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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Dec 03. 2023

그대는 나의 천사



폭설이다. 봄이 뒷걸음을 치는 것인가. 눈만 오면 신이 났는데 살아갈수록 왜 감성은 무뎌지는 것일까. 감탄사를 잃어버린 지가 오래되었다. 이제는 무게를 덜어내야 할 시간이 되었나. 어릴 적 밤새 내린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손에 한 움큼 뭉쳐 마당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신바람이 났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 친구들과 걸었던 하얀 눈길을 훨훨 날아갔다.


대낮같이 밝았다. 세상은 눈 천지였다. 왼손에 눈을 얹고 오른손으로 꼭꼭 눌러서 굴렸다. 장독대를 한 바퀴를 굴리고 마당을 지나 골목으로 나갔다. 친구들도 나처럼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발간 손가락을 호호 불며 동네를 몇 바퀴를 돌고 돌다 보면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숯덩이로 눈썹을 붙이고 솔잎으로 머리칼을 만들었다. 기억은 동네 어귀에 세워놓았던 하얀 친구가 마음의 풍경이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멈춰버린 내 유년의 눈밭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서울로 이사를 왔다. 산꼭대기 단칸방에는 돈이 고이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상황에서도 재벌 2세처럼 돈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이었다. 달마다 보름만 지나면 생활비가 바닥이 났었다. 주인집은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독촉했다. 돈을 빌려서 전세를 올려 주고 나면 허리띠를 더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 그해 겨울에도 눈이 많이 왔다. 남편의 직장은 개점 휴업 상태였다. 아끼고 아껴도 저축은 먼 이야기였다. 아이들 초·중학교 입학과 졸업은 슬쩍슬쩍 건너뛰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후회스럽다. 내일이 오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다. 모든 희망을 미래에 두었는데 나의 오늘은 없어졌다. 사람이 왜 사는지에 대하여 기본을 망각하고 살았다. 집안에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모두 나중으로 미루었다. 세월은 흘렀고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다. 미래에는 행복하리라는 날을 눈앞에 두고 외환위기가 터졌다. 태풍전야였다. 간신히 버텨왔는데 남편의 회사가 부도가 났다. 가장의 실직에 가족들의 꿈도 무너져 내렸다. 어려운 시대는 그를 방황의 늪으로 끌고 다녔다. 술만 마시면 집안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토록 꿈꿔 왔던 미래의 희망은 어디에 숨어버렸을까?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수렁으로 끌려갔다.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기대는 날아갔다. 내 인생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한밤중이었다. 남편이 대문을 열자마자 “여보!”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안방으로 쑥, 들어오더니 잠자고 있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하수구에 빠진 사람처럼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횡설수설하며 직원들과 회식했다면서 술에 떡이 되어 돌아와서 커튼을 활짝 열었다.


“당신에게 바치는 선물이야.”


나는 발끈했다. 잠자다가 황당한 소리에 손을 획 뿌리쳤다.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려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되었다. 애들같이 철없는 남편이었다. 무슨 선물이지 궁금했지만 졸려서 악,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당신, 옛날에 눈을 좋아했잖아.”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처럼 능청을 떨었다. 어이가 없이 고개를 들고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첫눈에 콩깍지가 덮여 나에게 프러포즈하던 해맑은 얼굴이었다. ‘아, 맞아, 눈만 오면 나는 행복했었지. 어쩌다가 계절이 오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함박눈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덮어주려고 소복소복 쌓여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편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회사에만 가면 천사가 되었다. 월급날이면 부장님 모친상, 사장님 외손자 돌잔치까지 줄을 이었다. 매번 돈은 사라지고 빈 봉투를 내밀었다. 현실은 자식들과 끼니 걱정이 급급한데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쌀뜨물처럼 앙금이 두텁게 가라앉았다. 그 와중에도 밤낮으로 사회봉사를 한답시고 집안일은 뒷전이었다. 불우 이웃 돕기는 혼자만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때마다 밤하늘에 밝은 달을 쳐다보며 푸념을 뱉었다. 그래도 남편을 위한 기도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내조가 부실한 내 탓인 것 같아서….


정말 내조 탓일까. 그대는 나의 천사일까. 기도의 지향을 바꾸었다. 눈만 뜨면 아옹다옹해도 자식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아버지였다. 성당에 앉아 기도드렸다. ‘주님, 모든 책임을 저에게 돌리시고 채찍질을 해 주십시오. 자식들이 장성할 때까지 아버지의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태어났다. 덕분에 나약했던 나를 강하게 일으켜 세웠다. 세파에 흔들렸던 시간들은 마음의 공간이 넓어졌고 팔다리에는 근육이 튀어나왔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누가 악역을 하고 싶을까. 시련 속에서 고통의 쓰디쓴 맛이 곰삭아 숙성되어가는 나 자신을 본다. 무슨 일이라도 좋게 해석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반대로 흘러갔다. 부부간에 갈등을 겪을 때마다 성당에 앉아 기도로 내 마음을 다스렸다.


주님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빛에 빨려 들것 같았다. 몇 시간 동안 넋 놓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부란 원수 같다가도 어느 순간 측은지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한밤중에 이벤트를 해 주고 싶은 지아비의 마음이었을까. 그 심정을 얼마나 아는가. 나는 속이 상할 때마다 집을 나섰지만 갈 곳이 없었다.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창밖에는 어스름 달빛이 내려앉았다. 세상사 마음대로 되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레퍼토리였다. “이번에 는 꼭 당첨될 거야. 날 한 번만 믿어 봐.” 어이없게도 또, 그놈의 복권 타령이었다. 그는 변하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 욕심의 저울추를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애원하는 말이 애처롭게 들렸다. 제 것은 모두 내주고 요행이나 바라는 남편은 바보일까, 천사일까. 남편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오늘 밤에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당신 고생 시켜 정말 미안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창밖에 가로등이 고무줄처럼 흐릿하게 늘어졌다. 아파트 울타리의 소나무 위에는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여보, 미안해.’ 불리할 때마다 써먹는 말인줄 알면서도 또 한번 속아주었다. 오늘 밤은 온 세상은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그의 머리도 함박눈이 덮였다. 미운 정 고운 정을 들이며 세월의 풍파를 막아 준 그였다. 삶의 무게를 견디느라 육신은 굽은 나무를 닮았다. 자식들을 키우며 함께 견디어 온 세월이 얼마였던가.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살지 않았나. 한 지붕 밑에, 밥을 먹고 잠자는 동안 오누이처럼 닮았다. 남은 내 인생을 저 소나무처럼 푸르게 동행할 사람이다. 이 눈이 녹아내리면 땅이 생명을 틔울 것이고. 우리 인생의 애환도 한 토막 이야기로 흘러갈 것이다.


혼자보다 둘이라 살 만했다. 그대는 나의 천사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 준 버팀목이었다. 밥 세끼 챙겨 먹고 건강하면 되지. 자식과 손자들은 무에서 유를 창출한 것이다. 고개를 돌려 세월의 결이 쌓인 얼굴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남편님, 그대는 나의 천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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