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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Jan 26. 2024

겁쟁이 아내, 겁 없는 남편

나는 태생이 겁쟁이에  걱정쟁이이다. 기질적으로 소심하고 불안하기도 했고, 나의 양육환경은 그런 나를 섬세하고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는 어린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불안하고 소심한 상향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그 불안과 공포가 싫어서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얼마 전 금쪽 상담소에 나온 영상분석하시는 교수님과 범죄 프로파이러분이 나와서 자신들의 고민을 나누는 영상을 보았다. 두 분 다 범죄나 사고를 다루는 직업적 이유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한 사람에 대한 불신과 항상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과 긴장을 가지고 사신다는 고백을 하셨다. 그리고 오은영 박사님은  직업적 이유로 거의 심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의 사고와 반응을 가지게 되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셨다.


그 두 분의 고백을 보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과 고백을 하던 사람이었다. 몇 년 전까지 사람들을 불신하고 경계하고 또 동시에 세상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앉고 아등바등 살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대상, 모르는 세계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높아서 도전이나 모험 따위는 미친놈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하며 설았다. 늘 돌다리도 수백 번 두드려보며 나에게 호기심 따위는 위험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해가 되거나 혹은 실패할만한 일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살던 나였다.


그런 내가 호기심 대마왕, 개구쟁이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나와는 태생부터 기질도 달랐다. ( 겁이 없고 호기심이 많은 것도 태생이라는 것을 남편 꼭 닮은 딸을 낳고 알았다.) 더군다나 남편은 거의 방임에 가까운 방목형 양육으로 자랐다. 누구 하나 그의 행동이나 선택을 제지하는 어른이 없었다. 그래서 모든 일에 거침이 없었다.  남편은 겁도 없고 누구의 눈치를 보는 일도 없고 궁금한 것은 뭐든 만지고 맛보고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극과 극의 성향의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중요한 선택까지 부딪혔을까?거의 내가 동으로 가자하면 남편은 로 가자했다.내가 좋은 건 남편은 별로였고 남편이 흥분하는 일에 나는 늘 시큰둥이었다. 정말 마트에서 장 보는 일에서부터 큰 결정까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나는 마트에 들어가기 전에 사야 할 것만  탁탁 집어 나오고 싶지만, 남편은 시식 코너, 새로 나온 상품, 세일 상품 등을 절대로  지나치지 못했다. 여행을 가도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게 많은 남편은 일정을 지나치게 빡빡하게 짰고, 낯선 곳 낯선 음식이 싫은 나는 여행 내내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싸웠을까?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은 일을 하면서도 이런 사업을 할까? 이런 발명품을 만들어 볼까? 수만 가지 아이디어를 내어도 '사업'은 곧 ' 사기, 실패'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번번이 거절 혹은 묵살당했다. 이렇게 우리는 손발이 척척 안 맞아 보였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기에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었다. 남편의 겁 없고 충동적인 무모함은 내가 무슨 일을 앞두고 있을 때 나를 강력하게 밀어주는 엔진이 되었다. 미술 공부를 할 때도 심리치료가가 될 때도 책을 쓸 데도 남편은 무조건  "Go"였다. 그의 신념은 사람은 해보고 싶은 건 일단  해봐야 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이다. " 실패하면 어때! 그냥 한번 해보는 거지 뭐!" 이런 그의 무모하고 겁 없는 응원 덕분에, 늘 뒷걸음질 치려는 나를 등 떠밀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성향의 배우자를 만났더라면 둘이서 늘 최악의 상황만 계산하느라, 나는 시작도 해보지 않은 채 미리 다 포기했을 것이다.


남편도 나를 만나서 어디로 튈지 모르던 그의 충동성이 어느 정도 제어가  되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 덕분에(?)

우린 한 곳에서 오래 정착하며 살고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자기 사업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마 그와 기질이 비슷한 배우자를 만났더라면 메뚜기처럼 호기심과 열정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이동과 변화가 잦은 삶이 어떤 면에서 좋을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경력을 쌓기는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은 나를 만나서 아이들이 안정되게 자랄 수 있고  자신도 루틴과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남편은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지만, 나에게 남편은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용기와 도전정신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나 답게 살게 되었다. 남편은 나를 만나고 절제하고 조절하는 삶을 배웠다. 그것이 때로는 그의 기운을 빠지게 하고 서운하게 할 때도 있었지만 살면서, 그가 꼭 배워야 하는 덕목이었던 것이다.


때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배우자의 성향과 기질은 나에게 꼭 필요한 성품이 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바꾸려는 노력보다, 그 다름이 나를 채워주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눈이 생기면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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