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Chapter1. 여정의 시작 (나의 첫 번째 인도 : 2009.09.14~2009.10.21)
인터넷에서 퍼온 빠하르간즈 사진
나는 인도를 좋아한다. 그동안 미루고 미뤄두었던 인도에 대한 여행기를 쓰려고 한다.
일단 기본이 되는 것은 그때 네이버 카페 인도방랑기에 썼던 글들과 나의 메모들 그리고 내 기억이다. 여기에는 가슴 아픈 이유가 있다.
2009년의 첫 번째 인도여행과 2012년의 두 번째 인도여행에서 찍었던 수백 장의 사진들은 모두 사라졌다
블로그나 SNS 등을 하지 않아 그냥 컴퓨터 하드에 옮겨두었는데 오래된 하드디스크라 그런지 백업 안 하고 포맷하다가 그냥 다 날아가버렸다
굳이 돈이 들여서 하드를 복구할 생각은 없기에 사진 복구는 포기했다
류시화 시인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를 빌리지 않아도 여행 중 정말 소중한 순간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인도 배낭여행은 나에겐 첫 번째 배낭여행도 아니고 그냥 2009년의 답답하고 막막한 심정에서 계획 없이 떠난 도피여행이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류시화 시인의 책들을 보고 언젠가 한 번쯤은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그런 곳이었다
어찌 보면 나를 인도여행으로 이끈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의 사회선생님이었느지 모른다
시골 촌놈 주에서도 유난히 까맣던 나의 별명은 흑인, 만딩고, 노예 등등 다양했다. 그때 사회선생님은 남자선생님이었는데 나한테 맨날 인도인이라고 놀리며 너는 갠지스강에 성지순례를 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셨다
그 영향이었을까? 본격적인 장거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인도를 택하게 되었다
아마 그 외에도 내가 만났던 영어회화 원어민 강사들이 한결같이 내 앞에서 인도 예찬을 늘어놓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1일 차 - 2009년 9월 15일
나름 호주 워킹홀리데이 생활과 국내에서 내가 택한 직업의 특성상 영어회화에는 큰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비자를 받자마자 그냥 내가 쓰던 배낭에 이것저것 때려 넣고 홍콩을 경유해 델리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탔다
저렴한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면 비행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 외에도 항상 여행지 도착시간이 새벽이라는 단점이 있다
두 번의 비행기 환승을 거쳐 피곤에 전 몸으로 새벽에 델리공항에 도착한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냥 택시 타고 빠하르간즈에 갈지 아니면 서른 살의 혈기(?)를 믿고 공항에서 노숙하고 다음날 버스를 탈지말이다
혹시나 택시를 셰어 할 한국 사람은 없나 두리번거리는데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포기하고 공항 앞에 있는 스낵바에서 음료수 하나를 사서 의자를 붙여놓고 누웠다
피곤한 데다가 영 불편해서 비싸도 혼자 택시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배낭을 주섬주섬 꾸리는데 옆에서 일본어가 들린다
돌아보니 20대 일본여자 세 명이 배낭을 메고 들어온다
호주에 있을 때 배운 일본어를 총 동원해서 빠하르간즈에 갈 거면 택시비 셰어해서 같이 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한다
아마 그 친구들도 여자끼리만 있어서 조금 불안했나 보다
종이에 목적지를 써주고 택시를 탔다
피곤한 나는 그냥 눈을 감았고 그 친구들도 피곤했는지 택시 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을 깨는 것은 역시나 인도 택시기사이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귀찮았지만 그냥 인도기사 말을 받아주기 시작한다
참 어딜 가나 택시기사들은 다 똑같은 듯하다
하지만 분명 그들은 누군가의 가족이고 가장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삶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도망치듯 여행을 택한 나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영혼들인 것이다
새벽 4시의 빠하르간즈는 고요했다
일본친구들의 숙소를 어렵게 찾아 그 앞에서 짐을 내리는데 어느 나라에나 발생하는 팁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 기사한테는 미안하지만 너무 피곤하고 귀찮아서 가진 건 이게 다라고 요금 +20루피 주면서 택시에서 멀어진다
일본친구들과는 헤어지고 새벽 4시의 빠하르간즈에 나와 엄청나게 큰 배낭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아직도 어둑어둑한데 길에 소들이 엎드려 잠자고 있다. 약간 매캐하면서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아, 이곳이 인도구나. 나 지금 인도에 와 있구나
잘 곳을 찾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발걸음을 옮긴다. 귀찮게 따라오는 호객꾼들에게 'Do not bother me, please'라고 내뱉고 한 군데 한 군데 들어간다.
