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났고 다시 내 차례다.
스물에 서울에 올라와 15년이 훌쩍 지나도록 올바른 직장을 가져본 적 없이 희귀 면역질환에 걸려 매달 수백의 치료비, 그리고 모든 생활비까지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큰 누나. 대학 졸업 후 언니를 따라 올라갔지만 결국 큰누나와의 불화로 다시 부모의 곁으로 내려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작은누나. 이따금 전화통화에서는 한숨을 숨기지 못하는 부모. 탓들을 다 제외하고도 무엇보다도 여전히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부끄러운 무능력함. 프리랜서벌이로 생활하기 빠듯한 생활비, 도저히 그곳에서 월세를 내며 살 뻔뻔함은 없었다.
다행히 1년 전부터 불었던 중기청(중소기업청년전세대출)의 열기가 여전했고, 아직 아르바이트, 간간한 영상 프리랜서 생활을 하던 나는 중기청을 이용할 수 없었지만, 그에 맞춰 나오는 시중 은행들의 전세 대출 상품 열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소득 상관없이 무직자든 대학생이든 손에 쉽사리 쥘 수 없는 수천만 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수백 채를 지닌 빌라왕이라니, 깡통전세라든가 전세의 위험성이 파다하게 퍼져 오히려 월세를 향한 관심으로 역전되었다지만 당시엔 똑같은 크기의 방에 50만 원을 내고 살 테냐 10만 원을 내고 살 테야 라는 단순한 산수 문제 앞에 전자를 고르려는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폭발하는 수요에 공급시작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중소기업 청년대출을 이용할 경우 결격사유가 없는 한 1억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전세방은 1억 초반대의 금액이었다. 1억 아래 전세가의 방에선 마음에 드는 집들을 찾기보다는 단점들이 적은 방들을 찾는 편이 마음씀에 이로웠다.
전세를 살아보지 못한 나는 J의 집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J 역시 1년 전 중소기업청년대출로 전세를 구했었는데 당시 전세가가 8천만 원이었던데 반해 1년이 지나고서는 똑같은 J의 방이 1억 4천만 원까지 오른 것을 보며 부동산의 공포를 처음 느꼈다.
J의 집은 전형적인 서울살이 초년생들의 집이었다. 이전에 살았던 남자의 쿰쿰한 냄새가 쉽사리 빠지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당시 8천700만 원의 금액 그리고 6평의 방, 3층, 2호선과 도보 10분의 거리. 현관에서 방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지 않는 중문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것을 1.5룸이라고 한다.) 안심거리라는 말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치안도 나쁘지 않았다.
집을 찾기 시작할 무렵 내가 가진 것은 부모가 마련해 줘 깔고 앉은 500의 보증금과 더해 모아둔 천만 원의 돈이 있었고, 가진 것들을 더할 시 전세 대출 시 최대 8천의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 자나 깨나 J의 6평의 방을 홀로그램처럼 머릿속에 띄워댔다. 그녀의 집에서 어떤 것들을 마구마구 포기해 버려야 내가 쥔 돈으로 집을 구할 수 있을지를 떠올리며 집을 찾기 시작했다.
반지하로 절대 가면 안 된다는 선지자 J의 고집. J와 멀지 않아야 우리의 약속. 복덕방 문을 두들길 때면 환한 미소를 보냈던 처음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대게 내가 쥔 돈을 공개하면 네놈의 집은 없다는 듯 날 슬쩍 쳐다보고는 얕은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개중 몇몇 젊은 공인 중개사들은 자신만이 아는 딱 맞는 집이 마침 있다며 나에게 몇 시간이고 집들을 보여줬지만 3평 남짓한 고시원스러운 방뿐이었다.
중개사의 차에 타지 않고도 차량 속 찐득한 방향제 냄새를 예측할 신통력이 생길 무렵까지도 여전히 내가 계약할 집은 없었다. 한겨울 내 뜨거운 숨에 마스크 속에 송골송골 수증기가 가득 맺혀서 턱 주변을 훔쳐가며 집을 찾는 것도 지쳤다.
이삿날은 점차 다가왔다. 월세를 구하던가. 반지하로 내려가던가. 양자택일이다. 3주 내리 주말이면 J와 함께 복덕방을 들락날락하는 짓은 연좌제 마냥 J의 주말까지도 망처 버리는 듯했다. 그동안의 보아온 집들을 보고는 J 역시 참담함 심경이었는지 J는 오히려 내 기분을 올려주기 위해 억지스러운 애교를 부리곤 했다. 그날도 어둑해질 무렵까지 돌아다니고는 J의 집으로 돌아왔다.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화이트 톤, 온갖 카메라 보정과 왜곡을 더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길쭉한 모양의 냉장고와 널찍한 방 같은 허위 매물뿐인 부동산 어플 탓을 하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복덕방이다. J에게 수화기 너머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을 텐데 그녀의 표정 역시 덩달아 환해졌다.
