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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Aug 16. 2024

남산 도서관의 그녀

  


  도서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서 이슬방울처럼 맺혔던 눈물이 굴러 내렸다. 순간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 궁금했다. 그녀 근처에 앉았다. 딸자식을 키워 본 엄마 마음이라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가끔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검은 머리가 어깨 밑으로 숄처럼 푹 덮였다. 눈대중으로 짐작하건대 삼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시간이 조금 흐른 과자 한 봉지를 꺼내 그녀의 책상 앞에 놓았다. 숨을 고르며 어떤 반응을 하는지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과자봉지를 벗기는 바스락 소리에 고개를 들었더니 고맙다는 듯 눈인사를 해왔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져보려고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가방을 뒤져 빵과 과일을 꺼내놓고 함께 먹자고 권했다. 우리는 간식을 먹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라도 음식을 나누면 닫혔던 마음도 열리는 것일까. 옆 눈으로 살짝 보니 새침하던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는 듯했다. 


  뜬금없이 엄마랑, 싸우고 집 나왔다는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쿵쾅,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속이 많이 상했겠다며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논현동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가족들은 서로 즐거워하는데, 본인만 불행한 것 같아 남산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간담이 서늘한 말을 듣고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처음에는 낯가림을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호주 유학 생활 중에 겪었던 어려움을 술술 털어놓았다. 내 눈을 그녀의 표정에 고정하고 공감해주었다. 나는 남산도서관에 책을 읽으려고 왔다가 가출한 아가씨의 인생 상담자가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의 말을 공감해주기는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몰라도 생채기가 났을 것 같아 따뜻한 엄마의 손길처럼 포근하게 감싸주고 싶었다. 


  오빠와 여동생은 공부를 못해서 부모님을 실망하게 했는데, 본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 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교육열이 높았던 엄마가 똑똑한 딸 하나가 열 아들이 부럽지 않다며 허영에 들떴다. 조기교육을 시킨다며 어린 자기를 호주로 유학을 보냈고, 한국에서 문법 위주로 배운 영어 실력으로는 입도 귀도 열리지 않았다. 함께 유학 온 친구들은 적응하지 못해 돌아갔고, 혼자 남아 두려움에 떨다가 집으로 전화를 걸면 반드시 영문학 박사가 되어서 오라는 엄포에 주저앉았다고 했다.  

  그녀는 오로지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으로 악착같이 공부했다. 드디어, 20년 만에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박사학위의 꿈을 이루어 귀국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에 마중을 나오신 부모님과 감격스러운 만남이었다. 외국에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김치와 불고기를 맛있게 먹는데, 고기를 구워주던 엄마가 얼른 대학교수로 취직하라고 했다. 신랑감은 대학교수나, 의사를 알아보라고 했다. 한국 실정을 전혀 모른 채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이튿날부터 이력서 수십 통을 써서 대학마다 넣었지만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외국유학 갔다가 서른 살이 넘어 돌아오니 마음 나눌 친구도 없어 외로웠다. 그녀는 이야기 도중에 자꾸만 눈물을 흘렸다. 참담한 심정으로 그녀의 아픈 마음을 공감해주고 손수건을 손에 쥐여 주었다. 그녀는 학원 강사로 어렵게 취업해도 자주 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어민 강사보다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고 해고를 당했다. 그 와중에 함께 살던 친구가 전세금을 뽑아 도망을 갔다. 목이 꽉 막혀 병원에서 검사를 하니 성대 결절이라는 진단에 희망을 잃었다.


   얼른 화제를 돌리고, 그녀에게 내가 절박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20대 중반에 결혼한 후 남편과 성격 차이로 갈등을 겪었고, 툭하면 남편이 아파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돈이 한 푼도 없어 아이들과 추위에 떨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눈물이 났다. 그녀도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했는지 짠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녀가 아주머니는 저보다 훨씬 고생을 많이 하셨다며 도리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오전 10경에 만나서 4시까지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녀와 헤어지기 전 꼭 안아 주었다. 버스에 올라 창밖으로 바라보는 얼굴이 보름달처럼 빛났다. 


한 달 후, 취직했다며 한턱내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소중한 나의 친구가 힘차게 새 출발 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내 마음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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