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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Apr 15. 2023

230415 무제


동생이 세종 신혼집에 내려간 지도 한 달이 꽉 찼다. 주중에는 일하느라 바쁠 거고 주말엔 쉬어야 할 테니 먼 거리에 있는 친정집에 자주 오기 힘들 것이다. 대신 집은 별이의 쾌활함과 소란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엄마는 빈둥지 증후군을 느낄 새 없이 별이와 함께 즐겁고도 약간은 고단한 그런 하루를 보낸다.


엄마는 동생이 ‘알아서 잘 살겠거니’ 생각하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동생은 엄마를 그런 식으로 길들였다. 엄마의 말 한마디, 표정과 손짓 하나에도 순식간에 경직되고 예민하게 반응했던 나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래서 한 달이 넘는 동생의 부재는 엄마께 큰 영향도 주지 못 했다. 응당 그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동생은 가까운 동네에 사는 막냇삼촌 댁과 자주 교류하는 듯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지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제부가 막냇삼촌과 그 사위와 코드가 잘 맞아 자주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니, 먼 거리에 딸을 보내놓은 엄마도 마음이 많이 놓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한 번은 막냇삼촌 집에 놀러 간 동생이 ‘집 반찬이 너무 맛있는데 저 조금만 가져가도 될까요?’라는 부탁을 했고 막내 숙모는 반색하며 그러마 하고 반찬 통에 이것저것 챙겨주셨다고 한다. 빈 그릇을 돌려드리고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음 모임을 잡았을 때, 숙모는 갈비며 새우며 온갖 푸짐한 음식을 만들어 다시 그 반찬 통을 채워 돌려보냈다.


막내 숙모는 항상 내게 ‘큰형님께 항상 죄송한 마음인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고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했었다. 엄마의 손아래 동서들은 늘 그런 말을 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큰형님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고 그 큰형님의 수족과 같은 큰딸, 나를 붙잡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 그걸 어떻게 갚을 건데요. 정 그러고 싶으면 시간을 되돌려봐요.


그 옹졸하고 편협한 마음은 동생의 전 남자친구-현 남편이 어떤 계기로 세종시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신혼집을 그곳에 잡고 동생이 결혼하면서, 이동이 잦던 막냇삼촌 내외께서 그 사촌 내외와 같은 동네에 정착하면서, 늙은 할아버지를 이제라도 모시겠다 세종으로 모셔가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풀리게 됐다.


엮여 사는 것의 피곤함만 알았는데 동생은 그것의 장점을 찾으며 살게 된 것이다. 오늘 저녁은 숙모가 준 갈비를 구워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신나게 말하는 동생을 보며, 네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맞다. 동생은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동생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엄마는 이해할 수 없게 안절부절못해 하기 시작했다. 동생을 친정엄마처럼 챙겨주는 이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질 것 같은데, 엄마는 그걸 ‘신세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 동생이 뭐라도 사 들고 가서 감사했고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면 되는 거잖아.”

“야, 그래도 그거 아니야. 가만있어 봐라. 이번에 할아버지 생신 모임 할 때에 aa이한테 뭐 좀 챙겨줘야겠네. 그리고 bb이 엄마가 별이 보면 용돈 자주 주니까 이번 김에 그 집도 뭐 좀 챙겨줘야 되고…. cc는 워낙 아빠한테 잘하니까 이것도 챙겨주고….”


챙겨준다는 것은 돈 또는 선물이다. 엄마는 이제까지 받은 것들을 철저하게 기억하여 하나씩 갚으려고 했다. 숙모들이 나나 동생이나 별이를 챙기는 이유는 단 하나, 엄마한테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 때문인 건데 엄마는 마치 빚이 쌓인 듯이 하나하나 갚아내려 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서로 위하는 훈훈한 동서 관계인 것 같지만 그 뿌리를 아는 나는 한숨부터 나왔다. 이미 이런 엄마의 습성에 진력이 나 있다. 칭찬도 고마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베풂도 사랑도 철저히 계산된 빚으로 받아들이는 엄마. 일신의 안락보다는 ‘희생’이라는 종교의 순교자 위치에 서고자 하는 엄마의 깊은 욕망을 나는 안다. 자신은 40년 동안 줄 한 번 갈지 않은 낡은 시계를 차고 마트 신발 판매대에서 산 저렴한 구두를 신고 다니지만, 온갖 해외여행에 속옷까지 명품을 휘두르고 다니는 숙모들에게 남은 한 방울까지 짜서 보답하려는 욕구다. 엄마는 그로써 그들의 우위에 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오만한 사람이야’라고 직언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고 이제는 더는 말하지 않는다. 엄마는 평생 받거나 누리지 못하고 살 것이다. 그런 삶을 사랑하므로.


맞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엄마와 동생의 중간 정도에 ‘나’가 끼어 있다. 동생의 삶을 추구하지만 자동적 반사는 엄마의 방식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같은 배에서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동생과 내가 다르게 컸다는 사실은 결국 이 자동반사가 내 선택의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사람마다 다른 삶의 기준이 어떤 퍼즐을 만들어 간다. 딱 맞는 퍼즐이 큰 그림을 이루며 세상이 돌아간다. 엄마의 희생으로 내가 별이를 무사히 키우고, 그 덕에 남편은 집안일이나 육아에 신경 쓰지 않고도 자기 성을 가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고, 그게 감사한 줄도 모르고 자유로이 살 수 있는 권력을 가졌고. 그리고 희생자 위치에서 희열을 느끼는 엄마는 일하느라 고생한다며 남편에게 도리어 용돈을 보낸다. 그분께 돈의 용도는 ‘남에게 주는 것’이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엄마가 원하는 심오한 희생자의 삶을 오래도록 선물하기로 한다.


나는 그저 내 삶을 살아야 함을 되새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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