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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pr 02. 2024

어느 '지성'의 발자취에서

담배연기로 빨아들인 세계가 그 존재를 증명하는 그만의 독특한 세상이았던 사나이가 있었다.


네 살 때에 독감을 앓아 오른쪽 눈 각막이 하얗게 변하며 시력을 거의 잃어 사팔뜨기가 되었다. 불편한 눈으로 세상의 풍경과 사물보다 책을 먼저 읽었다. 아기 때 아버지가 죽고 할아버지 서재를 놀이터 삼아 살면서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사전에서 개념을 먼저 익히고 사물을 나중에 정도였다. '나무'라는 관념을 형성하고 나무를 보았다.


삐딱한 시선은 시력만이 아니었다. 보통의 생각을 뛰어넘어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의 큰 산맥을 만들었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에서 가장 '힙'한 철학자가 되었다. 사유재산을 부정해 자본주의에도 정면으로 도전장을 냈다. 집에 대한 소유욕 또한 없었다. 카페에서 글 쓰고 식당에서 먹고 여관에서 잤다. 


그 상이 자본주의의 '소유' 이념에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청춘시절 사르트르의 생애를 접하다 "노벨상을 거부하다니 그래 당신은 소신과 상금을 바꾸진 않았군. 그래서 내가 존경에 한 표" 이런 식으로 엄지를 든 치켜든 건 세계의 젊은이들이 체 게바라에 열광한 이유와 유사할 것이다. 


세기의 지성 장 폴 사르트르, 그가 별종의 삶을 살았던 건 사상과 거친 이념의 구분을 넘어 물질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아직껏 울림을 남긴다. 


한 때 행동하는 지성의 우상처럼 군림했던 이 도도하고 고독한 영혼에게 새벽의 정적 너머로 한 마디 던진다.


이봐요 사르트르, 실존도 좋고 그렇게 철저한 건 좋은데 삶이 너무 팍팍하지 않아. 당신이 무슨 무소유를 실천하는 파리의 법정 스님도 아니면서. 나 같으면 노벨상의 그 푸짐한 상금도 누리고 멋진 호텔에서 여생을 즐길 있는 자본주의의 단물을 그렇게 철저하게 외면할 수 없었을 것 같군요.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 그것도 저출산 시대에 맞지 않아요. 자식도 소유물처럼 느낄까 봐 그렇게 했던 당신의 이념이야 그렇다 쳐도.


이 철저한 '무소유'의 사나이가 유일하게 '풀소유' 한 것은 담배였다. 보건복지부 공무원에게는 궤변으로 들릴 수도 있는 애연가 사르트르의 말이 걸작이다. "담배를 피움으로 세계가 내 속으로 흡입될 때 나는 세상을 단지 보고 듣고 만지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권력과 재물을 향해 게걸스럽게 덤벼드는 얼치기 진보주의자들은 이 철저한 사상가에게 많이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사르트르가 <구토>를 일으킬만한 현실을 보는 건 괴롭다.   


안타깝게도 사르트르의 담배에 대한 "파괴적 소유"는 그의 수명을 단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며 풍성한 실존을 즐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거대하게 존재했던 사나이는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ReUp) Kyung Wha Chung plays Bruch violin concerto No.1 (2002)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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