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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Feb 04. 2024

백일홍 되다

봄이다. 평소보다 나른해서 늦잠을 잤다. 잠옷 차림으로 베란다로 갔다. 블라인드 줄을 잡아당겼다. 중천에 뜬 햇살에 눈을 찌푸린 채 밖을 보았다. 인간 세상은 코로나19로 뒤숭숭한데 벚나무와 목련은 꽃망울이 맺혔다. 20년 전 입주 때 심었던 소나무들도 겨울다운 나목으로 독야청청 우뚝 서서 봄을 기다린다. 먼 기억 속 담벼락 밑으로 눈이 쏠렸다. 무리 지어 꽃 속에 꽃이 핀 숲이 일렁거렸다.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시작해서 우리나라로 번졌다. 처음에는 한두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구정이 지나자 신천지 교인들이 우한에 다녀온 후 집단으로 감염이 시작되었다. 국민들은 당국의 안일한 대처에 볼멘소리를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 세계 나라들이 대한민국 사람을 차단하고, 비행기, 뱃길까지 막았다. 졸지에 지구촌 왕따가 되었다. 그 후 바이러스는 유럽, 이탈리아, 미국, 영국, 프랑스 모든 나라를 차례로 덮쳤다. 그 옛날 콜레라, 신종 플루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우리는 모두 거리두기에 들어갔다. 

며칠 후 베란다 화단에 목련과 벚꽃이 활짝 피었다. 올해 처음 본 듯 생명의 신비에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현실에 발이 묶여 시간은 휙휙 지나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어 몇 달째 집에서 지낸다. 남편과 나는 무거운 사극 드라마 주인공처럼 살고 있다. 온갖 생물들이 꿈틀거리고 변화를 하는데, 서로 마주 보는 거울처럼 천년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듯했다. 눈을 뜨면 화단에 꽃나무를 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서울살이 6년 만에 생애 첫 집을 샀다. 이사 온 며칠 동안도 담 밑에 화사하게 피는 백일홍처럼 붉은 가슴에는 희망으로 설레었다. 몇 년 후 대출을 안고 또 방 한 칸짜리 헌 아파트 한 채를 샀다. 내가 집을 사고 나니 재건축 바람이 축복처럼 휘몰아쳐 로또를 맞은 줄 알았다. 그러나 훗날 재건축아파트가 복병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부에서 지역의 낡은 주택을 허물고 시작된 재건축이었다. 조합원들은 땅을 내어놓고 건설회사가 집을 지어 주는 형식이었다. 입주금은 나중에 한꺼번에 내면 된다고 하였기에 그 말을 믿었다. 

때마침 올림픽을 앞두고 재개발에 들어갔다. 외국 손님들이 김포공항에서 여의도, 마포대교를 지나 시청으로 가는 길목이었기에 빌딩이 병풍처럼 올라갔다. 재건축사업은 속도가 붙어 강제 철거에 들어갔다. 이웃사촌들은 이 지역에 살 수 있도록 입주권을 달라고 데모를 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입주권을 받지 못한 몇몇 세입자들은 상처를 입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사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이었지만 새벽부터 포크레인 바가지로 지붕을 뭉개 버렸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처럼, 그들은 삶의 터전과 꿈도 날아갔다.

