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4개월차 사회초년생
브런치에 취업하고 글을 올린 뒤, 1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회사에서 친해진 동료들은 모두 퇴사를 했고, 반대로 내 주변 친한 친구들은 거의 다 졸업을 하고 제 밥벌이를 하러 가거나 대학원에 갔다. 나는 어쩌다보니 마케팅을 계속 하고 있다. 회사인원은 2배가 됐고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연봉은 입사 시 계약연봉보다 천만원이 더해졌다(아마 가장 놀라울 포인트)
그렇게 오기 싫었던 뷰티업계에서 사회초년생 시기를 겪고 있다보니 매 순간 뼈저리는 깨달음이 있었다. 다음부터는 내가 속한 업계와 직무, 그리고 나에 대해서 느낀 점들이다.
예전만큼 글을 막무가내로 못 쓰겠다. 모든 문장들이 망설여지고 단어 선택은 조악하다. 그럼에도 기록을 남겨야 뭐라도 된다는 글을 보고 남겨보는 생각들.
1. 뷰티업계에 대한 짧은 생각
예전부터 국내의 과잉된 외모강박에 맞서 뷰티업계가 다 망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내가 돈을 버는 이 순간에도 비슷한 생각이 들줄은 몰랐다. (내가 생계를 위해 뷰티 밖에 할 일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기에) 지금이야 많은 뷰티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나만의 자아를 표현하는.. 비건..진정한 나다움.. 이런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예전에 대놓고 죄책감을 자극해서 화장품 팔던 시절의 허울 좋은 시대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전히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입사하고 일을하며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좀 달라지긴 했다. 아마 대학교 4학년 때의 나처럼 이미 화장품에 신물이 난 사람들, 혹은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나다움을 내세우는 브랜드들도 허울만 좋은 걸 알았기에 아예 소비자층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앞으로도 스킨케어 시장은 나날이 발전할 것 같고 메이크업 시장은 대한민국 여성 기준으로 소비인구가 점차 줄어들 것 같다. 반대로 메이크업에 새롭게 유입되는 사람들도 있어 아마 2022년 정도의 현상유지는 하지 않을까 싶다. 심각한 백래쉬가 오지 않는 이상 색조 브랜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내 고등학교 3학년~대학교 2년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메이크업을 정말 좋아했을 때도 겉치레하는 브랜드는 별로 안 좋아했고 대놓고 가성비, 대놓고 공주스러운 브랜드를 좋아했다. 회사에 와서 2030 여성의 온갖 죄책감과 외모고민을 자극하고 한국만의 괴상한 미인상(쌩얼인 척!같은)에 관련된 카피라이팅을 쓰려니 뇌가 거의 정지했다. 싫어하는 걸 넘어서 아예 안 보려고 했던 카테고리의 언어들이라 나의 본능적인 진지함과 섞여 정말 "재미없는" 문구들이 완성됐다.
지금도 여전하다. 그저 미술할 때처럼 어디서 주워듣고 어디서 본 것 같은 단어들을 이리저리 조합해서 일을 할 뿐이다. 환경이 무섭고 반복학습이 무서운 게, 예전같았으면 입에 담지도 않았을 혐오가 내재된 말들이나 외모 평가하는 말들을 정말 많이 한다. 자연스럽게 내 모습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피부화장을 정말 싫어했는데 일단 피부에 뭐가 얹어진다는 그 느낌 자체가 싫었고 피부가 희고 좋아보이고 싶은 마음은 애초에 너무 어릴 때 겪고 이겨낸 터라 화장을 할 수 있었던 나이에는 딱히 피부화장에 의지가 없었다. 내가 일을 하고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을 팔아보다보니, 자연스럽게 피부화장에 매력에 완전히 빠지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돼서 일을 할 때는 관심사가 맞춰져 있다보니 조금 더 편하게 일을 했지만, 화장대에 놓인 일주일에 1번 잘하면 2번 쓸까말까한 쿠션들을 보면 불편하긴 하다.
