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연기로 빨아들인 세계가 그 존재를 증명하는 그만의 독특한 세상이았던 사나이가 있었다.
네 살 때에 독감을 앓아 오른쪽 눈 각막이 하얗게 변하며 시력을 거의 잃어 사팔뜨기가 되었다. 불편한 눈으로 세상의 풍경과 사물보다 책을 먼저 읽었다. 아기 때 아버지가 죽고 할아버지 서재를 놀이터 삼아 살면서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사전에서 개념을 먼저 익히고 사물을 나중에 볼 정도였다. '나무'라는 관념을 형성하고 나무를 보았다.
삐딱한 시선은 시력만이 아니었다. 보통의 생각을 뛰어넘어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의 큰 산맥을 만들었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에서 가장 '힙'한 철학자가 되었다. 사유재산을 부정해 자본주의에도 정면으로 도전장을 냈다. 집에 대한 소유욕 또한 없었다. 카페에서 글 쓰고 식당에서 먹고 여관에서 잤다.
그 상이 자본주의의 '소유' 이념에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청춘시절 사르트르의 생애를 접하다 "노벨상을 거부하다니 그래 당신은 소신과 상금을 바꾸진 않았군. 그래서 내가 존경에 한 표" 이런 식으로 엄지를 든 치켜든 건 세계의 젊은이들이 체 게바라에 열광한 이유와 유사할 것이다.
세기의 지성 장 폴 사르트르, 그가 별종의 삶을 살았던 건 사상과 거친 이념의 구분을 넘어 물질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아직껏 울림을 남긴다.
한 때 행동하는 지성의 우상처럼 군림했던 이 도도하고 고독한 영혼에게 새벽의 정적 너머로 한 마디 던진다.
이봐요 사르트르, 실존도 좋고 그렇게 철저한 건 좋은데 삶이 너무 팍팍하지 않아. 당신이 무슨 무소유를 실천하는 파리의 법정 스님도 아니면서. 나 같으면 노벨상의 그 푸짐한 상금도 누리고 멋진 호텔에서 여생을 즐길 수 있는 자본주의의 단물을 그렇게 철저하게 외면할 수 없었을 것 같군요.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 그것도 저출산 시대에 맞지 않아요. 자식도 소유물처럼 느낄까 봐 그렇게 했던 당신의 이념이야 그렇다 쳐도.
이 철저한 '무소유'의 사나이가 유일하게 '풀소유' 한 것은 담배였다. 보건복지부 공무원에게는 궤변으로 들릴 수도 있는 애연가 사르트르의 말이 걸작이다. "담배를 피움으로 세계가 내 속으로 흡입될 때 나는 세상을 단지 보고 듣고 만지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권력과 재물을 향해 게걸스럽게 덤벼드는 얼치기 진보주의자들은 이 철저한 사상가에게 많이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사르트르가 <구토>를 일으킬만한 현실을 보는 건 괴롭다.
안타깝게도 사르트르의 담배에 대한 "파괴적 소유"는 그의 수명을 단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며 풍성한 실존을 즐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거대하게 존재했던 한 사나이는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ReUp) Kyung Wha Chung plays Bruch violin concerto No.1 (2002)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