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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지망생 Sep 02. 2023

네 번의 인도, 한 번의 파키스탄 (2)

(암리싸르에서의 삽질과 지긋지긋했던 첫 번째 인도여행 소감 )

Chapter2. 암리싸르 황금사원 옆의 사원에서 비질을 하다



찬디가르에서의 하루는 그냥 좋은 호텔에서의 1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진은 없지만, 혼자 찬디가르 호수를 구경한 기억이 난다

그냥 일산호수공원 느낌이었다

조용히 혼자 걷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나를 귀찮게 하는 호객꾼에게 급기야 나는 폭발해서 호주에서 배웠던 온갖 영어로 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다고 내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건만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인도를 여행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인도는 사람들에게 천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때까지 나에게 인도는 첫 도착지인 빠하른간즈의 비위생적이고 귀가 먹먹한 경적소리, 그리고 레에서의 따뜻한 인정, 마날리에서의 여유, 찬디가르에서의 지침을 보여줬다

그때가 여행시작한 지 3주쯤 되었을 때 같다


아마 세 달을 꽉 채워 인도 구석구석을 돌아보려던 처음의 호기롭던 모습은 사라지고 계속 나를 귀찮게 하는 호객꾼과 입에 맞지 않은 음식 등으로 지쳤던 것 같다


불편한 마음으로 숙소로 와서 무작정 암리싸르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무엇인가 더 좋은 일이 생기길 기대하며 말이다


내가 처음 보고 싶었던 것은 암리싸르 황금사원과 와 가보드 국기게양식이었다

다행히 암리싸르에 도착해서는 몸도 마음도 조금 회복되어 다시 여행할 힘을 얻었다


황금사원 근처로 숙소를 잡고 날이 밝자마자 황금사원을 갔다

그때만 해도 와이파이나 맵이 정확하지 않아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나중에 알고 보니 황금사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그곳이 황금사원이라 굳게 믿고 열심히 빗자루로 광장을 닦는 자원봉사를 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옆에서 환하게 불을 밝힌 모습을 보고 진짜 황금사원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내가 인도를 여행하며 건축물에 반한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타지마할이야 워낙 유명한 건축물이라지만 환하게 불을 밝힌 황금사원의 다리로 끝없이 지나가는 인파는 경건함마저 들게 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원가 50루피짜리지만 바가지 써서 400루피 주고 산 알라딘 바지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건처럼 쓰고 황금사원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 찍은 순간이다

그 사진을 누가 찍어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내 미소는 진짜였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이기적인 자원봉사자의 여유였을지 아니면 장기여행자의 자유로움이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의 난 지금보다 젊었고 꿈이 있었고 더 열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다시 암리싸르를 간다고 해서 그때의 느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황금사원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나는 택시를 대절해서 와가 보더로 갔다

그곳에서 국기하강식을 보며 인도의 정식명칭이 힌두스탄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힌두스탄과 파키스탄의 군인들이 하는 국기하강식은 축제였다

각 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손에 손잡고 춤을 추었고 나는 그 속에 뛰어들어 그들과 하나 되어 말 그대로 몸부림을 췄다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요즘 기안 84의 태계일주를 보며 기안의 여행스타일이 나와 비슷해서 흐뭇하게 보는 중이다

해진 후의 국경은 장관이었다

노을을 뒤로하고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암리싸르로 돌아오는 택시, 오토릭샤, 버스들의 모습은 마치 아포칼립스의 매드맥스를 연상케 했다


(사실 사진이나 일기 등이 아닌 순전한 내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중이라 사건의 전후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그냥   그때 나의 느낌 위주로 기술 중이니 다소 두서가 없어도 이해해 주기를 부탁한다)