아직 여름휴가 거품이 빠지지 않아서일까 예상한 숙박비보다 비싸 다른 곳을 찾는다. 아마 그때 1시간 정도 동안 문이 열린 빠하르간즈의 웬만한 게스트하우스는 다 가본 듯하다
내가 원하는 가격대에서는 도저히 방을 잡지 못할 것 같아 그중에 한 군데에 들어간다. 지금 방이 하나 있는데 제일 비싼 방이란다. 무엇보다도 쉬는 것이 간절한 나였기에 그냥 거기에 묶는다고 했다. 하룻밤에 700루피, 에어컨에 온수에 커다란 벽걸이 티브이까지 있는 방이었다. 물론 동남아의 5성 호텔보다는 못하지만 원래 하루에 200루피 정도를 숙박비로 예상했는데 의외의 큰 지출이었다
샤워를 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도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내가 지금 왜 여기 왔지? 이제 내일은 뭘 하지?' 였던 것 같다
-2일 차- 2009년 9월 16일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바깥을 걷는다
새벽에 보았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를 맞는다
내가 티브이에서 보던 인도의 모습이다
길에 널브러져 있는 개, 소, 그 사이에 지나다니는 사이클릭샤, 오토릭샤, 먼지, 새벽보다 훨씬 더 심한 악취, 파리떼 등등
특별한 계획이 없는 나였기에 그냥 빠하르간즈를 천천히 걷는다
그때는 그 거리를 지금처럼 많이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짜이를 마시고 길거리 토스트를 먹고 현지인들과 이야기하며 보냈다
이름을 물어보면 남자는 보통 Raj라고 이야기해 주고, 물건을 파는 여자가 아닌 여자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신기하게도 거의 대부분이 활짝 웃고 그냥 좋아한다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아닌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인도 여행 책 자체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터벅터벅 걷는다
지금은 그곳이 코넛플레이스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땐 그냥 한 방향으로 쭉 가다 보니 뭔가 깨끗한 거리가 나온다
역시 관광지만 벗어나면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 누군가 내 운동화에 뭘 뿌린다
활짝 웃으며 이거 원숭이 똥이니까 이걸로 지우면 된다고 나에게 무엇을 내민다
너무나 눈에 보이는 수작이지만 그런 것도 여기가 인도구나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해 그냥 됐다고 하고 길을 마저 간다
어차피 이번 여행 중 버릴 생각을 하고 온 헌 운동화라 신경 쓰지 않고 그 위의 잔디밭으로 올라간다
빠하르간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곳에는 사리나 알라딘바지를 입거나 터번을 쓴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청바지에 티셔츠로 사람들이 나와 신문지를 깔고 잔디밭에 누워있을 뿐이다
그 옆에는 골라골라 시장이 있다
하나 사려고 보니 사이즈가 다 작다
불과 걸어서 20분 정도 차이에 이렇게 다르다니 웃음이 난다
하긴,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도 들어가면 타임머신을 탄 듯 20~30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목이 말라 길거리에 있는 음료수를 마신다
많은 여행 관련 책에 외국에서 음식 조심하라고 나오지만, 난 대부분 그냥 그 나라 사람처럼 먹어왔고 큰 탈이 없었기에 그냥 맛있게 마셨다
앞으로의 계획이 전혀 없었기에 서점에 들러 론리플래닛 개정판을 산다
집에 와서 아무 페이지나 펼친다
'Leh'가 보인다
그래 레로 가자. 에어인디아로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레로 출발했다
- 3일 차 - 2009년 9월 17일
델리에서 새벽 비행기로 도착한 레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좋았고 비행기 안에서 읽어본 판공 쵸 호수가 너무 마음에 들어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을 나오니 여기저기서 호객행위를 한다
어차피 숙박비는 비슷할 거라 생각해 그중 한 아저씨의 게스트하우스로 간다
론리플래닛에 비행기로 오면 고산병 때문에 하루 정도 푹 쉴 것을 권하지만 난 그냥 무시했다
도착하자마자 짐 풀고 싸돌아 다녔다
돌아다니다가 한국여행자들을 만나고 내가 묶는 게스트하우스 말고 정말 가정집에서 운영하는 방 3개짜리 게스트하우스를 알게 되었다
따라가 보았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숙소를 그쪽을 옮겼다
'락숩게스트하우스' 그 집 아들이 이름이 락숩인데 그때 7살이었으니 지금은 12살쯤 되려나?
