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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pr 27. 2024

AI시대와 예술

기술혁신의 충격파는 창작의 영역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고사리손으로 주산을 배우는 아득한 풍경은 컴퓨터 코딩을 익히는 것으로 바뀌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의 문법도 진화하고 있다. 공부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되는 건 생성형 AI의 등장과 인간의 두뇌를 대체할 컴퓨터 응용기술 발전이 제기한 면이 크다. 바둑으로 알파고를 이기거나 체스로 컴퓨터를 이기는 사람이 화제가 되는 시대도 이제 저물 것이다.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실에서 창작의 고통에 머리를 쥐어뜯는 예술가의 이미지도 변하고 있다. 기술은 새로운 창작의 공간을 내어주기도 한다. 비디오아트나 홀로그램을 활용한 미술, 기술에 기반한 가상, 증강현실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아티스트에게는 작은 세상의 조물주로서 더 실감하는 세계를 만드는 역할을 부여할 정도다.  AI가 창작했다는 그림과 소설은 이제 뉴스거리가 되지도 못한다.

 

잭슨 폴록과 빌렘 드 쿠닝이 우정과 경쟁 사이를 오가며 서로 현대미술사에 얼굴을 들이밀려는 여정에 있을 때였다. 구겐하임의 후원으로 어깨가 으쓱했던 폴록이 한 발 앞서가며 에나멜페인트를 캔버스에 통째로 들이부었던 퍼포먼스는 알코올 중독자의 살풀이가 아닌 현대 추상미술의 대단한 혁신 작품으로 칭송되는 걸작이 되었다. 


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은 생전에 손자가 연필로 도화지에 장난을 치는 장면에서 묘법을 생각해 냈다고 회고했다. 불현듯 뇌리를 스친 기법들이 영감으로 떠올라 예술가에게 화두를 던지기도 한 것이다.


싱큘레러티(특이점)는 언제나 것이고 이미 와버린 것도 있다. 발전한 기술은 마술이 된다는 아서 클라크의 말처럼 100년 전 사람에겐 마술 같은 일들이 일상의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선보였을 당시 기차가 움직이는 장면에서 영화관에 있었던 대다수는 기차를 피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백남준이 "굿바이 조지 오웰"을 외치며 기술의 동시성과 연결성에 착안해 서울과 세계를 연결하며 비디오 아트를 펼친 때도 40년이 지나고 있다.


소설가 김훈은 노트북 컴퓨터가 아닌 원고지와 연필을 고집한다. 사각거리는 연필의 질감이 자신의 뇌와 연결된 느낌을 준다는 작가도 더러 있다. 시인 박노해는 잉크와 만년필을 고집한다. 시인의 말처럼 자신의 인생과 세계관이 담긴 언어를 자신의 피를 찍어서 쓰는 심정으로 표현할 때 한 방울의 잉크는 곧 시인의 삶이 녹아있는 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종이와 연필, 잉크를 찾는 건 향수에 젖는 구세대만이 아니라고 한다. 20대의 아날로그 레트로 현상 또한 작지만 도도한 흐름으로 목격된다고 문방구 사장님은 말한다. 

 

섬광처럼 떠오르는 영감을 붙들고 고투를 벌이는 예술가의 이미지는 얼마간 새롭게 정립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예술의 총체적 무용론이나 직업군의 퇴화를 성급하게 주장하는 것은 섣부르고도 지극히 어리석은 전망이 아닐까. 신세계에 발을 내디딜 때 두려움이 설렘에 압도당한다면 지는 것이다.


(감상) 드보르작 -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 (펜트하우스삽입곡, 이종범응원가)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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