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다. 전철을 타고 목동성당으로 향했다. 성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제일 먼저 귀에 들리는 소리는 삭둑삭둑 가위질 소리였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제대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렸다. 들국화 향이 폐까지 스며들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추운 날에 수고 많으세요.”
“네, 어떻게 오셨나요?”
“저는 순례를 왔습니다.”
그녀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반기는 모습이 꽃을 닮았다. 종이 박스에는 꽃들이 나를 꽂아 달라는 듯 차례를 기다렸다. 가슴 밑바닥에서 흐르던 정원으로 향했다.
꽃을 좋아해서 정원을 꿈꿔 왔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내가 하고 싶다고 여건이 주어지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 남편은 한 달 내내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 대문을 여는 소리에 비몽사몽 일어났다. “잠깐, 당신 눈 감아 봐,”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그이는 멋쩍은 듯, 뜸 들이다가 장미 꽃다발을 쑥 내밀었다. 황당하고 얼떨떨했다. 무슨 마음으로 사 왔을까. 깜빡 잊고 있었는데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때의 좋은 기억은 힘들 때마다 위로가 되었다.
성당 제대를 향해 예수님께 방문 인사를 드렸다. 꽃꽂이를 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일하는 데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맨 뒷자리에서 기도를 드렸다. 마음과 눈, 귀는 가위소리와 꽃을 따라다녔다. 화분 밑받침에는 녹색 잎을 먼저 꽂고 중앙에는 백장미와 흰 들국화로 포인트로 잡았다. 주일 미사를 드리기 위해 꽃꽂이를 준비하는 그들이 대견했다. 나는 몇 년째 토요일은 마음 가는 데로 순례를 떠난다. 인생은 나그넷길인데 현실의 욕망과 이기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늘 깨어 있기 위함이었다.
서울주보에 나오는 성당을 모두 방문하기로 하였다. 내 기도가 비록 부족하지만 몸이 아픈 이웃들과 어려운 이들의 사정을 들을 때마다 메모해 두었다가 기도 중에 기억해 냈다. 평생 내 가족들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등산복 차림으로 홀가분하게 먹고 마시는 것도 절제하며 단순하게 떠난다. ‘오늘 여행지에서는 어떤 예수님을 만날까?’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런 설레는 마음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아가게 했다.
인터넷 천국이다. 여행 정보는 지도검색을 하면 된다. 손에 핸드폰 하나만 들고 다니면 대한민국 어디라도 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해준다. 그렇지만 골목길을 걷다 보면 지도 검색으로도 안 나오는 곳이 가끔 있다. 그래서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 길가는 행인에게 여러 번 물어보았다.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가까이 다가가서 묻기도 전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비켜 갔다. 하룻길에도 스승을 여럿 만난다. 그날그날이 인생의 한 단면처럼, 다양한 상황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 인생을 애썼다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용케도 여기까지 잘 왔다며 칭찬도 해주고, 슬픔이 몰려오면 눈물도 한 바가지 쏟아내면서 파이팅을 외쳐본다.
계절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모습을 바꾸어 간다. 흐르는 세월은 휴가도 없는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유유히 받아들이고 지나간다. 오늘처럼 추운 날에는 강인한 인내가 필요하다. 찬바람이 휘몰아치면 얼굴에서 눈물 콧물이 흐르고 장갑 낀 손은 나뭇가지처럼 뻣뻣해진다. 이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분들은 봉사를 하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가위를 들고 왼손으로는 꽃을 꽂으며 ‘에취’ 재채기를 연달아 하였다. 난방을 하지 않아 성당이 추워서 턱이 덜덜 떨렸다.
몇 시간째 두 사람이 꽃꽂이에 몰입하고 있었다. 언제 끝날까 조바심이 나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작품이 서서히 완성되어 갔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제대가 우아하게 보였다. 귀에 들리는 건 가위에 잘리는 꽃가지들의 아우성뿐이었다. 오늘 뉴스에서 기온이 영하 18도라고 했다. 저분들에게 따뜻한 국밥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부스럭부스럭 찰각찰각 가위 소리에 기도하는 데 분심도 들었지만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 저분들은 추운 날 봉사를 하시고 나는 의자에 앉아 기도를 바쳤다. 받은 달란트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내 양심의 소리가 장미 가시처럼 꼭꼭 찔렀다. 그들은 제대 꽃꽂이를 완성한 후에 쓰레기를 버리고 주위를 정리했다. 기도 중에 깜박 졸음에 빠져 어릴 적 뒷동산 꽃밭을 뛰놀고 있었다. 윙윙 청소기 소리에 깜짝 놀라서 화들짝 깼다.
꽃향기가 코끝을 톡 쏘았다. 알레르기가 있어 재채기를 몇 번 했다. 잠에 취해 흠, 흠, 향기를 감지하다 눈을 번쩍 떴다. 순간, 얼굴 앞에 예쁜 꽃다발이 확 들어왔다. 어머, 고개를 뒤로 젖혔다. 꽃꽂이하던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자요, 이 꽃다발을 선물로 드릴게요. 집에 가지고 가서 기도 많이 하세요.” 얼떨결에 두 손으로 꽃다발을 받았다. “이걸 왜, 저한테 주시나요?” “조용히 기도하시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어요.” 그녀는 소녀처럼 무릎을 꿇고, 환한 미소에 황소 같은 눈을 뜨고 입은 귀에 걸렸다. 근간에 이렇게 겸손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너무 고마워서 손을 덥석 잡다가 깜짝 놀랐다.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손가락은 고드름처럼 뻣뻣했다. 내 따뜻한 손의 온기와 그녀의 차가운 손이 사랑의 작용이 일어나 가슴까지 전달되었다. 온몸에서 향기가 풀풀 날리는 그녀의 고운 자태에 감동을 받았다.
꽃다발을 가슴에 안았다. 내 마음은 봄날의 요정처럼 꽃밭에서 뛰놀았다. 서로 기도 안에서 통했을까. 아니면 꽃을 사랑하는 그녀의 고운 마음일까. 이처럼 아름다운 인연은 평생 처음이었다. 첫 만남에 이토록 가슴이 설렘으로 감전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녀와 나는 연인처럼 손을 잡고 제대 앞으로 갔다. 옆에 서 있는 젊은 남자의 고드름 같은 손도 함께 잡아 주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따뜻한 예수님의 사랑이 실현되었다는 벅찬 감동을 체험하였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와 축복을 해주었다. 여행지에서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쌓게 되었다.
성탄절을 일주일 앞두었다. 오늘은 아기 예수님의 선물을 듬뿍 받았다. 그들의 모습은 예쁜 꽃을 닮았다. 세 사람은 해바라기처럼 제대를 향해 주모경을 바쳤다. 세례명을 알려주고 서로를 기억하며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삭막했던 마음은 기쁨으로 재충전을 하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심이 증명되었다. 그들이 떠나고 홀로 앉아 십자가 거울 앞에서 나를 비추어 보았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오늘은 천국을 거닐었을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병 두 개에 꽃을 나누어 꽂았다. 하나는 거실에 놓고, 다른 하나는 식탁 위에 놓았다. 온 집안에 그녀의 꽃향기가 가득 찼다. 남편에게 장미 꽃다발을 받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행복한 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고운 꽃을 선물로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