저를 데려다주셨던 마지막 인솔 직원 분은 어머님이 한국인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이런 기억을 돌아보자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온정과 배려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지, 놀랍지 않나요?


씩씩한 걸음 뒤에 떨리는 마음을 누르던 아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친절의 행동과 미소 한 번 보내주기를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 덕분에 낯섦은 어렵지 않게 기대가 되었습니다. 우물 밖 낯선 곳으로 한 발짝 내디뎌보면 언제나 그 용기보다 배로 커다란 온기가 받아주는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어요.


이제는 무섭도록 낯선 곳일수록 사전에 설정된 '나'의 이미지가 전혀 없다는 걸, 낯섦은 무엇이든 그리는 대로, 택하는 대로 내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요. '나, 이런 말도, 이런 것도 할 수 있네!'를 알려 주는 우물 밖에서의 시간을 사랑한다는 것도요.


resfeber, 스웨덴어에 어원을 두는 이 명사는 여정이 시작되기 전 긴장과 기대가 한데 엉켜 쉼 없이 달음질하는 여행자의 심장을 일컫는 말이에요. 여행을 떠나는 일을 생각하자면 항상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낯섦에 대한 두려움과,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그 대치 상태에서 두려움이 이기게 두지 말아요, 우리. 늘 갈망합시다. 더 높이 날기를 꿈꾸자고요. 여행이 끝나는 순간에 더 새로운 곳에 가 있을 나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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