(쿠션은 내가 화장품 중에서도 정말 사지 않던 제품 1위였다)
나는 주변에 화장을 하지 않는 친구가 절대적 과반수라 회사에서 원하는 "보통의" 20대 여성의 메이크업 고민을 듣기에도 쉽진 않았다. 톤업크림을 팔려고 하면, 애초에 나는 톤업을 원하는 상황이 없었다. 아직도 가장 최근에 산 립 제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아주 오래전에 산 라이언 립밤(정확한 제품은 기억이 안 난다)이라고 해준 친구에게 고맙다..
미국처럼 뷰티 브랜드에서 보정 없는 살결을 공개하고, 천편일률적인 쉐이드보다 다인종의 피부색에 맞춘 쉐이드를 구비하고 크루얼티 프리가 거의 필수적인 가치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사실 너 비건 안해? 정도의 죄책감 주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퇴보하고 있지는 않음에 위안을 삼는다.
2. 나는 마케터..인가?
나는 전공무관인 직무만을 찾아다녔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취업준비를 하며 발견한 순수미술 전공 우대 직무는 미술관이거나 아이돌 세계관 짜는 아트디렉터 아래서 일하는 직무 뿐이었다. 여기서 내가 정말 실수했던 게, 무조건 선배나 업계에 있는 현직자를 수소문해서라도, 이상한 사람을 만날 확률을 안고서라도 취업스터디를 해서 빠르게 깨우쳐야 했던 사실들이 있었는데, 코로나가 딱 터지고 내향적인 내 성격과 맞물려서 아무에게도 기초적인 조언을 구하지 못했다. 사실 내가 취업준비할 당시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취업을 시작하는 미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게 크다. 나는 너무 순진하게도 전공무관이라 해서 영업 쪽에서도 나를 뽑아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업.. 표면상으로 나는 운전도 할 수 있고 쓰여진 텍스트 상의 역량은 어떻게 끌어올릴 수도 있었지만 아무 관련 경험도 없고 곱게 미술만 하던 내가 영업이라니(게다가 갓 졸업한 여자) 사실 너무 가능성이 없는 곳에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다행히 어렴풋이나마 영업보다는 마케팅, 서비스/컨텐츠 기획이 더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허비한 시간이 그렇게 길진 않지만 하루가 소중한 그 취업준비 시기에 차라리 취업스터디를 하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게 지금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어떤 직무를 가도 결국 따라붙을 수 밖에 없는 직무경험.
사실상 직무경험이 0인 내가 합격할 수 있는 서류는 많지 않았다. 그 땐 내 유튜브 경험이나 sns 활동들이 결코 직무경험으로 쓰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을 취업 쪽으로 고쳐먹었으면 학교를 1년 더 다니면서라도 인턴이나 관련 창업활동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오히려 졸업학년에 알바도 그만두면서 졸전에만 살짝 힘을 쏟고 힘을 아꼈다. 다시 돌아간다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어 정신을 깨워주고 싶지만 덕분에 낭만적인 4학년을 보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렇게 그 흔한 인턴경험도 없이, 공모전 수상도 없는 4학년과 또다시 인턴도 하지 않은 취준 1년, 사실상 별탈없이 평화로운 2년을 보냈지만 취업시장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안한 2년을 보낸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일한 1년 3개월은 운 좋게도 인턴, 수습기간도 없이 바로 사원으로 입사를 했지만 다른 이들은 대학 3~4학년과 취준 기간에 쌓은 스펙을 정규직이란 형태로 쌓은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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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한번도 나의 능력을 의심해본 적은 없지만 한가지 고민이 크게 됐던 지점이 있다. 디자이너와 일을 하면 나를 디자이너 입장에 더 대입하게 되고 계속 나보단 그들의 편의를 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기획부서와 기획물을 제작해내는 디자인부서는 사이가 안 좋은 일이 태반이라고 하는데, 나는 절대로 그런 멍청한 기획부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디자인의 디귿자도 모르면서..) 나름 순수미술을 전공한 과거 학부생의 자존심이었는지 오랫동안 그걸 버리지 못해 디자이너들의 시간과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배려해주고 싶었다. 물론 일개 신입사원인 내게 부여된 권한이 없기 때문에 더 일을 꼬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스타트업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내게 주워지는 디자인적인 업무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내가 사실 디자이너에게 형식을 갖춰 요청하기 전에 후딱 해버릴 수 있는 일인 걸 알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외부의 압력을 받기도 했다. 마음에서는 미술과 최대한 멀리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기에 일을 하는 나 자체는 2배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역할이 회사에서 그런 어중이떠중이로 잡혀질까 두려웠고 나 스스로 디자인 작업을 하는 마케터는 더 낮은 취급을 받는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윗선에서 많이 조정을 해준 덕분에 디자인적인 업무를 덜어냈지만 여전히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진 못한 것 같다. 회사에 뭔가 할 줄 아는 걸 들키면 안된다는 sns 격언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당장에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가 컨텐츠를 직접 제작할 수 있다, 내가 제작자가 되어 봤기에 그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밖에 없었기에 모든 걸 드러내고 입사를 했다. 그리고 이리저리 내 야매 제작능력들로 일을 했고 그랬기에 신입치고는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긴 했다. 헛되이 보낸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가 경영적인 이론이 없음을 뒷받침해주기에는 부실한 업무들이지 않았나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최근 누데이크의 디렉터로 계신 분의 여성의 날 특집 인터뷰를 읽었다.
