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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쌤 Oct 29. 2023

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도박 3년 잔치


국가대표 선수도 아니고 메달이 모이고 있다. 입사 4년 차 이던가 10km 단축마라톤을 참가해서 메달이란 걸 난생처음 목에 걸어보았다. 그다음은 십 수년이 흘러 단도박회복모임에서 받은 100일 기념 메달, 1주년 메달, 2주년 메달이다. 어제 3주년 기념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떤 것, 어떤 일에 의미를 무한정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의욕적으로 살게 만드는 것 같다. 다른 이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해서 공감하기 어려운 메달을 보며 나는 잘해 왔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메달은 화려하지 않다. 동색으로 만들었고 3주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가격이 5천 원이다. 근데 내가 느끼는 값어치는 5백만 원은 족히 넘는다. 아내는 이 메달의 가치를 얼마로 생각할까.  



  20명 넘는 손님들이 오셨다. 우리 부부와 선배협심자의 잔치를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오신 선생님들과 여사님들은 "잔치 축하합니다~ 잔치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 잔치 축하합니다~!"를 합창하며 행사를 기분 좋게 열어 주었다.

  내 소감문 발표가 첫 번째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해 간 소감문을 읽어 내려갔다. 어릴 적 부모님이 돈 문제로 자주 싸운 이야기와 나의 건강 문제로 오랜 우울증을 앓다가 사회생활 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다가 결국 도박의 늪에까지 들어간 스토리, 거기서 헤어 나오기 위해 나의 아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내 옆을 지켜줬는지 이야기하면서 감정이 북받쳤다. 바로 옆에 앉은 아내가 쪽을 바라보며 중간중간 훌쩍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서 아내가 소감문을 발표했다. 앞에 몇 줄을 읽다가 그녀는 그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 힘들었던 장면이 떠올랐는지 목 끝까지 울음이 차오른 듯했다. 결혼 후 줄곧 맘 편하게 해 준 적 없는 모습이 떠올라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이가 100일도 안 되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버렸던 일을 이야기하자 내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집에 돌아갔을 때 불 꺼진 거실과 사람 없는 적막한 집안 분위기가 떠올랐다. 전부 내가 자초한 일들이었다.


앞부분의 힘든 내용을 읽어 내려가니 마주 보고 있는 청중들 속에서도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도박 중독자 당사자들과 그들의 아내나 어머니들이 도박중독에서 생긴 많은 사건, 사고를 들을 때마다 자신들의 힘든 모습이 오버랩되었을 것이다.

단도박 3년 차가 된 지금의 달라진 남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나는 마음이 편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먼저 청소를 시작하거나 아내가 화를 내도 유머로 웃어넘기는 여유, 아이와 예전보다 시간을 많이 가지는 일 등 보통의 가정에서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우리 가정에는 큰 변화의 모습이고 앞으로 단도박 기간이 더 길어질수록 기대가 된다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부부의 소감문과 참석하신 분들 중 대표로 4명의 축사를 들은 후, 우리 부부의 포옹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여보, 너무 고생했어, 사랑해!"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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