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후 모두가 돌아간 시간 교실문이 스르륵 열리며 봄이가 들어온다.
“선생님, 점자 더 하고 싶어요.”
점자가 하고 싶어서 집에 가는 것도 미루고 온 봄이와 나는 마주 앉아 침묵 가운데 열심히 점자를 찍었다.
지난주 11월 4일이 점자의 날이었고, 그날을 기념하여 전교생에게 점자에 대한 교육을 하고, 점자 명함 만들기, 점자 번역가, 검역가 되어 보기 활동을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직접 점자 번역가가 되어 희망하는 친구에게 점자 이름표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한글 자 모음과, 풀어쓰기 규칙을 완전히 이해한 봄이는 점자가 재미있다.
글자라고 적힌 것만 봐도 뒷걸음질 치던 아이가 이제 한글을 읽게 된 사람이 되어, 읽는 기쁨을 온 감각으로 느끼는 중이다.
한글을 읽게 되고, 그것을 눈으로 손으로 마음으로 읽고 있는 중일텐다.
처음 테트리스 게임을 시작했을 때 자려고 누웠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온통 테트리스가 가득이었다.
그 블록을 상상 속에서 옮기듯 몸을 이리 저기 움찔움찔하기도 했었다.
고스톱을 처음 배웠을 때도 눈을 감아도 온통 화투장만 가득 보였었다.
봄이에게 지금 ‘점자’가 그런 것이다. 집에 가고 싶은 발길을 잡고 돌아서서 멈추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봄이의 읽고 싶은, 쓰고 싶은 마음이 고맙다.
오전에 체험학습을 다녀와 할 일이 많았음에도
나는 봄이와 마주 앉아 점자를 찍었다.
둘이 마주 앉았지만 이야기 없이 서로의 점자를 찍기에 바쁘다.
몰입하는 눈빛이 예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손 끝이 예쁘다.
봄이의 손이 스르륵 지나간 길에는 이야기가 담긴다. 작은 점들이 모여 봄이의 이야기가 된다.
손끝을 따라 다시 그 이야기를 만지고 사랑을 전한다.
무엇보다 봄이가 점자를 잘하게 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생겨서 기쁘다.
물론 이 점자 쓰기에 대한 흥미도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봄이가 알았으면 하는 것은 바로 ‘쓰는 기쁨’이다.
이제 막 한글을 읽게 되어 기쁘고, 신기한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그 기쁨을 맛보았으면 한다.
그것이 봄이와 아이들 삶의 힘과 빛이 되어 줄 것이다.
때로는 엄마, 친구, 동생, 언니, 선배가 될 것이다.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어가는 그 과정에 내가 있고 봄이가 있고 아이들이 있다.
글로, 점자로, 눈빛과 마음으로 보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아이들이 써 내려갈 이야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