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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Dec 03. 2023

구두

구두

며칠 전, 가족들이 모였다. 내 생일이라고 자식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사위와 딸도 사업상 밤낮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시간이 없다. 기념일이 아니면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어려웠다. 식당에서 조촐하게 상을 차리고 엄마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나는 자식들이 자기 앞가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딸과 사위, 외손주, 외손녀들이 다양한 음정 박자로 축하 노래를 불렀다. “어머님, 장모님, 할머님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합동으로 큰절을 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아버님과 행복하게 사세요. 묵직한 흰 봉투에 금일봉을 주고 갔다. 그날 밤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평생 타다 주었던 월급 봉투는 당연하게 받았다. 그 돈으로 검소하게 생계를 꾸리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명절이나 기념일에 자식들이 용돈을 챙겨주면 쓰지를 못하고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나중에 보면 돈은 엉뚱하게 한번에 다 써 버렸다. 이번에는 나도 늙어 가는지, 장고 끝에 이 돈을 의미 있게 쓰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가니 체형이 변해서 옷이나 신발이 맞지 않아 신발을 사기로 했다.


지인들 모임에 갔다. 유명 구두를 딱 일주일만 30% 세일한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예쁘고 유행하는 신발을 선호했지만 나이 들어보니 발이 편한 신발이 최고였다. 선걸음에 전철을 타고 신발가게로 갔다. 한 바퀴 휙 둘러보았다. 친절한 사장님이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발이 예쁘다며 샌들 구두를 신어보라고 권했다. 명품 값을 하는지 발이 편하고 색상도 마음에 쏙 들었다. 내 구두를 고르면서 아까부터 신사용 구두 쪽으로 눈이 쏠렸다. 진열해 놓은 구두를 만져보고 들어보니 가볍고 부드러웠다. 가슴 한쪽에서 남편이 내 구두도 사달라는 듯 얼굴이 떠올랐다. 큰마음 먹고 거금을 주고 남편 구두와 내 구두를 샀다.


가마솥더위로 낮 기온이 40도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도로에 아스팔트가 녹아내려 고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땀범벅이 된 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어 끈적거렸다. 남편의 환한 모습을 생각하니 견딜 만했다. 구두가방을 챙겨 전철을 두 번 환승하고 집으로 왔다.


“여보, 여보, 내 신발 사러 간 김에 당신 구두도 사 왔어요. 자, 이 구두 한번 신어 보세요.”


대뜸, 남편이 눈을 치켜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볼멘소리로 한 마디 툭, 던졌다.


“신발은 본인이 신어보고 사야지 당신의 눈대중으로 대충 사면 되나. 신발 문수도 모르면서 원.”


황당한 반응에 휴, 속으로 내 신발로 바꾸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당신 젊었을 때 신발 문수가 265, 지금은 255밀리면 맞을 것 같은데 사다 드리면 고맙다는 말씀을 하셔야지.”


잽싸게 구두를 빼앗아 봉투에 집어넣었다.


“이 사람 성질하고는 기왕지사 사 왔으니 한번 신어 보지 뭐.”


남편은 억지로 신발을 신는 척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막상 나와도 갈 곳이 없다. 공원을 산책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개성이 너무 달라 수시로 갈등에 시달리며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여러 형제들 틈에서 자랐다.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심을 물려받아 열성적인 천주교 신자였다.


남편은 7남매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외향적이라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이 들끓었다. 청년기에 운동을 좋아해서 사이클 국가 대표 선수로 활약을 했다. 운동선수라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휴가 중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처음 만났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졌는지 훤칠한 외모는 한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고민도 해 보지 않고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선택을 했다. 우리는 슬하에 1녀 1남을 두고 평생 고슴도치 부부로 살았다.


한밤중이었다. 뚜벅뚜벅…. 조금 후에 다시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숨을 죽이고 귀를 열어놓았다. 이 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 가만히 들어보았다. 그러다가 혹시 도둑놈이 들어 왔나,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윗집에서 들리는 소리인가, 운동하고 들어 올 적에 대문을 제대로 안 잠근 건가, 머리에서 형광등 불빛이 번쩍거렸다. 거실 쪽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문을 열고 전기를 켰다. 남편이 팬츠바람에 움찔했다.


“잠이 안 와서 당신이 사다 준 구두를 신고 걸어 보는 중인데 한번 봐 주시게.”


나는 속으로 픽 웃었다.


“신발이 정말 명품인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신어 보니 가볍고 촉감이 너무 좋아.”


천진난만하게 들떠 있는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새 운동화를 들고 환하게 웃던 아들이 떠올랐다.


서울로 이사 온 지 6년째였다. 아이들이 커가니 은행 빚을 내서 작은 아파트를 샀다. 빠듯한 살림에 여윳돈이 없어 허리띠를 졸라맸다. 큰딸이 1학년 2학기 올라갔을 때였다.


“엄마, 친구들이 내 구멍 난 운동화를 보고 낄낄거리며 자꾸 따라다니며 놀려요. 나도 새 운동화 사 주세요.”


낡아서 구멍이 난 운동화를 엄마 코앞에 놓았다. 순간 가슴 먹먹하게 아려왔다. 그놈의 빚 갚는 일이 대수야. 아이들 기죽이며 청승을 떨고 살고 있지 않는가. 깊은 회한이 밀려왔다. 어린것이 운동화를 사 줄 때까지 기다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 그래. 내일 당장 사 줄게.”


낡은 운동화처럼 엄마 가슴에도 구멍이 났는지 찬 바람이 횡하니 들락거렸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시장에 가며 말했다.


“애야,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 눈치 보지 말고 꼭 말해, 응.”


‘내일 삼수갑산을 갈망정 더 이상 자식들 주눅 들지 않게 할거야.’ 마음을 다잡고 명품 새 운동화를 사 주었다. 딸은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운동화는 양손에 들고 맨발로 학교에 갔다. 그러고는 선반 위에 신주 모시듯이 올려놓고 구경하다가 몇 달 만에 새 운동화를 신었다.


눈물겨운 시절이었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다 잊을 줄 알았다. 가슴에 묻혔던 기억이 훅, 잡아당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가슴에 달려든다. 남편은 연신 ‘당신이 사 준 구두가 생애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신발’이라며 들떴다. 천진난만한 어린이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젊은 뒤안길의 빛과 그림자로 명암이 엇갈렸다. 고슴도치 부부였던 우리의 인생도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게 되었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시간들이었을까. 싱거운 웃음으로 화답을 해본다. 적당한 사랑의 거리를 유지하며 새로운 출발을 위해 한 발씩 걸음을 옮겨 보았다. 훗날 자식들도 우리처럼 살기를 기대한다. 남은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의 초청장을 들고 우리에게는 꿈이 있고 함께 부를 노래가 있기에 이제 늙어 가며 노래를 부른다.


“I have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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