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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 기록되지 않는 것들


밤이 내려앉으면 사물들은
천천히 형태를 잃는다
한때 쓰임이 있었다는 사실만 남긴 채
입을 다문다

불필요한 조각들이
공간의 가장자리에서 서로를 밀어낸다
하나의 물건이 제거되자
그 자리가 텅 빈 채로 남았다



울림이라 부르기엔 미약하고
그렇다고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그런 종류의 움직임
어둠은 벽을 따라
아무 소리 없이 번진다

그 앞에서
얼굴 하나가 희미하게 드러난다
누구는 불명확하고
표정은 읽히지 않는다
어떤 감정도 기록되지 않는다




침묵만이 일정한 속도로
구원의 이름도 갖지 않으며
조금 덜 가진 자리에서
어느 방향으로도 뻗지 않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중립의 온도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는
희미한 자유가
그 한가운데 서 있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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