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이차 Dec 10. 2020

CDP, 널 어떻게 해야 하지

마케팅, 데이터 그리고 프로덕트 오너

   퇴근을 하고 근사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매번 기운 빠지는 걸음으로 나가는 회사 정문을, 그날은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나갔다. 발걸음 소리에도 설레는 마음이 담긴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을지로 입구를 지나며 차 창 밖을 보니 붉은 리본으로 선물 포장을 한 롯데백화점이 반짝이며 연말 분위기를 물씬 내고 있었다.


   나와 짝꿍은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특히 넉넉히 시간을 들여 저녁을 여유 있게 먹을 때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술 한 잔 곁들이면 평소 나누던 일상 대화 주제에서 나아가 인생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그날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소소한 주제로 시작한 대화는, 각자의 고민거리까지 이어졌다. 그는 주로 들어주는 포지션이다. 묵묵히 듣는 귀가 있어서인지 말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왔다.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은 마케터로서의 CDP이다. CDP는 Career Development Program의 약어로, 경력관리제도를 이르는 말이다. 사내 HR 시스템에서 내 CDP정보를 조회해봤다. 화면 상단에 내 몇 년간의 회사 생활이 한 줄로 적혀있었다. Career Field: 마케팅, Sub Career Field: 마케팅 기획, 직무: 데이터 기획/관리. 회사에 들어와서 여러 번 직무가 바뀌었지만, 공통분모는 마케팅이었다. 우수고객 마케팅에서부터 타겟 마케팅, 데이터 기반 파일럿 테스트(Test and Learn) 등의 업무를 거쳐왔다.


   마케팅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빠삭하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마케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회사 내에서 손에 꼽힌다고 자부한다. 다양한 툴들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마케팅 인사이트를 찾아내는 일에 자신 있다. 특히 차세대를 거치며 마케팅 시스템을 기획/개편한 경험도 있기에, 시스템 사용에는 누구보다 앞서있다. 이러한 경험치를 통해 회사 내 마케팅 자동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까지 옮겨 연간 정기 캠페인 508건 감축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파일럿 테스트를 기획할 때 유의미한 가설을 세우고 분석하는 일도 잘할 수 있는 분야이다. 마케팅 실행과 결과 분석을 통해 고객의 심리를 파악하는 일. 그를 통해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일은 대학원 때 질리도록 했던 실험 연구와 비슷한 느낌이라 익숙했다.


   그러나 위의 경험들이 '마케팅을 잘한다'로 치환되지는 않는다. 에코마케팅의 이야기를 들었다. 순수히 마케팅으로만 승부해 실제 기업의 가치를 올리고 이익으로 전환시키는 곳. 그런 곳과 겨룰 때 내가 마케터로서 경쟁력 있을까 생각한다. 마케팅 프로세스를, 시스템을 잘 파악하고 다루며 실험 연구를 하는 역량과 마케팅을 통해 눈에 보이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은 다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CDP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고민을 주욱 늘어놓으니 묵묵히 듣던 그는 내 이력이 좋은 PO가 되기 위한 경험으로 보인다고 했다. PO는 Product Owner. 즉 조직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이를 총괄하는 직무를 뜻한다. PO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쿠팡 PO 김성한 님의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프로덕트 오너 책을 참고하였다. PO는 기존 PM(Product Manager) 보다 더 경영적 의사결정권이 있는 자리이다. 또한 제품의 기획, 구현, 영업, 판매 관리 등을 총괄하기 때문에 각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IT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PO는 팀원 및 기타 이해관계자를 통솔하여 서비스 사용자인 고객의 만족을 만들어내는 일이기에,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이 높아야 한다.


"결국 PO는 이타적이어야 한다. 개인적인 성취보다는 고객의 감동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김성한


   마케팅 자동화 프로젝트를 기획, 개발하고 여러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업무를 진행했던 경험이 PO의 직무를 엿본 기회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을 만나 관계의 조율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일을 잘하고, 이를 통해 성과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적대적이거나 무기력한 사람을 설득하여 동기부여를 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또한 현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개선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데 보람을 느낀다. 이러한 강점을 확대 발전시켜야겠다 다짐하는 밤이다. 최적의 프로덕트 오너로 성장할 수 있도록 CDP를 그려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크림, 버섯, 와인을 넣은 닭고기 요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