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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스 Dec 01. 2020

목메달로 산다는 것

나는 아들이 둘이다.

힘들지 않냐고? 힘들다.

그럼 나도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육아는 어떠냐고.


내 아이가 아들 둘이라서 내 육아가 남들보다 힘들다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들 다 하는 육아, 나도 딱 그만큼 힘들었을 뿐이었다.


내 어릴 적 꿈은 현모양처였고, 그 소망 속 가족계획엔 늘 '아들 셋'이 등장했다.

하나는 학자로, 다른 놈은 사장님으로, 남은 녀석은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은 상상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유치 찬란한 욕심에서 아들 셋을 바랐다.


결혼을 했고, 나의 자녀관은 여전했다.

첫아이를 가졌을 때 당연히 아들이길 원했다.

시어머니 역시 옛날 분이시라, 친정엄마는 자기 닮아 딸만 낳았다는 오명이 싫어 아들을 원하셨다.

각기 다른 이유였지만 우리의 소망은 아들이었고, 나는 첫아이로 아들을 얻었다.


그럼, 둘째는? 내가 목메달로 살고 있으니 역시 아들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내색하진 않았지만 무척 실망한 듯했다. 딸만 키워본 아빠는 손녀도 안아보고 싶어 하셨고, 시어머니는 훗날을 위해 딸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위로(?)하셨다.


나는 내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졌는데, 뭔 소리야!

그렇게 나는 목메달이 되었다.


아이 둘, 정확히 짱구이마가 똑같은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외출을 한다.

이른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중년 부인은 내 아이 둘을 훑어보고는 혀부터 찬다. 그다음은 정해진 수순대로 '아이고, 애기 엄마 힘들겠다...' 나는 그저 익숙하게 미소를 지어드렸다.


첫 번째 난관을 헤치고, 놀이터에 도착했다.

볕이 좋은 벤치를 골라 앉았다. 텀블러에 담아온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미동없이 아이들의 놀이를 바라본다.  아, 따뜻해.

둘은 미끄럼틀을 실컷 타더니, 이번엔 바닥에 철퍼덕 앉아 흙장난에 푹 빠졌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둘만 있으면 그곳이 지옥이라도 행복할 것 같은 녀석들.


'싫어~~~~'

어디선가 짜증 부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우리 둘째 또래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도망 오듯 등장하고 고요함은 깨진다. '어머, 아들 둘이라 힘드시겠어요...호호호' 라며 굳이 내 옆자리에 앉는 여자아이의 엄마. 두 번째 시작인가.


단전 저 아래서 꿈틀거리는 '니 딸이 더 힘들겠어!!!'라는 외침을 삼킨다.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아이 둘을 불러 자리를 뜬다. 애들의 옷을 털어주고 점심 때 만두가 먹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마트로 간다. 냉동식품 코너에서 나는 오늘의 마지막 봉변을 당한다.


만두를 굽고 계시던 시식코너 아주머니가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하는데, 목메달이네, 우짜누...'


그래, 나 목메달이다!

근데 당신들이 내 아들을 키워봤냐고!!! 어디서 아는 척이야!!!


9살이 되도록 8시30분이면 잠드는 아이들 키워봤냐고,

분유면 분유, 이유식이면 이유식 주는 대로 먹었고,

그렇게 많이 싸운다는 두 살 터울 형제들 지금껏 주먹다짐 한 번 한 적이 없는데...


어디서 훈수이고, 어디서 나를 동정하는 거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퇴근한 남편에게 쏟아붓는 걸로 끝이 난다. 이 역시 익숙한 남편은 싱겁게 웃으며 양복 상의를 벗던 두 팔로 나를 꼭 안아준다.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났다.


나는 목메달이다. 당신들이 볼 때는.

하지만 현실 속 나는 누구보다 아들 둘을 우아하게 건사하는 금메달이다.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타인의 육아를 속단하지 마라.

아이를 키우는 우리 모두는 행복한 금메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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