기획부서로서 비효율적으로 소통하는 게 싫어 본인이 업무시간 외에 시간을 내 인디자인, 포토샵 등 기본적인 툴들을 배우셨다는 것이다. 그런 뛰어나고 프로페셔널한 실무자들을 보면 사실 그게 표준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여전한 아트 관련 직무들의 임금 후려치기를 보며 차라리 멍청하지만 돈은 더 받는 기획부서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게 이 취업세계에서의 간사한 사람 마음이다.
3. 나는 일만 하고 싶다.
나에게도 몇개월이 지나니 가치관들과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되는 사실들이 생겼다.
1. 일만 열심히/잘 하면 되는 환경을 원한다.
2.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3. 아는 척하는 사람이 몸서리치게 싫다. 대체로 아는 게 없고 그런 자신을 감추려 든다.
4. 나는 의견을 정말 잘 굽힌다 (애초에 내 의견대로 하고 싶은 무언가가 없다)
5. 지금 당장은 약아빠진 사람들이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지만 장기적으로 나는 50대에 가장 성공한 여자가 되고 싶기 때문에, 성실하고 우직하게 나아가고 싶다.
6.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다.
부정적인 사실들도 알아냈다.
1. 내 안에 내재된 가난혐오가 엄청나다.
2.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성질은 아직도 많이 못 고쳤다.
3. 몸과 마음이 힘드니까 나도 내 가정을 가지면 이 본질적인 불안과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자주 하게 된다.
21년에는 일이 잘못되면 일을 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내 책임으로 몰릴까 극한의 불안을 느끼며 회사를 다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지만 나 정도로 남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은 충분히 그렇게 느낄 상황들이 많았다. 나의 이런 생각들을 나눌 비슷한 연차의 사람과 대화를 나눌 상황도 아니었기에 입사하고 4개월 정도가 지나서야 처음으로 내가 비정상이 아님을 한 두명과 나눌 수 있었다. 아직도 1년의 초반부에 만났던 이들에게는 문득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나와 같이 능력과 성실함을 기반으로 한 환경에 가고 싶은 이들을 만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듣는 것 만으로도 난 그 꿈만큼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있을 미래는 기성세대보다는 그런 꿈꾸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더 클지도 모르니까.
그런 회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일만 하면 되는 회사에 가고 싶다. 있다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지나온 세월들은 모두 가십에서 멀어질려고 마음만 먹으면 멀어질 수 있는 환경이었고 가십에서 멀어져도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었다. 일만 할 수 없는 환경에 처음 놓여보았을 때 정말 많이 삐그덕거렸고 다 지나온 지금에도 여전히 생각은 같다. 그리고 어느 회사나 다 똑같다는 말은 사실 조금 세뇌와 주저앉히는 말에 가깝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조금 더 능력중심의 환경에 가고싶다.