암리싸르 숙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공항으로 갔다

다시 델리로 가서 타지마할을 볼 생각이었다

암리싸르의 인터넷 전화방에서 집에 전화를 해서 예정보다 일찍 귀국한다고 이야기했다


호주에서 워홀러로 일 년 지내는 것과 장기여행은 분명 차이가 났다

장기 여행자들이 첫 번째 향수를 느낀다는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 신라면과 김치가 미친 듯이 먹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뉴델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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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뉴델리에서의 나는 더 이상 어리바리한 인도 초행 여행자가 아니었다

바가지 썼던 알라딘 바지에 배인 얼룩만큼 나는 제법 인도생활에 적응했고 그렇게 귀찮게 달라붙던 삐끼들이 나에겐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대략적인 물가와 함께 식품에 적힌 Rs(정부 규제가격, 이 이상으로 파는 것은 불법이지만 초보여행자는 언제나 당하게 된다)를 알아서 더 이상 호구당할 일도 없어졌다

델리에서 이틀쯤 있으면서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여행경비는 아직 남았지만, 사실 매일 100km 이상 걷기만 하는 인도여행과 고기라고 해 봐야 닭고기뿐인 식단에 서서히 지쳐갈 무렵이었다

세 달 여행할 거라 호기롭게 외치고 나왔는데 그냥 들어갈 수도 없고 기왕 인도에 왔으니 타지마할을 보기로 결정했다

뉴델리에서 타지마할로 기차를 타고 갔다

한국에서의 원래 계획은  SL 이하를 타려 했으나 더위는 못 견뎌하는 편이라 내가 묶던 숙소(AJ guesthouse)에서 심부름 값을 주고 에어컨 나오는 AA 클래스로 편하게 갔다

기차 안에서 인도 엔지니어 아저씨와 친해져서 한참 자기 부상열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여행을 하는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인 사람 사귀기이다

초반에 누 모든 사람의 연락처를 받고 안부메일을 보내곤 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고 운명에 맡긴다

우연히 다시 만나면 더 반가울 거라 믿으며 말이다

타지마할에 도착해 근처 숙소에서 일단 자고 아침 일찍 타지마할로 갔다

사실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아침의 타지마할은 환상이었다

아침 햇살로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타지마할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아마 사진 삐끼가 아닐까 한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서 나를 데리고 이리저리 좋은 스폿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는 돈을 요구한다

물론 좋은 사진을 찍게 해 주었으니 기분 좋게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의 난 그렇지 못했다

당연히 후반부에는 돈을 달라는 삐끼와 처음에 그 이야기를 안 했으니 못 주겠다는 나와 언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후회하는 행동이지만 나는 조금 뻔뻔할 정도로 그 삐끼와의 언쟁을 즐겼다

원래 언어구사능력은 싸울 때 급속히 성장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욕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갈 때 나는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아그라에서 이제 다시 델리로 돌아갈 때다

문득 인도여행에 지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충동적으로 마카오 경유 인천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여기서 잠깐 내 여행스타일을 설명하자면 아주 비효율성의 극치이다

일정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면서 싼 비행기표가 나오면 일단 사고 보는 것은 둘째치고 날짜나 시간을 착각해 놀려먹ㅈ기 일쑤였다

그때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지도를 보고 아그라와 델리 중간쯤에서 기차에서 내렸다

뉴델리역까지 갔다가는 비행기 체크인 시간에 못 맞출 것 같아서이다

막상 내렸지만 허허벌판에 택시는커녕 오토릭샤도 없었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왜 인도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건지 한심함과 당장 갈 곳이 없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지금도 가끔씩 그때 아예 귀국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다행히 지나가던 오토릭샤를 잡아서 비행기 체크인에 늦지 않으면 추가요금을 준다고 하고 재촉했다

낡은 오토릭샤는 대로를 질주했고 지금도 그 먼지와 시끄러운 엔진소리, 그리고 황혼의 저녁하늘이 아주 생생하다

간신히 공항에 도착했고 비행기를 타면서 나의 첫 인도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 지긋지긋한 인도를 세 번이나 더 가고, 이렇게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3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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