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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지망생 Sep 02. 2023

네 번의 인도, 한 번의 파키스탄 (3)

두 번째 인도 : 바라나시로 가는길, 유쾌한 무슬림형제들

Chapter3. 다시 온 인도

 

첫 번째 인도여행을 마치고 나에겐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것에 관한 것을 여기에 나열한다면 여행 에세이가 아닌 일기장이 될 것 같아 그 이야기들은 나중에 따로 출간하도록 하겠다


두 번째 인도여행의 출발은 한 영화였다

난 영화를 보다가 여행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Eat , Pray, Love'를 보고 첫 번째 여행 때 못 갔던 바라나시가 갑자기 가고 싶어 졌다.


이번 여행은 조금 특이하게 동행을 구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인도여행이 많이 외로웠다고 느껴서일까? 인도 관련 네이버카페에 동행을 구한다고 올렸고 한 여행자가 나와 합류하기로 했다. 


서로 비행기표를 따로 끊었는데 우연하게도 같은 비행기였다. 인도를 갈 때 가장 싼 항공편은 역시 동방항공이다. 남방항공보다 조금 나은 기내식이 제공되고 기체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때는 코로나 훨씬 전이라 내 기억에 인도 델리 왕복 비행기표 값이 39만 원 밖에 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 상하이에서 한 번 환승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나는 스탑오버를 즐기는 찐 여행자이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같은 비행기지만 좌석이 떨어져 별다른 이야기를 못 했던 동행과 처음으로 제대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 동행을 이제부터 K라고 칭하겠다. K는 대학생이었다. 취업 준비 중 생각을 정리하고자 인도 여행을 결심했는데 혼자서는 막막하던 차에 내 카톡 프로필을 보고 믿음이 생겨 동행을 결심했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카톡을 가족과 친구들의 성화에 깔고 잘하지는 않던 터라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쓰지만, 2015년까지 난 철저한 아날로그 감성주의자였다. 휴대폰 없이 2년 산 적도 있다. 그 이야기는 다른 책에 자세히 쓸 터이니 궁금하신 독자는 다음에 출간될 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상하이에서의 환승은 겨우 2시간밖에 되지 않아 그냥 공항 안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행계획을 짰다. 나야 항상 아무 계획 없이 다니는지라 K가 생각한 루트를 같이 보면서 함께 현실적인 동행루트를 짰다. 적어도 한 달 이상 머물 나와 다르게 K의 일정은 단 일주일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공동 목적지인 바라나시로 일단 가기로 했다. 아마 나 혼자였으면 편하게 비행기를 타거나 2A 이상의 편한 기차를 탔겠지만, 학생인 그녀의 경비 사정을 감안하고 또한 평소 궁금했던 SL Class (슬리퍼스-침대열차)로 바라나시를 가기로 했다. 일단 첫날의 숙소는 K가 이미 한인 숙소를 예약했기에 K는 그곳에서 묶고 나는 델리에서 내가 항상 가는 AJ Guest House에서 하루 묶고 이틀째 되는 날 기차표 사정을 보고 움직이기로 했다. 


몇 년 만의 델리 빠하르간즈는 첫 여행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소똥 냄새와 먼지가 폴폴 났다. 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을 나는 왜 그리 그리워했던가? 의문을 가지며 거리를 둘러본다. 나는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이곳은 그대로여서 좋았다. AJ Guest House 주인장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한국인인 내가 인도인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스트 하우스를 들어가는 순간 주인장이 내 영어이름인 ‘Jerry’를 불러주어 자세히 보니 나도 그 아저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두 번째 여행에서 친해진 인도인들의 사진을 찍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했었는데 그 휴대폰을 필리핀에서 유람선 기다리다가 도난을 당했다. 그래서 지금 그냥 기억에 의존하는데 너무 시간이 흘러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래서 다시금 기록의 중요성을 느낀다. 지금에서야 뒤늦게 예전에 찍었던 영상 중 남아있는 것을 편집하여 유튜브에 올릴 생각을 하지만, 예전 여행 때마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K와 함께 델리 기차역으로 가서 슬리퍼 열차를 끊는다. 다행히 외국인 쿼터가 있어 금방 끊었다. 시간은 저녁 8시쯤 출발해서 바라나시에 다음날 아침 8시에 도착하는 장장 12시간의 여정이었다. 사실 나는 첫 번째 인도여행 때 꽤 럭셔리한 인도여행을 했었기 때문에 (대절 자동차와 비행기로 장거리 이동) 제대로 인도를 여행하는 첫 번째 경험이었다.


최근에 여행유튜버 빠니보틀의 인도 기차 체험을 봤는데 딱 그때가 떠올랐다. 말이 침대열차지 낮에는 그냥 2,3층의 침대칸막이를 치우고 6명이 옹기종기 3명씩 앉아서 있다. 게다가 좌석표가 없는 입석 인원까지 마치 제 자리인양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의 경우 그냥 자신의 자리가 있음에도 눈치 보며 끼어가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때의 나는 다이어트 성공 전이라 100kg 넘는 거구에 까맣게 탄 피부와 파란색 선글라스를 낀 중국의 조폭느낌이었기 때문에 우리 자리를 잘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와 같은 구역에 앉은 인도인들은 무슬림 형제들이었다. 장거리 여행이었기에 빨리 친해지는 것이 편할 것 같아 말을 걸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너무나 친절하고 열린 종교의식을 가진 순박한 청년들이었다. 바라나시에 도착하면 꼭 자신의 집에 와 달라는 초대도 받았다. 


바라나시까지의 기차여행 (특히 야간 기차 여행)은 만만치 않았다. 저녁까지는 그런대로 이야기도 하고 경치도 보면서 버틸 수 있었는데 문제는 밤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불면증이 심했던 나는 아예 수면유도제를 가지고 다니며 장거리 여행 때 먹곤 했는데, 그것도 효과가 없었다. 제대로 된 유리창이 없이 휑한 철창살 사이로 후텁지근한 밤공기가 느껴지고, 가끔 맞은편에 지나오는 기차의 굉음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특히나 내 자리는 제일 꼭대기였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뿐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가 그리운 것은 단지 내가 나이를 많이 먹어서일까? 아니면,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사실 그때의 난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기에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서 위로를 찾고자 했는지 모른다. 


영원한 어둠은 없듯이 곧 아침이 밝아왔고, 어제 친해진 무슬림 형제들은 역시나 아침 일찍 모여서 경건하게 예배를 올린다. 사실 내가 제대로 무슬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첫 번째 경험이었는데, 크리스천인 나를 배려해 주는 그들의 모습에 역시 직접 겪어봐야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와 K는 바라나시 정션역에 도착했다. 그 무슬림 형제들은 가족이 배웅 나왔다. 한국을 떠난 지 3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냥 가족이란 사람들이 잠깐 그리웠다.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인도 여행에서야 비로소 바라나시에 입성했다. 그리고 그 바라나시에서 내가 인도를 사랑하고 인도에서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일들을 겪게 된다. - 4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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