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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젤리 Nov 02. 2022

노베이스로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미술인의 MBA도전기 (1)

가십걸 속 맨하탄 풍경


그렇다. 미국MBA 유학을 결심했다.


물론 아직도 한국에서 성공적인 이직에 대한 의지를 버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외국경험을 목표로 MBA에 도전하려고 한다.



몇몇 분들에게 조언도 구하러 다녔고, 내가 스스로 이직의 문을 두드려보며 느낀 결과 나처럼 순수미술 - > 인턴 경험없이 스타트업에서 바로 온라인 베이스의 마케팅을 하게 된 화장품 업계 종사자는 좀처럼 레벨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취업 전에는 경력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당연하게도 그게 어떤 경력이냐도 중요했던 거였다..)

결국 내가 원하는 수준의 레벨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큰 step이 필요했고 미국 탑10 MBA라는 결론을 얻었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매일 그렇게 성공하고 싶어 돈 벌고 싶어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그 성공의 모습은 무엇이지? 하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남에게 말하기 쪽팔리지 않은 번듯한 직장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 잘한다는 평가, 내 자신을 양육하고 나 스스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충분한 페이. 그리고 잘나고 나보다 똑똑한 동료들..


그 중에서도 생각해봤을 때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우수한 직장에 있다큰 소속감이 가장 컸다.

예술중학교에서 첫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나는 항상 내 몸의 반을, 내 머리의 반을 불안과 걱정으로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다. 혹은 아예 무지의 상태? 전국에서(물론 대부분 서울에서) 온 친구들과 이상한 기준의 줄세우기로 첫 성적이 나온 순간에서야 나는 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내 존재를 1%씩 확신으로 채워갈 수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자기확신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운 자아를 만들어왔는데 미술의 울타리를 벗어나고나니 나는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는 변방인이 되어버렸다.

확신을 하던 습관은 남아있었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점점 커져갔고 비참함과 자격지심도 많이 생겨났다. 이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처우였지만 한마디로 미술 안에서는 확신으로 가득찼고 탑급의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도감으로 살아오던 내가, 나를 스스로 내던진 것이다.



직무의 전환, 업종의 전환, 더 나아가서 그냥 나라는 사람의 출신과 정체성에 대한 전환은 못해도 2배의 고통과 노력이 따라온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수평선에서의 전환을 넘어서 수직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곱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한국에서 이름대면 누구나 알만한, 그러나 되도록이면 여초가 아닌(페이 때문에) 기업에 입사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위해선 마찬가지로 이름대면 누구나 알만한 미국MBA과정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목표 학교를 정했다. 그리고 GMAT 예시문제도 짬을 내서 풀어보고 오늘은 주말반 수강신청을 했다. 앞으로 회사 다니면서 꾸준히 이력서 업데이트도 하면서 약 10개월을 준비해보려고 한다. 이미 입시를 여러번 거치며 '빡세게 해라' '진짜 열심히 해야한다' 이런 말들에는 짜증만 날 뿐 흔들리지는 않는다. (나는 애초에 남들이 말하는 "빡세게" 스타일로 하다가는 건강관리가 안되어서 쓰러지는 사람이다) 내 페이스대로 해나갈 것이다. 사실 지금 이 상태로 아무런 변화도 발전도 없이 퇴근만을 바라며 살아가다가 주변의 은근한 pressure로 결혼해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보다 지금 나에게 두려운 것은 없다.


인스타그램 설명란에 써놓은 말 처럼,

미술하는 여자는 뭐든지 할 수 있.. 을까?

나.. 2년의 경력으로 미국에 갈 수 있을까?



#MBA #이직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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