세입자들이 단합을 하고 공사를 지연시켰다.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인간 띠를 만들어 공사 현장에 드러누웠다. 몇 년이 훌쩍 지나갔다. 재건축 허가가 떨어져도 건설회사에서 공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8년을 질질 끌면서 내 땅은 야금야금 날아갔다. 내부 공사를 하다가 외환위기가 터졌다. 모든 은행권에서 돈줄이 막혀 버렸다. 동서남북을 뛰어다니며 손을 뻗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옛날에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돕고 살았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보니 내 옆에는 돈을 빌려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기에 희망을 잃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 와중에 딸이 사내 연애 끝에 약혼을 했다. 집안 사정을 안사돈에게 말씀드리고 결혼을 일 년만 미루자고 했으나 반대를 했다. 아파트 부금과 결혼식 비용이 맞물려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어려운 상황에 내 몰려 아파트 선호도도 바꿔 놓았다. 40평대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 채 중도금을 내기 위해 현대캐피탈 주택 담보대출을 무리하게 받았다. 위기상황이 되니 부실은행 정리하라는 정부 방침에 돈을 받기 위한 은행권과 할부 회사 직원들의 협박은 살벌했다. 혼사를 앞두고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예식장에서 촛불을 켜는 단상으로 올라가면서 할부 회사 직원들의 부릅뜬 눈과 험악한 얼굴이 어른거렸다. 

새 아파트의 등기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반값으로 팔았다. 그 돈으로 딸 결혼식을 시키고 아들도 대학에 들어갔다. 집 한 채 판돈으로 모든 빚을 청산하기는 턱없이 모자랐다. 남편은 회사에서 먹고 자고, 나는 컴퓨터 회사에서 잡일과 이웃집 아기들도 돌봐 주었다. 그런 세월도 흘렀다. 결혼한 딸은 삼 남매를 줄줄이 낳았다. 혼자서 육아에 지친 탓에 친정으로 들어왔다. 백년손님과 손자들도 굴비처럼 엮이어 따라왔다. 여름에도 옷 한번 마음대로 벗을 수 없었다. 딸네 가족들은 거실에서 왁자지껄 무리지어 백일홍처럼 활짝 피었다. 

기억은 참 좋은 것인가 보다. 나쁜 것조차도 적당히 망각하게 했다. 남편은 아파트 화단을 서성거리며 취미 삼아 목련과 벚나무를 가지치기했다. 해마다 겨울에 함박눈이 쌓였고 소나무는 나이테가 불어났다. 우리 머리에도 은발이 내려앉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언제 봄이 올까 했는데 어제 내린 소낙비가 몰고 왔다. 목련꽃 봉오리가 뾰족이 부풀었고 이어 벚꽃도 화사하게 피었다. 자연의 순리는 한 치 오차도 없이 새순을 밀어냈다. 도시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질주했는데 2020년 3월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백일이 되었다. 이쯤 되면 내가 백일홍이 아닐까. 계절은 봄에서 여름을 향했다. 나뭇가지는 새로운 변신을 하고 녹색 물결이 번진다. 남편에게 입말처럼 날렸다. 

“여보, 세월이 참 빨라요. 새 아파트 입주한 지 20년이 지났네요.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요?” 

그 말을 해 놓고 울컥거렸다. 남편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당신한테 평생 보은한 셈 치고 살았는데, 나랑 더 살고 싶다고?”

멀찌감치 뜬금없는 표정을 바라보았다. 부부의 인연이란, 고래 힘줄보다 더 질긴지 긴긴 날도 모자라 남편의 농 아닌 농도 그저 반갑다. 화단 꽃들이 활짝 피어 무지개 옷으로 갈아입었다. 젊은 시절 서로 견해 차이로 수많은 갈등을 겪었던 송곳같이 뾰쪽한 모서리도 다 깎였는지 가시 돋친 말도 부드럽게 넘어간다. 이제는 서로가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람으로 닮아간다. 거울처럼 마주 보며 밥을 먹고 눈을 맞추어도 든든하다.

코로나로 누구에게나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다. 남편과 나는 백일홍같이 백일 동안 신혼이 되었다. 남편이 정말로 보은한 셈 치고 살아준 것일까. 실없는 말이지만 이채롭다. 사람이 말문을 닫으면 죽는다고, 저 말도 산 사람끼리 나누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짧다. 

“그래도 더도 덜도 말고 30년만 더 살아요.”

당신 앞에, 화사하게 피고 싶은 백일홍 꽃이었다. 그러면 좀 더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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