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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ture film Jan 11. 2022

재난 이후의 희망

<산책하는 침략자>(구로사와 기요시, 2017)


호러에서 시작한 <산책하는 침략자>는 SF이면서, 코미디이면서, 로맨스로 전환된다. 이 전환은 유기적이고, 도식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내재한 불안의 리듬을 따라 진행된다. 인간의 개념을 수집하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은 현실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 된다. 외계인들이 빼앗아 간 개념은 대단하지 않다. 그런데도 현실은 흔들리고 좌초 위기에 빠진다. 분명 내재한 비가시적 불안을 가시화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문법이다. 그러나 불안의 전이 강도는 이전 영화에 비해 약하다. <도쿄 소나타>(2008)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는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 구축된 극대화된 공포는 이 영화에 없다. 그렇다면, 약해진 이 강도는 왜 필요했을까? 이전 영화들이 불안과 공포의 가시화에 방점을 두었다면, <산책하는 침략자>는 그럼에도 버티고 살아야 한다는 재난 이후의 삶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이러한 모습은 최근 일본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희망의 언어가 쌓여 갈수록 가려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 역시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20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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