동시에 편안했던 점은 내가 정말 내 의견을 잘 굽힌다는 것이었다. 사실 의견을 내세울 기회도 딱히 없었지만 적극적인 모션을 취해야 할 때는 너무 새롭진 않은 의견들을 적절하게 낼 줄 알고 대부분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들었다. 이건 내가 어린시절부터 미술을 해오며 느끼는 내 장점인데 일단 하라고 하면 아닌 것 같아도 한다. 정말 영 아닌 것 같으면 내 시간을 내서 b안을 준비한다. 아닌 것 같은 일을 해도 궁시렁대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일하는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게 아닌 것 같다고 한번 느끼면 말을 듣더라도 하는 내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안다. 미술을 하면서 지도자와 학생 사이의 의견 차이로 발생되는 트러블들을 너무 많이 보았고 그게 얼마나 예술적 ego에 크게 작용하는지 안다. 일찌감찌 그 고집을 버렸던 나로서는 일을 하기 위한 마인드셋에서 많은 편안함을 느꼈다. 예전 대기업 면접을 준비하면서 전화로 조언해주셨던 현직자분들도 그냥 말잘 듣는 사원이 제일 좋다고 했었다. 어차피 업무 역량은 그땐 다 거기서 거기이니 그냥 배울려는 의지가 있고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이 제일 뽑고싶다고.. (물론 그 회사들의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율적인 활동들이 필요하다) 나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인간관계로서는 사람에 대한 환멸도 당연히 느꼈고 반대로 내 안에 있는 무시하는 태도가 튀어나올려고 하는 것도 많이 느꼈다. 이전까지 살아왔던 환경이 워낙 온실 속 화초였고 소위말하는 수준높은 사람들, 웬만큼 경제적 안전망이 보장된 가정의 친구들만 만나왔다 보니 나는 이토록 러프한 관계도를 맺어본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그에 대한 면역체계가 전무했다. 동시에 미술하는 사람들이 몇배로 보고 싶어졌다.
내가 혐오의 언어들을 듣고 받을 때마다 나도 내 안에서 무시하고 경멸하는 마음이 생겼고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매 주말 무기력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나의 가난혐오는 돈을 벌수록 더 심해졌고 동시에 취업과는 또다른 길인 대학원 유학이란 건 얼마나 돈이 많아야 가는 것인지 가늠이 되기 시작했다. 세상에 돈이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느끼며 동시에 나와 다른 교육과정을 밟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는 가소로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고작 학부로 예술을 공부했을 뿐 그닥 조예가 깊진 않은데 말이다. 지금에서야 그 마음이 어떤 세계의 초심자로 들어가게 된 불안함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 주는 두려움에 기인한 것임을 느낀다. 그리고 내 다음으로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그게 아는 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회피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았다.
4. 결국 그럼에도 난 일을 하고 싶다
직업을 몇번이고 바꿔야 하는 시대가 왔지만 우선 이 일은 10년 정도 해보고 싶다. 해외로 나가 관련 공부도 해보고 새로운 회사에서도 또 일해보고.. 내가 미술을 시작하고 1년이 체력과 정신 그리고 그 외 모든 것이 최고점으로 아팠고 힘들었던 걸 기억하면 지나온 1년은 돈을 번다는 감각 덕분인지 미치도록 힘들진 않았던 것 같다; 딱 미치기 직전까지만 힘들었다. 한 차례 거점을 지나고 고비를 넘어서니 한 일년은 또 수월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보다 여유롭고 주변도 돌볼 수 있는 내가 되어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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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터넷 세상을 부유하다 보면 나와같은 사회초년생의 얘기는 많이 없는 것 같다. 다들 3년차 이상이거나 나름대로 커리어를 좀 본격적으로 쌓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조언은 참 많은데, 정작 1~2년차 (흔히 말하는 주니어..?) 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나 느끼는 점들은 잘 없거나 있는 마저도 1~2년차가 뭘 알겠나..하며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얘기로 치부되고는 한다. 물론 내가 일을 했다 + 나도 일을 할 줄 안다는 감각에 들떠서 하는 뜬구름 잡는 허세섞인 얘기들도 정말 많겠지만 그럼에도 듣고 나누고 싶다. 시작에서 나아감의 단계의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은 응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