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치유의 힘이 너희 삶에 전해지길
10월 24일은 많은 학교에서 '애플데이'로 보내고 있다.
애플데이, 즉 사과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사과를 수확하는 시기인 이때에 사과 농사를 짓는 농가에 도움도 되고
둘이(2) 사과(4)하는 날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10월 24일에 많은 학교가 사과의 날을 운영한다.
우리 학교도 영양선생님의 진두지휘 아래 사과의 날이 운영되었다.
사과도 좋고, 평소 전하지 못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좋은 날인 것을
이 행사를 몇 년째 해온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전해야 하는지 척척이다.
하고 싶은 말을 써 내려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쭈뼛 거리며 주저하는 우리 봄이가 눈에 띈다.
봄이는 누가보다 감사와 감탄이 많은 아이다.
아주 작은 것에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사랑을 나눈다.
과자 1개가 있어도 그것을 꼭 "선생님 드세요." 하고, 괜찮다는 나에게도 자기 것을 반을 잘라 더 큰 것을 건네는 어른 아이가 바로 봄이이다.
그런 고운 마음의 봄이가 왜 사과데이 편지 쓰기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봄이는 3학년이지만 아직 한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래도 올해 눈부신 빛남과 도약이 있다면 이제 한글을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름 방학 전 단모음과 이중모음의 단어들을 읽었고, 이제는 속도는 느려도 겹받침이 있는 낱말도 읽곤 한다.
나에게는 그런 봄이의 성장이 올해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아직 쓰기는 노력과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미 친구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종이에 걸고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사진을 찍고 운동장으로 교실로 쉬는 시간을 즐기러 나가고 봄이만 덩그러니 급식실에 남아있다. 그런 봄이 앞에 가서 앉았다.
"봄아, 봄이는 누구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
나를 보는 봄이의 눈이 반짝인다.
"음... 영양 선생님이요."
"오~ 좋아. 그럼 봄이는 영양 선생님께 무슨 말을 전하고 싶어?"
"음... 맛있는 음식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래, 그럼 우리 선생님, 고마워요."라고 적을까?
나는 봄이가 하고 싶은 말의 내용을 적당히 축약했다.
이 정도의 글밥이라면 봄이 혼자서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봄이를 기다리며 봐주는 시간도 적당할 것 같았다.
그 적당함의 기준은 내가 점심을 먹은 뒤 겨우 나에게 허락되는 10분 정도의 점심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아주 계산적인 이유가 담겨있기도 하다.
"음... 맛있는 음식 해주셔서 고맙습니다.인데..."
봄이의 주저함은 그 마음을 온전히 전하고 싶음을 전한다.
"그럼, 우리 영양선생님, 맛있는 음식 해주셔서 고마워요. 사랑합니다.라고 적어볼까?"
"녜에!"
이제야 봄이의 얼굴이 밝아지고 연필을 든다.
나는 급식실에 앉아서 다시 국어 수업을 시작한다.
"자, 영, 여- 여... 여. 받침 이응' "
중간에 다시 '고마워요. 사랑해요'로만 쓰자고도 해보았지만 봄이는 마음을 굽히지 않는다.
그렇게 천천히 자, 모음, 받침을 부르며 봄이가 전하고 싶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늘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세심한 영양 선생님은 전교생이 떠나고 난 뒤 이미 때가 지난 점심식사를 하셔야 함에도 봄이를 기다리고, 이벤트로 준비하신 예쁜 선글라스를 씌어주시고 봄이 사진을 찍어주신다.
그리고 그런 봄이의 마음을 담아 함께 사진을 찍어주셨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지나치고 있던 것이 있다면 글쓰기를 통한 치유의 힘은 나에게만, 글을 아는 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봄이처럼, 타조처럼, 힘찬이처럼, 오뚝이처럼 글을 잘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느리다고 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오랜 시간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담안 그 글에
한 페이지를 가득 담아 술술 적어 내려간 나의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생활에 필요한 읽고 쓰는 글쓰기도 꼭 필요하지만 마음을 전하고 표현할 수 있는
나를 살리는 글쓰기의 힘이 나의 아이들에게도 필요함을 생각해 본다.
글쓰기가 교실에 나를 다시 세운 것처럼, 나의 아이들의 삶의 힘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