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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Oct 03. 2024

자칭 대가리꽃밭인 스무 살 딸이 눈물을 터트린 이유

이틀 전 일이네요.

징검다리 휴무라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있었어요.

상황은 이랬습니다.

남편과 농반진반 투닥거렸고, 큰딸에게 "너도 와서 빨래 개!!"라고 했고, 휴대폰 요금제를 바꾸라고 몇 달 전부터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안 바꾸고 있길래 "다음 달부터는 니 계좌로 자동이체 시킨다!"라고 좀 강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별일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을 보내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은영아. 울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큰 딸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엉엉 울더라고요.

왜 우는지 물어도 대답도 못하고 흑흑 대며 우는데, 스무 살이나 먹은 아가씨가 엉엉 우는 상황이 너무 웃긴 거예요.

그래서 제가 "빨래 개라고 해서 우는 거야?" 하니까 아니라고 하면서 자기 방에서 나가래요.

옆에서 당황한 남편은 "나한테 화나는 일이 있으면 나한테만 화내. 괜히 은영이한테까지 짜증 내지 말고."라고 하고

뭔가 제가 원인인 것 같은데 확실한 건 모르겠고 답답했어요.


고3시절에도 스스로 스트레스가 없는 게 신기하다고 하던 녀석인데 우니까 걱정이 되면서도 저는 너무 웃기더라고요.

가끔 그런 날이 있지... 싶어 울고 싶은 만큼 울게 내버려 두었어요.

저녁에는 친구와 함께 스터디카페를 가서 새벽 한 시에 오느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요.

다음날 오후에 와서 물어보니 예상치 못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도 축제도 즐기고 싶고, MT도 가고 싶은데 아르바이트 때문에 못 가잖아. 그런데 엄마가 핸드폰 요금까지 나보고 내라고 하니까

너무 서럽고 부담스러워서 눈물이 났어.

그런데 아빠가 괜히 은영이한테까지 짜증 내지 말라고 하는데 감동받아서 또 눈물이 더 났어."라고 하는 거예요.

황당하기도 하면서 또 귀여워서 웃음이 나더라고요.

저는 대학 첫 등록금만 내주고 나머지 학비며 생활비는 스스로 벌어서 다니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이 아이는 다니던 학원에서 평일 및 주말에 조교알바를 주 4일 정도 하고, 중학생 과외도 하느라 대학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기는 합니다.

학비는 5회 분납으로 신청해서 매달 70만 원씩 내고, 옷이며 교통비. 식비로 꽤나 많이 들어가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잘하고 있구나 싶어서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많이 버거웠나 봐요.

지금 학비와 생활이 외에 통신비까지 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부담스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나 보더라고요.

"엄마가 돈이 없어서 너보고 등록금을 내라고 한 게 아니라 교육차원에서 그러는 거 너도 알잖아." 하니까

"난 그런 교육 안 받고 싶어." 하면서 큰소리로 엉엉 우는데 너무 이쁜 거예요.


이 아이는 난임으로 4년 만에 저한테 와주었고, 임신까지만 어려웠지 임신기간 내내 입덧도 없었고

키울 때도 저를 웃게 한 기억만 있지 힘들게 한 기억은 없는 아이예요.

공부도 꽤 잘하고, 성격도 무난하고, 재치도 있고, 무엇보다 주변사람을 피곤하게 하지 않아서 너무 감사했거든요.

이렇게 거저 커준 큰딸에게 등록금 아니라 더한 것도 해주고 싶죠.

해주고 싶어도 참는 면도 없지 않아 많습니다.

근데, 아이는 그런 부모의 마음을 다는 모르죠.


자기 주변에 스스로 학비 벌어서 내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많이 힘들다고 하는데 내가 좀 심했나?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냥 나도 내가 다 내주고 대학생활 마음껏 즐기라고 해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일생 이렇게 여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도 대학 1, 2학년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고민과 갈등이 많이 됩니다.

아직 아이에게 말은 안 했지만, 학비는 스스로 해결하는 대신 제가 용돈을 2,30만 원 지원을 해주는 게 어떨까... 하는

고민 중에 있습니다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 고생하는 걸 맘 편하게 보고 있겠어요.

그저 그게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훈련의 한 가지다 싶으니 불편한 맘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도가 지나치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생각이 많아지네요.


자기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는 아이가 울 정도로 힘들어하니 좀 부담을 덜어줘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어느 정도가 적정한 수준인지 알 수가 없네요.

부모노릇도 잘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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