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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Oct 22. 2023

올라왔다면 내려가야 한다.(1)

 내려다보고 있는 이곳은 대림동이다. 3층을 채 넘어가지 않는 빌라들 한가운데 외롭게 솟아있는 20층의 오피스텔. 정원이라 불리기 민망한 꽁초더미 20층 옥상. 찬바람을 폐 속에 한껏 구겨 넣을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음 집은 저기 내려다보이는 빨간 벽돌의 빌라 중 한 곳일 것이다. 지금 이곳은 나에게 과분하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곧장 서울로 향했다. 서울 공화국이란 말처럼 도저히 고향에는 직장도, 직업적 역량을 향상할만한 학원도 없었다. 자식을 엄한 곳에 두기 싫은 부모덕에 첫 서울살이를 신축 오피스텔에서 지냈다. 보증금 500에 50만 원대 원룸이었다. 신축, 그리고 지하철 역이 가깝다는 것을 제외하면 장점을 꼽기가 어려웠지만 여전히 경상도 말투가 찐득하게 묻어있는 촌놈에겐 호화로운 곳이었다.  

 나보다 1년 먼저 졸업한 대학교에서 만난 연인 J. 그녀 또한 직장 홍대 근처인 창천동 곰팡이 반지하 자취방에서 지상으로 벗어날 채비를 했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300킬로미터였다. 우린 그렇게 1년의 연애를 이어갔다. 

J의 자취방에서 채 오십 보도 채우지 않는 곳. 시멘트를 아무렇게나 처발라 엉덩이 한구석을 콕콕 찌르는 계단에 걸터앉으면 대추나무와 감나무로 감싸진 철조망 너머로 기찻길이 보인다. 우린 종종 그 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한 두 개비의 담배를 태우기도, 때로는 나이에 맞지 않은 사뭇 진지한 얘기가 오고 가기도 했다. 서울로 향하겠다 마음을 먹을 때 그러니까 이제 막 하얀 입김이 나올 무렵. 항상 두 번째 계단에 앉는 내 옆자릴 두고 첫 번째 계단에 앉는 청개구리 J는 그날만큼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미리 마음속에 담아 온 말이었는지 금세 J의 입이 떨어졌다. 

-더 이상 우린 멀어지지 말자, 가까이서 살자. 일상을 같이 보낼 수 있는 곳. 

 연애전선에 이상 기류는 없었지만 나른한 일상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는 우리는 그렇게 약속했다.    

이 세상의 모든 연인들처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를 갈망했다.

 이사를 마쳤다. 

우리는 같은 건물에 살게 되었다. 7층엔 J. 14층엔 내가 살았다. 

 서울이라 함식은 촌구석에서 평생을 보내온 내게 아메리칸드림처럼 두렵고 막연한 도시였다만, 더 이상 코레일의 마일리지를 쌓지 않고도 J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금세 걱정들은 잊혔다. 14와 7층을 오가며 저녁을 먹었고 대형마트에 가 함께 장을 보기도 했다. 가끔 그녀가 피곤에 찌들어 야근과 함께 돌아오는 날. 몰래 그녀의 집에 내려가 서툰 솜씨로 백종원의 유튜브를 켜놓은 채 간장계란밥을 깜짝스레 해놓기도 했다. 

 보답이라도 하듯 손재주가 뛰어난 J는 20대 또래들 기호처럼 아보카도 바질 샌드위치나, 오야꼬동, 내가 먹어보지 못한 요리를 종종 선보였다. 그녀가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미리 돌려놓은 빨래를 갠다거나,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하는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엉망이 된 방바닥을 청소하거나,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해야 할 만한 집안일들을 척척 나누어했다. 소박한 밥 한 끼를 함께 하고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 J를 산책시키기 위해 (실제로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강아지에 비유해 산책시키는 것은 마땅히 내가 할 일이라 일컬었다.) 정비가 채 되지 않았는지 하수구 비린 냄새가 옅게 나는 도림천 아래를 한참 걷고는 했다. 날씨가 제법 괜찮은 날이면 천 원의 따릉이를 타고 도림천의 끝을 보고 오기도 했다. 굳이 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지 않더라도 같은 건물 어딘가에 그녀와 내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되었다. 

 J를 보러 가는 기차 안 풍경이 까맣게 잊혀지는 만큼 우린 떨어져 지냈던 시간들을 가득 채웠다.

그 사이 2년을 계약한 나와 달리 J는 1년의 임대계약이 끝났고, 더 이상 멀어지지 말자는 우리의 약속처럼

 그녀는 10분 거리의 빌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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