그 게스트 하우스는 조용하고 마치 내가 어릴 때 갔던 시골할머니집 같은 곳이었다
마당에서 뒤쪽으로 곰파가 병풍처럼 보이고 그냥 모든 게 다 좋았다
특히 그 집 부부와 아들인 락숩은 정말 친절하게 잘해주었다
오토바이로 판공초로 갈 생각을 하고 주인아저씨한테 오토바이 렌트하는 곳을 물어보니 자기 친구가 한단다
따라가서 보증금을 물어보니 그냥 안내도 된단다
자기 친구 손님이라 믿는다면서
참 어딜 가나 사람 차이가 있을 뿐이지 나라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오토바이를 렌트하고 뒤에 주인아저씨를 태우고 게스트 하우스로 온다
아저씨가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간절하다
한번 타보겠냐고 하니깐 아이처럼 좋아한다
옆에서 락숩도 와서 타고 싶어 하는 눈치다
뒤에 락숩을 태우고 동네를 천천히 도는 아저씨 모습이 참 푸근하고 좋았다
오토바이도 빌렸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레 투어에 나선다
판공쵸는 다음날 가기로 하고 레로 곰파, 레 성 등등 신나게 달린다
레 성으로 가는 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니 그 동네 애들이 다 내 오토바이로 모여든다
레 지방은 사실 인도라기보다는 티베트에 가까운 것 같다
'쭐래~'라고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통하는 정말 정이 넘치는 곳이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나와 서로 앞에 서려고 한다
그중 제일 언니로 보이는 아이가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주고 자기도 옆에 선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 여러 장 찍고 보여주니 서로 보면서 까르르 웃고 난리가 난다
(사진이 날아가 가장 아쉬운 사진이 바로 그때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 속의 아이들의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와서 레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고 누웠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온다. 아 이게 고산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여행책자에서 하라는 대로 쉬었어야 한다는 후회가 뒤늦게 들어온다.
숙취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 같은 아픔에 한국에서 가져온 두통약을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게 끙끙 앓으며 아침을 맞자마자 아저씨한테 물어 병원으로 갔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가자마자 내가 외국인인걸 알았는지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고산병의 처방은 간단했다
그냥 산소마스크를 썼더니 깨질듯한 두통이 사라졌다
그렇게 병원에서 어렴풋 잠이 들었는데 옆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주인아저씨가 보온병에 죽을 싸서 가지고 온 것이다
살면서 그렇게 나에게 잘해준 사람은 가족과 여자친구 외에는 없었던 듯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틀 동안 매끼마다 죽이랑 과일을 가지고 오셨으니 말이다 (다시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아직도 못 가봐서 참 죄송스럽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병원을 퇴원할 때 거기 의사가 가급적 빨리 낮은 제대로 가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이번에는 의사말을 잘 듣는다
결국 일주일을 계획했던 레에서의 일정은 하루의 오토바이 투어로 끝나고 말았다
아쉽지만 오토바이를 바로 반납하고 비행기표를 당겨 델리로 내려오게 되었다
물론 주인아저씨와 락숩에게 꼭 다시 오겠다며 정말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델리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정말 멋진 스페인 친구와 독일 친구를 만났다
각자 인도여행 사진을 꺼내놓고 자랑을 한다
둘 다 육로로 레에 간 터라 마날리에서 레로 가는 풍경 같은 사진들과 판공 쵸 츠모리의 옥색 투명한 사진으로 나를 부럽게 한다
내가 고산병에 못 갔다고 하니 다음에 꼭 가란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그들과 다시 델리로 택시를 타고 와 함께 '사라반나'에서 저녁을 먹는다
역시 여행의 묘미 중의 하나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나이, 성별,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금방 친구가 된다는 것이 아닐까?
숙소로 돌아와 서로 기념사진을 찍고 바이바이를 한다
참 신기한 것이, 가진 사진 하나 없이 5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지금 그들과 나눴던 대화 그 사람들 표정, 심지어 그때 먹었던 음식의 맛까지 하나하나 놀랍도록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기간을 정하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처음 델리에 도착해서 바로 레로 이동, 병원에서 이틀 보내고 델리에 도착할 때까지 불과 6일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난 인도라는 나라의 알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