집 두 곳을 찾아놨다고 했다.
번듯한 전세하나 얻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항상 어딘가에 내가 갈 집은 있기 마련이다 라며 날 위로하던 엄마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늘은 왠지 계약을 할 수 있을 듯했다.
J의 집 바로 밑 재래시장 옆에 붙어있는 복덕방에 도착했다. 워낙에 많이 돌아다녀서 이전에 왔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 중개사의 얼굴이 낯설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삼십 대 초중반의 여성 중개사 K가 나와 J를 반겼다. 짙은 쌍꺼풀을 한 큰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방긋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말했다.
-요즘 시대가 시대잖아요. 정~말 집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제가 워낙 이 동네 매물을 잘 알고 오래 지내왔던 터라 집주인들께 일일이 연락드려서 두 군데 알게 되었어요! 오늘 딱 안 하시면 매물이 이제 없을 거예요.
그녀는 오른손에 든 모나미 볼펜을 살랑살랑 흔들며 자신의 수고로움과 드넓은 정보력을 뽐냈다.
내 돈을 내고 집을 구하는데도 나와 J는 그녀의 수고로움에 탄복해 연신 허리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두 집 다 도보로 이동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집은 J의 집과 세 블록 떨어진 도보로 채 5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였다. K는 앞장을 서는 와중 틈틈이 고개를 돌려 앞을 보지도 않고 집을 소개했다. 시장이 근처에 있어서 생활하기가 너무 좋다. (하지만 J는 이 시장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상인들도 어떠한 의욕도 없이 심드렁했으며, 장을 볼 때마다 물건이 형편없다고 했다.) 방이 정말 정말 크다. 뻔한 얘기들 끝에 가격은 너무 놀라실까 봐 나중에 말해드릴게요! 라며 코를 찡긋 거렸다. 어지간히 자신이 있나 보다.
내가 둘러봤던 모든 곳들은 1.5층 그 이상의 방이 없었는데 그곳은 2.5층이었다.
중개사 K는 멋들어지게 문을 활짝 열어보였다. 그녀의 자신만만함은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었다.
벽지는 다들 그렇듯 알록달록 요란법석했으며, 가구들은 연두색 주황색 화창하게도 촌스러웠다. 화장실은 저기 오래된 공원 공중화장실 마냥 변기부터 세면대까지 짙은 베이지에 가까웠지만 정말 집의 크기가 삼사 평의 방들보다 곱절은 되어 보였다. 어림잡아 7-8평 넓게는 그 이상도 되어 보였다. 얼마나 기다란지 방 끝의 창문이 작아 보일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내 사지를 펼치고도 벽에 닿지 않을 것 같다.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혹시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4천이요!
…1억 4천이요?
… 아니요 4천이요.
이전의 집들은 모조리다 1억을 웃도는 가격이었는데 심지어 J의 집보다 훨씬 넓은데 4천이라고?
… 대출이 안 되는 집 아니에요?
… 아니에요 대출된다고 다 확인되었어요.
J는 노다지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내 어깨를 통통통 치며 너무 좋다 무조건 해야 한다고 날 설득했다.
중개사 K 역시 저희 나가고 나면 금세 빠질 거라며 날 부추겼다.
이럴 리가 없는데.
곧이어 집주인이 내려왔다.
인사를 드리고 노년의 접어든 집주인에게 물었다.
… 어르신 대출되고 전세 4천이 맞을까요?
… 맞아. 그냥 내놓는 거라고, 이 가격 집 돌아다녀봤으면 알지? 이 가격 없어, 할 거야 말 거야?
할 거면 빨리 말해. 다른 사람 하기로 했는데 지금 한다 그러면 내가 지금 그거 무르고 할 테니까
잦은 집방문으로 귀찮았던 걸까. 집주인은 계속이고 재촉했다.
…그러면 제가 한 군데 딱 더 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 하이 참, 그때 되면 집이 나가. 할머니가 어제 누구 봐놓고 집 계약 하기로 했는데 지금 한다 그러면
내가 그거 무르고 해 준다니까.
… 금방 다시 연락드릴게요.
… 빨리해 빨리하는 게 나아.
30년 가까운 내 인생의 빅데이터로 추론하건대. 말도 안 되는 가격에는 불문하고 이유가 있다.
물론 그 이유를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빨리 계약을 해야 한다는 중개사 K와 J를 모른 체하고 두 번째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