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책이 가득하다. 한때는 책이 많으면 좋았던 때가 있었다. 한 번도 읽지 않고 골동품처럼 고이 모셔놓았다. 작년에도 색 바랜 책을 솎아내었다. 늙어가니 눈이 침침해서 삼십 분 이상 책을 보지 못한다. 지인들이 선물한 소중한 책들을 다 소장할 수 없었다.
오늘도 책장에서 오래된 책들을 골랐다. 정리 품목 박스 속으로 넣다가 얼핏 수필집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한테 받은 것일까?’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으니 오래전 친하게 지냈던 그녀가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며 선물로 준 것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 나는 표지와 줄거리 면을 슬쩍 훑어본 후 책장에 꽂아놓았다.
둘이서 회포를 풀며 밤을 지새웠다. 인생살이에 겹겹이 사무친 소설 몇 권 분량을 쏟아냈다. 마흔 무렵이었다. 우연히 아이들의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친구네 아빠가 유명한 작가라고 했다. 네 가족이 문간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방안에는 다리 뻗을 공간만 남겨놓고 유명 서적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때 우리 집도 책으로 인테리어를 해야지 다짐을 하였다. 가방끈은 짧아도 남들이 보기에 지식인 같고 자식들의 독서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먹은 뒤에 서점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화책과 영성 서적을 많이 사들였다. 가끔 아들의 친구 엄마들이 놀러 왔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저마다 한마디씩 감탄을 했다. “와, 도서관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엄마의 모임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회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재미있는 유머를 구사했다. 그날 우리 집에서 밥을 함께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0년 전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며 수필집을 들고 왔었다.
그녀는 힘든 시간을 견디기 위해 문화센터에 다녔다. 글을 배우고 쓰면서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자랑을 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물로 날인 찍힌 2010년 11월 당선한 수필 출간물을 가져온 것이었다. 「된장과 바꿔 먹은 족보」 제목이 눈에 쏙 들어왔다. 그녀는 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이 시골에서 족보가 든 박스를 들고 버스를 탔어. 장거리였기에 마음 놓고 잠이 들었지. 서울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박스만 남았대. 박스를 지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족보가 궁금해서 얼른 박스를 열었어.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박스에는 족보는 어디 가고 된장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지 뭐야.”
여기까지 수필 내용을 들었다. 그녀도 나도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는 글 한 줄도 써 본 경험이 없다. 당시에 영성 서적에 푹 빠져 있었기에 그녀의 수필 책도 봉사가 코끼리 엉덩이를 더듬듯이 스캔을 하며 읽었던 수박 겉핥기였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발견한 책의 표지를 넘기며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책을 어루만지며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돌아보니 책을 선물로 받았을 때 덕담이라도 해 줄 걸 그랬다. 어쩌면 그녀는 내 반응을 기다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칭찬에 인색한 나를 발견했다. ‘읽지도 않고 왜, 별로라고 생각했을까? 글 한 줄도 쓰지 못했던 내가 무의식중에 질투를 하지 않았을까. 지금 같았으면 응원도 했을 텐데.’ 그때 못했던 말이 한스럽기만 하다.
그녀의 책을 간직하기로 했다. 누군가 그리워질 때면 자신의 책을 전하는 건 어떨까. 그런 소통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사십 대 때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거실 바닥에 늘어놓고 제목을 훑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지개 원리』(차동엽 신부),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 『기르 리 지』(파울로 코엘료) 등 내가 힘들 때마다 스승처럼 동반자처럼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책들이다. 이 책들을 통해서 작가들의 인생관과 솔직 담백한 인품이 느껴졌다. 연인처럼 그저 책을 바라만 보아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 날이 새록새록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받았다. 전화를 한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일 년간 위암으로 고생하다가 어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연락을 못 했어도 잘 지내겠지 했는데 돌아가셨다니, 칠십이면 아직 청춘인데. 다음 날 병원으로 달려갔다. 문상객들 뒤에 줄을 섰다. 믿기지 않았지만 삶과 죽음이 너무도 가까이 있었다. 국화꽃 화환 속에서 그녀가 웃고 있었다. 오후 3시에 입관식이었다. 상주들 보는 앞에서 장례 지도사의 염습이 시작되었다. 내 미래를 보는 듯 광경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냉동고 문을 열자 그녀가 나왔다. 흰 보자기를 벗기니 풍채 좋았던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얼굴은 야위어 골이 졌어도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옷을 갈아입히고 꽃 화환을 머리에 씌웠다. 곱게 분칠도 하고 볼연지를 톡톡 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니 그녀가 다시 살아난 듯했다.
납골당에서 나는 한 분의 아름다운 수필가를 뵈었다. 그녀가 책을 들고 달려왔을 때, 나는 문학에 대해서 아무런 식견도 없으면서 비평가가 되어 있었다. 손녀딸 재롱에 세월 가는 줄 모른다던 그녀를 왜, 나는 수필가로 보지 못했을까. 이 세상 소풍 왔다가 책 한 권이라도 남겼으면 얼마나 보람 있는 생애였던가. 당선 소감을 실은 글과 젊을 때 그녀의 모습은 참 고와 보였다. 손가락으로 사진을 매만지며 “참 곱소,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요.” 하며 울먹였다.
요즘은 직장인들, 주부들도 글을 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를, 자신의 생활담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그녀의 책을 길잡이로 삼아 나도 글을 한 번 써 볼까 한다. 인생의 결정체들을 글로 써서 책으로 엮고 싶다. 낡고 오래된 책일수록 보물이다. 족보가 피가 되고 살이 된 그녀의 책이 곰삭아 구수한 된장 향기를 풍겼다. 된장 향기가 폴폴 풍기는 내 글을 쓰고 싶다.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잘 써 보시게.’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