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내 글 속에 담긴 감정과 고민을 읽어주었다.
불쑥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이 많이 취해 있었다.
최근 친구가 생일이었던 터라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었는데 한 사모펀드에 가입했다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술을 기울이고 내 생각이 나서 행복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요새 어떻게 지내냐며 운을 띄우고 내 블로그를 봤다며 내 진로는 어떻게 되고 있냐고 진로상담사로 몰입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최근 '기약없는 기다림을 마주하는 태도'
라는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내 목표나 서류, 면접의 타율은 어떤지와 어떤 점을 추가 보완해야 할지 등 이래저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 친구는 정말 직설적인 아이다. 필터링도 없고, 가끔 가감없이 나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내가 회사의 핏 때문에 내 강점에 집중해서 어필하지 못하고 엄한 것만 다루는 건 아니냐 내가 회사를 다녀보니까 회사에서 원하는 핏이 다 있더라. 요새 경기불황이라 더 힘든 것 같다. 제너럴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가 트렌드인 것 같다.
그래도 내 입장에 몰입해서 술기운에 힘들만도한데 열심히 자기 의견을 전달해주었다.
놀라웠던 점은 내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을 하나하나 읽고 생각해보면서 내 블로그의 어투, 감점을 느끼고 내가 어떤 불안과 고민들을 내어놓았는지를 꽤 정확하게 맞췄다는 것이다. 사실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항상 앉고 가지고 있던 고민을 정확하게 긁어주었고 힘듦을 다독여주었다.
나는 인스타에 내 사생활이나 경력, 수상을 자랑하는 사진을 올리는 취향은 아니다. 인스타는 애초에 가식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글로써 나를 표현하는 것은 좋아한다. 최대한 담백하게 덜어내면서 사람들에게 공감과 울림을 주는 글을 써내려가는 것을 좋아한다. 모순이지만 남을 위한 포스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의 감정을 호소하는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내가 내뱉는 목소리를 이해하고 알아주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다. 나는 내 친구에게 내 감정을 들켰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내 글의 의도를 알아준 사람은 드물었다. 친구는 내 글을 읽었다라고 표현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뒤에서 내 글을 읽어주면서 나를 관찰해주었고, 글을 읽고 오랜시간 나를 생각해주었고 고민하고 전화로 나를 위로하는 말들을 전했다. 나를 공감해주었다.
나는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내 길을 걷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웃기는 얘기지만 남들과 다른 점,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남들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레퍼런스를 구하기도 힘들고, 조언을 구하기도 힘들고, 투정을 부리기도 힘들다. 공감을 해줄 사람이 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감을 해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교 입시를 위해 학교에서 면접준비를 해준다고 몇몇 모르는 선생님들과 면접연습을 한 적이 있다. 면접예상질문지를 받고 대강 예상답변을 생각한 후 교실에 들어가 한 선생님과 마주하였다. 면접질문을 해야할 선생님은 대뜸 나에게 ‘나는 너를 알지만 너는 나를 모를거야 아마’라며 다소 의아한 물음표를 던져주셨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진행한 여러 체험학습에 다녀온 후 제출해야하는 감상문 또는 일지를 영어로 꽤 많이 써서 제출하고는 했다. 뭐,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내 생각을 한 번 영어로 써보고 싶기도 했고, 나에게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영어로 써냈었다. 영어로 써낼 필요도 없고, 귀찮고,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꾸준히 써냈다. 담임선생님은 왜 나에게 문법을 물어보지도 않고 제출했냐며 문법이 많이 틀렸더라는 말 외에 크게 그 행동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나에게 의아한 질문을 던진 선생님은 그런 글들을 뒤에서 계속 지켜봐오셨다고 했다. 전교에 딱 한 명 영어로 감상문을 써내려간 아이가 있다보니 자연스레 눈이 가셨다고 그래서 이후 쭉 나를 지켜보셨다고 했다. 그렇게 면접준비가 아닌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레 교실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내가 의식하지 않고 남긴 장난스런 행동이라도 누군가를 나를 지켜보고 응원해줬다는 게 참 감동적이다. 누군가로부터 응원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참 행운스러운 일이다. 내가 힘들거나 지치고, 무너지는 순간은 과거에 수없이 많았었고, 지금은 진행중이며, 앞으로는 셀 수 없이 나에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 번아웃, 무너짐과 맞써 싸울 수 있는 힘은 그런 내 주변에 나를 묵묵히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목소리로 나를 직접적으로 소리내어 전달해주지 않더라도 언젠가 나의 성장과 도달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줄 수 있는 사람들.
내 주변에는 친한 친구가 정말 몇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새벽에 엄청 우울해지거나 술을 한 잔 기울여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 떠오르는 친구가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절대 자주 연락한다고 나의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언제든 나를 응원해주고 묵묵히 지켜봐주고 다시 전화했을 때 또 너무나 반갑게 웃으며 반겨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나의 사람들이고, 나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